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May 02. 2023

외국인의 북촌 한옥마을 입성기


오늘은 노동절.

한국에 온 지 3일째다. 어제는 한국에서 사진작가로 유명한 웃으라? 아니 우쓰라 출사팀에 합류해서 한국을 대표하는 명소라는 북촌 마을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사람들이 어마어마했다. 코로나가 풀린 이후에 이곳을 찾는 사람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주말이면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사람들이 순례하듯이 한 번씩은 들리는 듯하다.


今天是劳动节。

这是我来韩国的第三天。 昨天,韩国知名摄影师,微笑? 这不,我加入了Utsura拍摄团队,参观了据说是韩国代表性景点之一的北村。 我们决定在安国站见面,但人潮涌动。 据说,自新冠病毒发布以来,寻找此地的人数迅速增加。 每逢周末,似乎世界各地的人们至少来这里参观一次,仿佛在朝圣。



우쓰라님을 처음 만났다. 일단 느낌이 좋고 키가 훤칠하다. 중국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다. 외국인은 나 혼자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여러 명이 함께 참가해서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신다는 김작가님, 싱가포르 출신의 은하수님, 나처럼 중국에서 온 여행객들까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였다. 하기야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작가의 사진 기행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외국인들로서는 서울의 숨겨진 명소, 북촌은 이미 유명한 곳이기는 하지만 속속들이 알기는 힘들다, 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는 않다.


모든 사람들이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역시 한국인들의 약속 개념은 놀랍다.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하는 것이다. 나로서는 사실 이런 일들이 가장 놀랍고 경이롭기 짝이 없다. 오늘은 어떤 일이 펼쳐질까 내심 궁금하다.


우리가 처음 이동한 곳은 정독도서관!

사실 내게는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골목이다. 골목에는 일단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거나 적게 다닌다. 그 공간을 지배하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들의 느림이 보장되는 곳,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가 숨 쉬는 곳이 바로 골목이다. 그래서 나는 골목이 좋다.



예전에 혼자 한국에 자유여행으로 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다른 곳에 갈 곳이 많아서 여기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가다 보니 벽화 하나가 눈에 띈다. 우쓰라님이 즉석에서 출사 팀 중 한 분에게 제안을 한다.



앞으로 지나가 보세요.



그런데 그분은 정말 웃겼다. 마치 행진하는 것처럼 빨리 지나갔다.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니요. 그거 말고 조금 더 천천히요



다시 재주문이 이루어졌다. 우리 일행은 핸드폰과 카메라를 들고 그 여자분에게 집중했다. 그에 앞서 우쓰라님은 본인이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앗, 그런데 우리가 알던 그런 벽화 사진이 아니다.



보통 우리는 벽화를 찍을 때 전면을 꽉 채워서 찍는다. 하지만 이 사진은 다르다. 공간의 분할 구도를 이해하고 있는 이는 공간을 지배하는 힘을 지닌다는 말을 예전에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다. 화면 분할 구도를 이용함으로써 우리 눈높이에서 바라보았던 벽화와 그 위쪽은 이질적인 공간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우리가 몇십 대의 카메라와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이 무서워 보였던지 한국 사람들은 쉽게 길을 지나가지 못했다. 하기야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예전에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레드카펫 근처를 지나가는데 갑자기 수많은 카메라 프레시가 터져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주연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기분은 좋았다. 아마 그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사람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유리조각처럼 빛나는 골목길을 지나 정독도서관에 도착했다. 붉은색 벽돌이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이곳은 예전에 한국의 명문으로 불리었던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명문으로 불리는 학교들이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 북경에는 인대부중, 북경 4중, 상해의 상해중학, 복단부중 등이 특히 유명하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 사람들의 학구열은 뜨겁다 못해 무섭다. 베이징의 경우, 아이를 좋은 학군에 입학시키기 위해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집을 10억이 넘는 돈을 주고 사기도 한다. 한국도 한때 과외 열풍이 불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지금은 학교가 이전한 이후 박물관과 도서관으로 이용된다고 하였다. 가는 도중에 벽을 보니 성삼문이라는 인물이 보였다. 나는 얼른 검색을 해봤다. 바이두 검색 결과를 보니 전체 내용을 다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이 조선시대 충신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왕조이거나 반역을 꾀하는 무리는 있고 이를 지키려는 충신은 존재한다. 중국 역사에도 수많은 그런 충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보다 더 강하다. 불과 몇십 년 밖에 살 수 없다는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인간은 좀 더 강하고 거대함을 꿈꾼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했던 진시황도 그랬다. 그는 자신의 삶을 연장하기 위해 불사초를 구하기 위해 서불과 5백 명의 동정녀를 뽑아 조선으로 보냈다. 지금도 경남 남해에는 ‘남해석각(南海石刻)’이라는 글자가 남아 있다고 전한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사후에도 자신을 호위할 병사들을 진흙으로 빚어 매장하였다. 서안 병마용에 가면 그 엄청난 유혹이 한 인간이 보였던 욕망의 끝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중국 대륙을 통일했던 진시황도 결국 시간을 거스르지 못하고 죽었다.


