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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03. 2023

외국인의 북촌 한옥마을 입성기 2탄


안녕! 여러분.

지난번 원고를 썼던 장첸이 갑자기 팔을 다치는 바람에 나에게 부탁을 해왔습니다. 자기 대신에 북촌 한옥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예전에 탐방기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장첸은 매우 우울해했습니다. 같이 생활하면서 그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내 이름은 안토니오.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이다.

지금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이다. 같은 방을 쓰는 장첸이 주말에 우쓰라 사진 출사에 가고 싶다며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건성으로 대답을 했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갑자기 장첸이 자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그렇게 나는 엉겁결에 안국역으로 끌려 나왔다. 그동안 이름만 들었던 북촌 한옥마을은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


그런데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조금 이상하더라도 재미있게 봐주기 바란다.



우리는 정독도서관을 지나 본격적인 북촌 한옥마을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와 달리 한국 사람들은 공간에 대한 이해가 뛰어난 것 같다. 이 좁은 동네를 이렇게 꾸며 놓다니. 특히 내가 인상적으로 본 것은 골목길이었다. 처음에는 신기했다. 이 비좁은 공간을 활용해서 아기자기한 골목을 만들고 그 사이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었다. 아무튼 그 덕분에 길 양쪽으로 각각의 집들은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사는 이탈리아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유럽에도 유명한 골목이 있기는 하다. 이탈리아에서 북촌 한옥마을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동네는 베니스 정도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배경으로 유명한 베로나도 이렇지는 않다. 내 고향인 피렌체에도 골목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형태는 아니다. 베니스는 섬에 건물을 짓다 보니 좁은 골목을 중심으로 상권과 마을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만약 이렇게 집을 지으라고 한다면 아마 그 사람을 정신병원으로 보낼지도 모른다. 오, 맙소사! 상상조차 하기 싫다.


                                                            피렌체 골목 풍경


                                                         베니스 골목 풍경


                                                            대만 지우펀 골목 풍경



처음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공간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각각의 골목들은 한국의 전통가옥인 한옥과 어울려 아름다운 조각품처럼 빛났다. 더 놀라운 것은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 여기 사는 사람들은 이 공간을 이렇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마 서울처럼 사람이 몰리는 곳이 아니라면 북촌과 같은 높은 지대에 집을 지을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곳 북촌 한옥마을은 초기에는 30여 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곳에 한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고 한다. 오늘날 북촌 한옥마을에는 1400여 채에 달하는 한옥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표정은 힘든 게 역력하다. 그들의 표정은 왜 하필이면 이런 곳을 가야 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이 언덕배기에 한국의 전통가옥이 이렇게 빼곡하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천여 채가 넘는 한옥이 이렇게 한 군데에 있다는 것도 신기할 것이다. 물론 내가 예전에 여행 갔던 일본에도 가나자와나 다카야마처럼 대규모의 전통가옥촌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곳과 이곳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 굳이 찾는다면 대만 지우펀 정도가 비슷하다고나 할까.


내가 사는 이탈리아는 대부분의 건물이 석조건물이기 때문에 목재를 사용하는 게 어색하다. 아마 한국처럼 높은 산이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나무보다는 돌이 더 친근한 소재이다. <다비드>나 <피에타상>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와 같은 조각가가 많이 나온 이유도 대리석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도시 곳곳에 있는, 로마시대의 유물이기는 하지만, 원형경기장만 해도 목재로는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촌 한옥마을에는 흙과 목재, 그리고 기와가 어우러져 독특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북촌 한옥마을에는 골목 하나하나가 사연이 없는 데가 없다.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는 추억을 먹고 산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어떤 추억을 안고 살아갈까? 아슬아슬한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사연이 많아 보이는 한옥이 나온다. 우쓰라님의 시선이 한참 머물렀던 곳이다. 자세히 보니 계단에 꽃밭을 만들어 두었다. 아마 이 집주인은 계단을 좁히는 대신에 자신만의 정원을 택했다. 주인으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절충법, 즉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이런 마음이라면 집 내부도 나름대로 공간을 극대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집 주인장은 대문 한편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빨간 높은 기둥이 나온다. 처음에는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없었다. 누군가 목욕탕이라고 알려주었다. 삼청동 35번지, 이 동네의 랜드마크라는 코리아 사우나 자리이다. 예전에 한국 사람들은 명절을 맞이하기 전에 목욕탕에 가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이 동네사람들은 명절이면 이곳에서 줄을 서서 명절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목욕탕 건물은 없고 게스트하우스만이 남아 손님을 맞는다.




물론 이탈리아에도 비탈진 언덕길에 집을 세우는 동네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굳이 예를 들자면 남부의 포지타노 정도가 북촌 한옥마을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동네처럼 건물의 밀도가 높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처럼 다닥다닥 몰려 있는 한옥은 한국전쟁이나 도심 재개발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최근 베니스에서는 몰려드는 관광객들 때문에 특별한 법이 만들어졌다. 특정 지역에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머물 경우 벌금을 내게 하는 게 법의 요지이다. 심지어는 자전거를 타기만 해도 100유로를 벌금으로 내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베니스를 방문하는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관광객으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이처럼 이상한 법을 만든 이유는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도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관광객들은 소음을 유발했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렸으며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파괴하였다. 그것은 평온과 휴식과 정서적인 안정이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서도 위안을 찾을 곳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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