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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2. 2023

꿈을 만나러 간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나무와의 소중한 인연 

때로는 기억이 생생하지 않다는 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추억으로 변하고 우리는 그 추억을 따라 과거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내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10년 전 어느 날로 나를 이끈다. 아이들과 함께 순천을 처음 찾았던 그날, 하루 종일 걸어도 다 못 볼 것 같은 엄청난 규모의 꽃과 나무가 거기 있었다. 그때 우리 가족은 아이들 이름으로 나무 한 그루와 인연을 맺었다. 가끔 순천을 떠올릴 때마다 그 나무 생각이 나곤 했다. 우리는 순천을 찾거나 인근을 지나칠 때면 10년이 흘렀으니 이제는 그 나무도 제법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았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순천에 갈 일이 생길 때면 그때 생각이 나곤 했다. 나는 그 이후에도 몇 차례 순천을 갔지만 예전과는 조금씩 다른 기억을 안고 돌아왔다. 그때 보았던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이 담긴 꿈의 다리를 지난 것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16개국 14만 명의 꿈을 한꺼번에 접하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세월 따라 그림을 그렸던 타일 색은 빛이 바랬지만 그들이 꾸었던 꿈은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이번 박람회 기간 중에 그때 그림을 그렸던 작가와 만나는 시간이 있다고 하던데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예전 꿈을 만날까 궁금하다.               



꽃이 핀다, 그 마음이 이쁘다

3월, 남도에서 들려오는 꽃 소식을 따라 순천만으로 향했다. 아련한 내 기억 속에 순천만과는 다른 세계가 거기 있었다. 입구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순천만국가정원, 플라스틱과 헤어지는 중입니다.”라는 문구였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동안 전국 곳곳을 많이 다녔지만 이런 감동적인 선언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이후 최덕림 총감독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준비과정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일말의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도로를 걷어내고 마사토를 깔았다는 이야기부터 순천만의 자연 환경을 유지하면서 공원 조성에 얽힌 세세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순천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박람회를 준비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지자체에서 하는 대개의 행사들은 기존에 있었던 프로그램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다. 기본 시설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게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발품을 팔아야 하며 많은 경비가 들지를 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60만 평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마 반발도 적지 않았으리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핏줄과 같은 도로를 갈아엎고 마사토 길을 만든다는 자체가 획기적이 아닌가. 이처럼 맨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이 무려 8개소, 12km에 달한다.  


그런 발상을 한다는 자체가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건물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고 축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들은 다른 지자체도 다 하는 일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연의 형태로 돌려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들이 알아줄 이도 별로 없을 것이다. 누가 도로에 그렇게 신경을 쓰겠는가. 하지만 그 결정 하나만으로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찾는 이들은 순천을 다시 보고 순천의 미래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자연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는 이런 마인드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이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설계했다는 건축가 찰스 젱스가 내세웠던 철학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무료로 설계해 주는 대신에 도시 생태를 기반으로 순천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을 것, 그리고 더 이상 발전하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순천의 산과 물, 그리고 도시와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를 순천만 정원박람회에 고스란히 재현해 놓았다. 순천이 지향하던 꿈과 철학이 그에게도 통했던 것일까. 정원박람회장에 들어서면 한눈에 들어오는 순천호수정원은 그렇게 세상에 태어났다.     



그 약속대로 순천은 발전 대신에 자연친화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원박람회장에는 당일에 돌기에는 너무 아쉬울 정도로 눈길을 끄는 곳들이 여러 곳이 있었다. 특히 박람회장에서 하루를 잘 수 있는 가든스테이 ‘쉴랑게’는 도심에서 지친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가격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도심 속에서 순천만 정원을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데 그 정도의 금액과 하루를 투자하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순천의 건강한 식재료를 바탕으로 세프들이 준비한 저녁과 아침을 제공하는 것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나저나 별이 걸어가는 순천만의 하늘을 눈으로 보며 쉽게 잠이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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