성산문을 죽였던 세조 역시 지금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될 뿐이다. 하지만 성상문이 어린 임금을 위해 보였던 충절은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준 듯하다. 지금도 그 표지석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정독도서관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시의 원제목은 <서시(序詩)>이다. 중국 길림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에 하나라고 들었다. 지금 연세대로 바뀐 연희전문에서 수학했던 그의 시가 이 벽에 있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일제강점기 시절 마음껏 노래하지 못했던 한국어의 아름다움이 이 정독도서관에서 벽화로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쓰라 님이 이상한 표정을 짓고 카메라를 벽화의 글자 아랫부분에 댔다. 그랬더니 화면 속 글자가 갑자기 확 변했다.



와 이게 뭐지, 이게 뭐야!



나는 정말 놀랐다. 우쓰라님은 광각과 비율에 대해 설명했지만 외국인인 나로서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중국에도 유명한 사진가와 예술가가 많지만 마치 그의 행동은 하나의 퍼포먼스 같았다. 사람들은 그 퍼포먼스에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보였다. 비록 나는 외국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한국인인 것처럼 느껴졌다.


정독도서관은 김옥균의 생가터로도 알려져 있다. 우쓰라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에 김옥균이 일으켰던 거사가 성공했으면 한국은 지금 완전히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감한다. 격변의 시대 중국은 아편 전쟁으로 홍콩을 비롯한 수많은 땅을 외세에 빼앗겼다. 조선의 근대 개화파였던 김옥균 역시 위기의 시대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권을 앞세운 러시아, 일본, 청나라 앞에서 앞에서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았다. 하지만 일본의 배신으로 그의 원대한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흔히 알려진 3일 천하가 그것이다. 그는 일본으로 망명한 이후 이홍장과의 담판을 위해 청나라로 갔다가 자객에 의해 숨을 거뒀다.



조선의 역사가 다시 한번 바뀔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만약 김옥균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일본은 한국을 병합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후에 중일전쟁도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최근 한국의 대통령이 사과 운운하며 일본에 대한 용서를 이야기한다고 들었다. 왜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 대신에 배상금을 물어주고 사과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중국 역사상으로 봐도 그와 같은 행위를 한 사람들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받는다. 그게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교훈이다.




도심에 이런 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등나무 향기를 맡기도 했다. 나는 처음 보는 꽃이어서 물어보니 등꽃이라 한다. 갑자기 우스라 님이 탐사팀 중 한 명에게 의자 위로 올라가라고 요청했다. 한국팀의 출사는 저런가 보다 하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이어 우쓰라님이 찍은 사진을 보니 왜 그런 요청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역시 예술가들은 우리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 그의 눈에는 등꽃이 핀 것도 하나로 완벽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람들을 그렇게 출사의 모델로 쓰는 것이 우스라님의 특징이라고 한다. 자칫하면 나도 그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의 발언 때문에 중국 내부에서도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 않다. 대놓고 한국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내 얼굴이 만약에 인터넷에 나온다면 나는 친구들에게 조금은 미안해야 할 것이다.



*구글 번역기를 돌려도 한국어는 여전히 어려워요. 한국분들이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반응이 나쁘지 않으면 2탄 연재할게요!






작가의 이전글 수선화의 섬, 선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