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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2. 2023

순천국제정원박람회에 가시거든

600살 먹은 팽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

가든스테이 ‘쉴랑게’ 근처에는 제주도에서 왔다는 600년 된 팽나무가 있다. 이 팽나무는 초창기 순천 정원박람회를 조성할 무렵부터 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순천시의 재정 여건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시민들의 기증과 후원이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600살 먹은 팽나무도 이러한 연유에서 원래 제주도 섬자락에 살고 있다가 영호남의 화합을 염원하는 박병화 후원가에 의해 순천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사람도 이사가 쉽지 않은데 600살이나 드신 팽나무를 모시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어림짐작이 간다. 이 팽나무가 하늘을 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마치 언덕 위에서 순천만을 굽어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난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언덕에서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팽나무는 거기 있었다.           


나는 이 팽나무야말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산을 받아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일은 남들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들여 우리의 행사로 만드는 일은 다르다. 거기에는 사람들의 간절함과 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천시에서 지금 하고 있는 정원박람회는 각박한 시대를 사는 우리 자신을 위한 선물이자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한 미래가 아닐까. 이 꿈을 잘 간직하라는, 그리고 그 꿈을 잊지 말아 달라는 염원을 담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놓치고 싶지 않은 몇 장면      

그다음으로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키즈가든’이었다. 처음에 이곳을 보았을 때는 화사한 꽃에 먼저 눈이 갔기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유심히 보자 잔디가 평평하지 않다. 나중에 잔디를 그렇게 조성한 이유가 아이들이 앞으로 만날 세상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는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잔디에 마음껏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중년을 넘어선 이들이라면 누구나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말에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잔디만 보면 저절로 발이 멈췄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잔디밭을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넓은 잔디밭을 보면서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곳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다가 지치면 너른 바위에 누워서 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거나 파란 하늘을 눈에 담는 상상을 잠시 해보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었다. 



키즈가든 바로 옆에는 중년을 위한 ‘노을정원’이라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그동안 메마르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한 번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재정비하는 힘을 얻게 하고 싶었다는 공간이다. 요즘처럼 삶에 지친 이들이라면 이곳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짊어졌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자신과 만나면 어떨까. 키즈가든 옆에 노을정원을 배치한 것처럼 사람을 배려하는 섬세한 공간 배치는 박람회장 곳곳에서 드러난다.         

4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정원에 삽니다’를 주제로 진행하는 이번 박람회는 2013년 순천시가 최초로 국내에 국제정원박람회를 선보인 이후, 10년만에 두 번째로 개최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무려 10년을 기다려온 만큼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는 순천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볼거리와 체험코너가 곳곳에 많다. 



한국정원을 비롯하여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 등 11개국의 정원을 재현해 놓은 세계 정원, 넓은 박람회장을 돌다가 지치면 족욕을 할 수 있는 한방타운, 홍수 시를 대비한 재해예방시설인 저류지를 활용한 오천그린광장,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순천역에서 배를 타면 정원박람회장으로 한 번에 올 수 있는 국가정원뱃길까지 볼거리와 자랑거리가 넘쳐난다. 최근 주목받았던 4차선 도로 위에 잔디밭을 조성한 그린아일랜드도 순천시로서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동차보다 사람과 자연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씀씀이가 이 모두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평시에는 9시까지, 하절기에는 10시까지 야간 정원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이번 정원박람회의 큰 변화 중 하나이다. 낮에도 좋지만 고즈넉한 밤에 여유 있게 돌아보는 즐거움도 기대할 만하다.


 


10년 전에 우리 가족이 나무에 명찰을 달아줌으로써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와의 인연을 만들었듯이 이곳을 찾는 이들도 자기만의 추억을 만들기를 소망한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꿈꾸고 지향하는 것도 사람들과 추억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의 순천, 자연과 생상하는 아름다운 공간으로서의 순천이지 않을까 싶다. 그 마음이 이어져 내 인생에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을 떠올렸을 때 그중에 하나로 순천을 꼽을 수 있다면 내 바람이 지나친 것일까. 




사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만 보고 하루만에 돌아오기에는 너무 아쉽다. 먼 길을 나섰으니 내친김에 하룻밤을 머물고 인근에 낙안읍성이나 승주 선암사, 갈대밭으로 유명한 순천만 습지도 한번 들러볼 일이다. 여행길의 피곤함을 달래줄 남도의 넉넉한 인심과 풍족한 농수산물을 바탕으로 만든 순천의 다양한 먹거리를 맛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아마 당신이 순천을 구석구석 제대로 만났다면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어쩌면 이 좋은 데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후회가 들 수도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꽃피는 봄날,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순천을 택한 당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만약 이곳을 방문했다면 당신은 순천이라는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친구를 얻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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