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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17. 2023

사진이 여행을 바꾼다

“거기 좀 앉으세요. 그렇게 급하면 어제 왔어야지!”     


차가 임시 정류장에 거의 가까이 왔을 때 운전기사가 일어선 아주머니에게 퉁명스럽게 건넨 말이었다. 순간 그 아주머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 기사 말이 틀린 건 아니다. 만약 그렇게 하다 만약 인사 사고로 이어진다면 그로서는 억울하게 짝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짜증 나는 목소리 대신에 조금은 여유롭게 웃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주머니도 당연히 본인의 잘못을 알았을 테지만 덜 미안했을 테고 덩달아 우리도 조금은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는 왜 발생했을까?     


물론 늦은 시간에 운전을 해야 하는 기사로서는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아차 하는 순간에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본능적으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 수도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늘 있었던 출사와 강의, 그리고 이어진 한결 여유로웠던 저녁 시간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새벽 6시 전에 나와서 집에 도착하니 밤 11시였으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몸은 상당히 피곤했지만 여느 때와 달리 나는 따뜻한 기억을 안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 점심은 선택지가 다양하기도 하지만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우쓰라님이 권한 스테이크 집으로 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담한 가게였다. 그 가게에 우리 일행 14명이 들어갈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우리는 나란히 나란히 앉아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테이크를 먹었다. 어쩌면 출사로 이어진 인연이 더 마음을 편하게 했을 수도 있다. 2시간의 출사가 우리가 한 팀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순간이었다.      


이 인연은 다음 강의 장소로까지 이어졌다. 우리가 카페 <ㅇㅈㄹㄷ>였다. 이렇게 초성만으로 이루어진 단어는 사람들에게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걸 ‘어제라도’ ‘언제라도’로 읽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틀린 선택은 아니었다.      



2층 통창 너머로는 봄이 물씬 느껴졌다. 초록의 잎들이 환한 실내와 어울려서 블랑블랑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가지런히 꽂힌 책들은 대부분 여행과 관련된 책이어서 자연스럽게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한 출판사의 책들이 대부분이어서 출판사와 이 카페가 특별한 인연이 있나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주인장이 두사람 출판사 대표였다.     


이어진 우쓰라님의 강의. 오늘도 우쓰라님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또 한 번 느꼈다. 그것은 바로 사진에 사람, 좀 더 정확히는 사람에 대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그 환상적인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사진도 수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거기에 사람이 들어앉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사진에 머물지 않고 어떤 울림을 가진 이야기로 다가온다.      


우쓰라님 사진의 특별함은 바로 그런 스토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또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일 것이다. 이번 강의에서도 그런 사진 몇 점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진은 18년 전, 아내와 신혼여행으로 인도를 찾았을 때 우연히 만난 결과물이라 했다.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순간에 건진 사진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그 사진이 나오자마자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화면 너머에는 한 명의 인도여자가 물을 마시는 장면이 있었다. 머리 위로 빛은 잔잔하게 부서지고 세상의 고요와 평온함이 흘러넘치는 사진이었다. 절로 감탄이 나온 게 우연은 아니었다. 아마 우쓰라님도 그때는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그 순간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사진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기는 매번 그런 운명을 만나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때로 우리는 그런 순간들을 수시로 만난다. 요즘 같은 봄에는 그런 순간들이 더 자주 연출되기도 한다. 이제 막 세상으로 나오는 산자고의 여린 꽃잎, 눈이 시릴 정도로 황홀한 벚꽃의 행렬, 바람에 흩날리는 노란 유채꽃 물결, 하늘거리는 연둣빛 잎을 머금은 파란 하늘, 해질 무렵 더 도드라지는 바닷가, 정말이지 주변으로 눈만 돌리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 쉴 새 없이 연출된다.      



그러나 우리가 감탄하는 빛의 여인에게 감탄하는 순간 또 다른 사진의 미학이 눈앞에 펼쳐졌다. 흔히 우리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완전한 미학의 결정체라는 황금나선(피보나치수열)이 거기서 나올 줄이야. 우리가 사진을 찍을 때 격자의 특정 지점에 인물을 배치한다는 이야기는 수시로 들어온 터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그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왜 사람들이 이 사진을 보고 감탄할 수 없는가, 그 이유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어 이어진 야외 출사 사진들은 우리가 어떤 사진에 눈길이 가고 왜 매혹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사진 한 장. 호주 기자 시절, 해변가를 걷고 있는 기자들의 뒤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마도 우연히 찍었거나 지금 찍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강렬한 영감을 받았을 수도 있다. 우리가 감탄하는 사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 같지만 엄밀히 보면 수많은 시간이 쌓인 결과물이다. 한 장의 사진이 우리에게 오기까지는 그냥 오지 않는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내용은 하수와 고수의 선택이었다. 초보는 내가 초점 맞출 것만 보고 고수는 내가 가야 할 점을 보여준다는 말이었다. 하기야 평범한 대개의 우리는 초점에 신경을 쓰느라 다른 것에 마음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대충 찍기도 한다. 하지만 고수는 다르다. 그는 마음을 비우고 자신만의 시간을 기다린다. 그렇게 때로 한 장의 운명 같은 사진은 오랜 기다림을 거슬러 내게 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초보는 똥손을 탓하고 고수는 슬렁슬렁 찍는 것 같지만 작품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시간을 꽉 채운 강의는 감탄을 불러오는 수많은 사진들과 함께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론 수업 이전에 출사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대개 출사를 가면 어떤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사진에 몰입한다. 좀 더 좋은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넣기에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좋은 자리를 고수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오늘 출사에서는 그런 게 없었다.     


오늘 출사야말로 사진이 다른 이와 경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자격 작업임을, 그리고 내가 발견하지 못한 세상에 문을 여는 또 다른 출구임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는 내내 우쓰라 여행 사진 카페가 무엇을 지향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듯하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 땅을 사기 위해서가 사는 게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다른 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걷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적어도 오늘만큼은 나의 그런 바람이 헛된 것이 아니며 세상에는 그런 마음을 기다리고 반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는 그런 자리였다. 다른 이들도 이 아름다운 동행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짱짱한 이론과 실전 경험, 그리고 풍부한 사진 자료와 따뜻함이 어우러진 우쓰라님의 다음 강좌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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