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들 May 03. 2023

외국인의 북촌 한옥마을 입성기 3




 최근 코로나가 완화되면서 전 세계는 관광객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오늘 북촌 한옥마을에서 목격한 엄청난 수의 관광객이 바로 그 증거다. 우리가 큰길을 지나갈 때마다 수십 명의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꾸역꾸역 관광객을 토해 놓고 사라졌다. 아마 한참 후에 다시 그들을 태우고 어디론가 갈 것이다. 그들에게 북촌 한옥마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결국 몰려든 관광객은 이곳 한옥마을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관광객의 급증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수십 년간 한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한옥마을이 유명 관광지로 인기를 끌면서 자리를 떠야 했던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 신문 기사에서 보았던 젠트리피케이션이 이곳 북촌 한옥마을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설렁탕 노포 <만수옥>(1969-2021)이 있던 자리, 지금은 도너츠 가게로 변해버렸다.


자본의 논리 앞에서 수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쌓아왔던 인연은 사라져 버렸다. 한 곳을 우직하게 지켰던 할머니의 뚝심도, 그 뒤를 잊겠다는 아들의 바람도 거대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우쓰라님은 <만수옥> 할머니 이야기를 하면서 목소리가 살짝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생을 이 자리를 지켜온 사람이거나 이곳을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오래 장사를 했던 이들이 떠나가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추억 하나를 잃어버리는 셈이다.


자본의 논리는 ‘역사’나 ‘전통’보다는 단기간에 좀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현재’에 치중한다. 그들에게는 오랜 인연의 소중함보다는 눈앞의 이익이 더 크게 와닿는다. 그 결과 수십 년 동안 동네 사람의 일원으로 살아왔던 그들의 설 자리는 점점 좁아졌다. 대신 그 자리를 빠르게 프랜차이즈나 간식을 파는 가게들이 대체한다. 외국인이 내가 보기에도 그럴진대 이곳 사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피부로 느낄 것인가.



잠시 북촌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채로운 한국 풍경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이나 자유 여행객, 멋진 사진의 배경을 얻기 위해 여기를 들리는 단체 관광객들은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곳에 평생을 뿌리내리고 사는 이들과 그를 지켜보는 한국인들의 감정은 어떨까가 궁금했다. 등꽃이 흐드러진 집 앞 골목길을 가는 도중 만난 할머니 두 분에게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유명해서 사람들이 하도 오니까 우리가 표지판을 강제로 떼어버렸어!


그분들에게 관광객은 지겨운 존재일 수도 있다. 하기야 대문을 열면 누군가가 떡하니 앉아서 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시도 때도 없이 골목에서 속닥인다면 불쾌하지 않을까? 만약 왁자지껄한 사람들 소리가 밤늦게까지 이어진다면 어찌 생활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아니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 또한 어찌 감당할 것인가. 실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내가 보기에 북촌은 그렇게 살기에 쾌적한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일단 비가 많이 올 때는 위험하고 눈이 쌓이면 때면 그 비탈길을 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차가 없지만 차 한 대 주차하는 것도 차고가 없는 사람이라면 곤란하다. 다른 지역에서는 당연히 있는 가게며 각종 편의시설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만약 불이라도 난다면 여기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소방차도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골목이 비좁다.


게다가 요즘처럼 관광객이 밀려드는 철이면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또 사람들을 피해서 어디론가 가고 싶을 수도 있고 실제로 떠난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느낌은 외국인인 나만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근사한 사진이 배경이 되는 곳이면 무조건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들에게는 주민들의 불편함은 관심 밖이다. 내게는 한옥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여유나 풍요로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여행지에서 자신만의 인생 한 컷을 노리는 탐욕스러움과 이기심이 가득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북촌 한옥마을이 갖고 있는 고즈넉함과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비록 오늘은 듣지 못했지만 왠지 골목마다 그들만의 스토리가 들어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알게 된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이 동네에도 다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웃과 김치를 같이 담가 먹고 비 온 날이면 전을 부쳐서 먹던 한국인의 정이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떠올랐다.



북촌 한옥마을을 내려오니 다른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기자기한 마을에 있었다. 그런데 골목길을 빠져나오자마자 자동차로 가득 찬 도심이 나를 맞는다.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품고 있던 북촌 한옥마을을 떠나오며 나는 아쉬워서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내가 방금 빠져나온 자리를 누군가가 바로 메우고 있었다. 관광객들의 말소리가 바람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걸 느끼면서 어둠이 내리면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이야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길이지만 어둠이 내리고 밤이 열리면 그 길은 온전히 북촌마을 사람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우쓰라님이 출사를 마치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러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은 야구경기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우쓰라님이 노포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골목 한편에 자리한 순두부 집 이야기를 꺼낼 때, 사람들의 표정은 그곳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노포 소개를 끝으로 출사는 끝났다. 나는 노포와 그곳을 채운 사람들이야말로 북촌 한옥마을의 진정한 주인이 아닐까 상상해 보았다. 어쩌면 오늘 저녁 그 골목길 노포 어디에선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사람들. 그들을 만나면 왜 이곳을 스쳐 지나가듯 지나가면 안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과 섞여서 술 한 잔 기울이다 보면 불콰한 얼굴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흥얼거리는 노래 한 자락을 따라 불러도 좋겠다.



*장첸은 내 글을 읽더니 씩 웃었다. 아마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까? 아무튼 장첸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나는 한국의 북촌 한옥마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만약 다시 우쓰라님을 만난다면 그때는 술 한 잔을 나누며 내 고향 피렌체 뒷골목 이야기를 함께 해도 좋겠다.



Grazie a Uthura, ho avuto una buona esperienza. È stato un momento speciale per capire la Corea. Grazie ancora.






작가의 이전글 외국인의 북촌 한옥마을 입성기 2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