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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Apr 25. 2023

빠이를 꿈꾸는 이들을 위하여

오후 늦은 시간, 이 무렵 빠이는 한가하다. 하프데이 투어를 떠난 사람들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다. 이제 4시 반에 출발하는 캐년 투어 정도만이 여행객들의 선택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빠이, 빠이 하느냐는 말을 많이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아마 다녀온 사람도 빠이가 왜 좋을까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좋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그냥이라니, 그런 싱거운 대답이 어디 있어? 농담하는 거 아냐? 



나는 왜 사람들이 빠이에 중독성이 있다고 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우선 여행경비에 부담이 없다. 대개의 배낭여행객의 주머니는 얇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허름한 숙소도 감지덕지인 경우가 많다. 돈 한 푼이 아쉬운 형편에 빠이만큼 가난한 여행자들을 반갑게 맞아줄 곳도 많지 않다. 


둘째, 빠이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은 젊은이들이다. 어림짐작으로 20대와 30대가 90% 이상일 것이다. 중년층만 해도 빠이에 장기간 머무르면서 즐기기에는 어색하다. 그들에게는 좀 더 안락한 침대와 맛있는 음식, 이왕이면 미슐랭이 있는, 이 넘쳐나는 도시가 편하다. 이미 그들은 자신이 오늘 묵을 호텔이 별 몇 개이고 유명한 식당인가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은 허름한 숙소와 허접해 보이는 식당을 두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새벽 1시까지 광란의 밤을 보내도 좋을 곳이라면 매력적이지 않은가? 물론 빠이의 대부분은 이야기를 나누거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바 정도이다. 중년 이상은 이 험난한 여정을 견딜 체력이 없다. 그들에게는 차라리 안락한 호텔이 편하다. 예외가 있다면 바에서 맥주 한 잔 정도 마실 수는 있다. 그러니 조합이 영 어색해지는 것이다. 



셋째, 빠이는 치앙마이에서조차 3시간을 달려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지 않다. 그러니 큰맘 먹고 가거나 애초에 목적지로 정하지 않는다면 빠이는 여행 목적지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원시 상태의 자연을 맛볼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캐년 일몰, 반자보 일출, 캐녀닝, 오토바이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저렴한 가격으로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빠이를 찾은 이들이 일주일이 짧다고 투덜대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는 빠이를 떠나온 후에도 다시 또 찾게 하는 매력이 있다. 빠이 여행이 당신에게 삶의 활력소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고통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빠이를 좀 더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 




우리가 아는 이 멋진 동네가 당신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안다. 흔히 빠이에서 모터사이클은 거의 필수라고 얘기를 많이 하다. 여행지에서 즐거운 경험은 여행의 추억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보석 같은 여행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또 아는가. 그래도 당신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 모든 것을 경험할 기회를 날린 셈이다. 



가능성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무기이자 힘이다. 여행에서는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을 해야 한다. 진행과정에서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처음 예상했던 일정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어쩌면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뜻밖의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당신의 삶을 뒤바꾸지는 못한다. 당장은 속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중단할 필요는 없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든 빠이의 분위기는 상당히 묘하다. 낮에는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여겨지다가도 밤이면 불빛이 요란한 클럽거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니 말이다. 낮과 밤이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도시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대개의 도시가 밤이 화려하기는 하지만 빠이는 마치 축제를 벌이고 있는 느낌이 든다. 빠이는 라오스의 방비엥이나 루앙프라방과는 그 분위기가 확연하게 다르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고 사랑하고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한가하고 느긋함에 길들여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다른 즐거움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들은 한껏 느긋하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햇볕을 쬐거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급할 게 없는 그들로서는 오늘은 또 다른 특별한 선물이다. 자칫하면 무료함으로 빠질 만도 빠이에는 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무언가 설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빠이는 즐겁다. 이 좁은 동네는 몇 번을 돌다 보면 만난 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럴 때면 눈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무엇에 대한 희열로 바뀐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카페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심장이 먼저 뛴다. 쿵쾅거리는 음악에 취한 몇이 춤을 추고 있다. 무에 즐거운지 호쾌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도 있다. 



삶은 오늘도 이어진다. 당신이 그 보석 같은 삶을 만날 것인지 아니면 뿌리칠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적어도 바쁜 일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빠이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그냥 카페에서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기만 해도 좋겠다. 저녁이면 슬리퍼를 끌고 어슬렁거리며 길을 걷다가 분위기 좋은 곳에 들어가 차를 마시거나 맥주 한 잔을 마셔도 좋은 게 여기 빠이이다. 


6시부터 도로는 통제된다. 차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주가 되는 동네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런 일들은 사람들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 것인가. 매일 연속된다면 지루하기도 하련만 또 그럴 것 같지 않은 게 빠이이다. 익숙하던 것들 대신에 새로운 무엇이 일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은 재미있다. 방금 서점을 하나 발견했다. 주인장은 서양인으로 보였다. 당연히 나비 도감은 없다. 그래도 이런 관광도시에 서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어찌 되었건 간에 사람들이 서점을 찾고 유지가 된다는 말이니까. 




가끔 우리의 추억은 때로 세상을 더 빛나게 한다. 그 추억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나도 당신이 이제 우리는 새로운 추억을 만들 준비가 되어 있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또 헤어지겠지만 그들이 짧은 인연으로 빚은 추억은 오래갈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빠이 여행에서 만난 소소한 것들이 이번 여행의 최고의 기쁨이자 행복이며 때로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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