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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01. 2023

수선화의 섬, 선도

흐린 날 만난 선도 수선화. 

꼬박 1년을 기다려서 만난 탓인지 나는 선도에 닿기 전에 이미 마음이 들떠 있었다.


드디어 선도에 간다.

선도 수선화를 보기 위해서 작년에도 시도를 한번 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시간이 맞지 않아 아쉬움을 달래야만 했다. 섬의 가장 큰 문제는 배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섬 기행은 배를 타고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배를 타고 나오는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준비과정이 까다롭다.  


그렇게 작년 한 해를 훌쩍 보냈다. 아쉬움은 늘 남는 법이어서 이후 다시 한번 선도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선도를 먼저 가기로 결정했다. 선도로 가는 배는 가룡항과 신월항에서 출발한다가룡항 항구에 도착하니 이미 배는 출발하고 없었다. 많은 시간차가 아니라 불과 10분 차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간에 좀 더 서둘렀어야 하는 미련이 남았다. 


비록 10분 차이로 배를 놓쳤지만 다음 배까지는 상당한 여유가 생겼다. 차라리 점심을 먹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을 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급하게 마음먹던 긴장이 사라지자 마음이 홀가분해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배를 타기로 한 선착장 근처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다.


그렇다면 나갔다가 다시 와야 한다. 아마 압해도 근처라면 가능할 것이다. 이전에 선도를 방문한 이들의 글을 보니 식사 이야기가 나온다. 선도에는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니 우리가 탈 배가 곧이어 도착했다. 그래도 차까지 들어가는 제법 큰 규모의 여객선이다. 배 안에는 우리처럼 선도로 가는 이들이 있었다. 





대략 선도까지는 한 시간 남짓. 우리는 어쩌다 한 번씩 배를 타지만 섬 주민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불편할 것이다. 특히 아팠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섬이다. 물론 날씨가 좋다면야 조각배를 타든 어떻게든 나올 수 있지만 만약에 풍랑이 높거나 태풍 등으로 나올 사정이 되지 않으면 꼼짝없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게 섬사람들의 비애이다. 


예전에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수선화 축제의 규모를 알 수가 없었다. 선도에 내리자마자 한눈에 수산화가 들어온다. 능선을 타고 눈이 닿는 곳마다 수선화들이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선도 수선화 축제가 거의 끝나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혹시 꽃이 지지 않을까 우려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전국적으로 2주 정도 개화시기가 빠르다. 덕분에 예년보다 꽃들이 빨리 지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했다. 일찍 꽃이 핀 탓으로 과수나무들이 냉해를 입었다고 한다. 올 가을 과일 값이 걱정된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언덕으로 보이는 부분이 수선화 축제가 이루어지는 무대라고만 생각했으나 그 위에 올라가서 보니 규모가 상당하다. 게다가 마을까지 이어지는 길 주변이 수선화가 연이어 있다. 무엇보다도 바다를 배경으로 노랗게 비어 있는 수선화들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처음에는 선도 수선화 축제 이름을 들었을 때 규모가 이렇게 크게 하는 생각지도 못했다. 물론 선도라는 섬 자체가 그리 큰 규모의 섬은 아니다. 선도는 섬 모양이 매미를 닮았다고 해서 매미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곳이 수산화 이곳 섬이 섬 전체가 수선으로 뒤덮이게 된 것은 한 할머니의 바람 때문이었다. 육지에서 선도로 시집온 현복순 할머니는 꽃을 유난히 좋아했다고 한다. 육지에 나갈 때마다 꽃을 구해온 할머니는 보이는 곳마다 꽃을 심었고 이 수선화가 결국 이 섬을 대표하는 축제로까지 자리매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을 쪽에 있는 <수선화의 집>이라는 표지판을 달고 있는 아름다운 집이 바로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다. 연세가 있어서 지금은 요양병원에 가 계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지만 잘 가꿔진 정원과 집을 보는 순간 이 할머니께서 집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얼마나 이것을 그리워할 게 눈에 그려졌다. 어쩌면 할머니는 매일 밤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이곳을 그리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할머니의 바람은 선도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이 섬 곳곳에서 수선화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전한다. 



날씨가 흐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운 자태를 선보이는 수선화를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꽂은 사람들의 마음을 밝게 한다. 그리고 덩달아 행복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 나는 그곳에서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는 느린 편지를 적었다. 아마 1년 후에 내가 이 편지를 받아볼 때쯤이면 아마 선도의 수산화는 더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을 것이다.


섬 전체를 뒤덮은 수선화에 맞춰서 집들의 지붕도 노란 물결이다. 예전엔 더 밝은 노란색이었을 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은 약간 빛바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선도라는 섬이 주는 아름다움과 감동을 덜어내지는 않았다. 


다음에도 또 이 멋진 섬을 꼭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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