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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6. 2023

후미코의 한국나들이 1편


내 이름은 후미코(文子), 어제는 제 50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저는 오사카에 삽니다.

하라라는 예쁜 딸아이가 하나 있고요. 남편은 평범한 샐러리맨입니다. 나는 평범한 이름을 원했지만 영화배우 하라 세츠코(原月子)의 광팬이 남편이 우겨서 딸 아이 이름은 결국 하라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직장에 출근하고 아이가 학교에 가면 그다음부터는 제 시간입니다.

저는 그 시간에 독서 모임도 하고 사진도 배우러 다닙니다.

그런데 한 달 전쯤 후미코와 친구들 대장인 나나짱이 늦은 시간에 전화를 했습니다.


맥주나 한 잔 해요!


다 늦은 시간에 웬 맥주냐고 했지만 잠시 마음이 설렜습니다. 봄이었거든요.

올해 오사카는 벚꽃이 예년보다 좀 일찍 피었습니다. 오사카 성 벚꽃도 근사했습니다. 몇 년 동안 코로나 때문인지 관광객이 별로 없었습니다만 올해 갑자기 관광객이 확 늘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말이죠.


도톤보리에 나가도 예전과는 많이 분위기가 다릅니다. 나나짱과 만나기로 한 데는 동네에 있는 자그마한 나마비루 집입니다. 저는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친구들은 나와 비교하면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입니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요. 야끼도리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이죠.




제가 사는 오사카는 음식으로 유명한 동네입니다. 골목마다 맛집이 넘쳐나죠. 나나짱 혼자라고 생각했으나 가보니까 우리 사진반 8명의 회원이 반겨줬습니다. 정말 이런 날은 흔치 않은 데요. 환대를 받다 보니 갑자기 생각지도 못했던 횡재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이어졌습니다. 나나짱이 저에게 한국행을 제안한 것입니다.



저는 사실 오래전부터 조용필이라는 가수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엔카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고 오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뭔가 슬픈 듯 눈을 감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가슴 한편이 아려왔습니다. 어쩌면 제가 예전에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 좋아했던 우쓰라상(うつらさん)과 비슷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어디 있을까요? 우쓰라 지난번에 삿포로에 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만약 이 글 읽으면 꼭 연락해 줘!


아무튼 제가 조용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나나짱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좋아하는 건 티가 난다고 하잖아요. 처음에는 남편도 싫어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막상 드러내 놓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바다 저편에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나나짱이 저에게 생일 선물이라며 특별한 것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안 돼요, 너무 과해요!


하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체 뭐길래 저러지? 나는 속으로 얄궂은 나나짱이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벌인 거야?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나짱은 나를 보고 웃기만 합니다. 살짝 미워집니다. 나를 자꾸만 놀리는 듯했기 때문입니다. 잠시 후 나나짱은 자신의 핸드폰을 슬며시 내밀었습니다.


나나짱! 이게 뭐에요?

자세히 봐봐!


나나짱은 특유의 웃음끼 어린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서 뭐가 있나 하고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거기에는 조용필이라는 이름이 떡하니 있었습니다.


네가 조용필(チョ・ヨンピル)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아. 그래서 이번에 5월 13일 네 생일날, 조용필이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공연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깜짝 선물을 준비했지.


뭐라고, 나는 갑자기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습니다. 나나짱이 나를 골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나짱만이 아니라 나머지 여덟 명이 내 얼굴을 일제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 나나짱 그렇지만 그렇게까지야

우리 마음이야. 작년에 너 많이 힘들었잖아.


사실 제가 작년에 많이 아팠거든요. 초기에 발견하기는 했지만 항암치료를 받을 때마다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내가 대견했는지 나나짱이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나나짱과 여덟 명의 눈빛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습니다. 아,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과 살고 있다는 자체가 행복했습니다.

나는 일어나서 가볍게 목례를 올렸습니다. 눈물이 났지만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그들 얼굴을 보면 눈물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좋아, 좋아! いいね


나나짱이 일어나서 박수를 치자 나머지 여덟 명이 한꺼번에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즐거운 것도 잠시 내가 자리를 비우는 사이 남편과 아이를 어떻게 하나는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나나짱은 내 표정을 읽기라도 한 듯이


걱정 마! 이미 준이찌에게 다 얘기해 놨어.


두 번째 감동이 툭 하고 나를 쳤습니다.

오늘 밤, 왜 이렇게 좋은가요?


그리고 한 달 동안 기다리는 내내 마음이 들떠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한국 검색을 하다 보니 한국에 유명한 사진 모임에서 하필이면 그날 남대문 출사를 나간다는 겁니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제가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우쓰라가 강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놀란 가슴으로 여러 번 사진을 보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알던 우쓰라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사진을 배우고 있던 터라 참가하고는 싶었지만 어떻게 신청하는지도 모르고 해서 속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연세대 학당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미찌코가 잠시 귀국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미치코는 제 친한 친구의 사오리의 딸입니다. 사오리집에서 같이 차를 마시다가 우연히 남대문에 대해서 아냐고 물어봤습니다.


아줌마, 그건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시장이잖아! 거기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포도 많아요.

노포? 그게 뭐지?


있잖아 그 오래되고 대를 이어서 진행하는 그런 가게말이에요.

아하, 한국에도 그런 게 있기는 하구나.


하긴 그런 식당은 내가 사는 오사카에도 많이 있습니다. 오래된 식당일수록 단골이 많은 법이죠. 아버지와 아들이, 그리고 다시 또 그 아이들이 함께 다니는 식당이면 믿을만하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심지어 교토와 오사카, 에도를 비교한 속담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京きょうの着倒きだおれ、大阪おおさかの食くい倒たおれ、江戸えどの呑のみ倒たおれ(도쿄 사람들은 옷에 돈이 깨지고, 오사카 사람들은 먹는 것에 돈이 깨지고, 에도 사람들은 술에 돈이 깨진다)


그런데 왜 물어요? 후미코상.

사실은 내가 다음 달에 한국 가는데 거기에서 사진~


나는 사진 찍으러 남대문시장에 간다고 하면 미찌코가 어떤 반응일까 걱정되어 살짝 말끝을 흐렸습니다.


사진요? 무슨 사진?


그때 사오리가 끼어들었습니다. 사실 사오리도 이번 한국 여행팀의 한 명입니다.


글쎄, 후미코가 한국 사진 출사팀에 가고 싶다는구나.


나는 얼른 그만두라는 눈짓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미찌코는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사실 나 같은 아줌마가 한국 출사를 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잠시 미치고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럼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그러더니 핸드폰을 꺼내더니 내게 우쓰라 카페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나는 그렇게 힘들게 찾은 카페를 그 아이는 순식간에 찾았습니다. 그러더니 표정이 밝아졌습니다.


이 사람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람인데 이제는 오사카팬까지 생기겠네요. 하하.

잠깐만 기다려봐요. 내가 한번 알아볼게요.


아, 진짜 미찌코는 진심이었습니다. 이제는 아예 표정까지 변해서 한국 친구에게 카카오톡을 보내고 한참을 그렇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얼 했다 봤더니 한국 출사팀에 갈 수 있느냐고 쪽지를 보냈다는 겁니다.


오, 맙소사. 미찌코!

얘가 이렇다니까. 나도 못 말려.


내가 난처하거나 말거나 사오리는 새로운 도전거리가 생긴 것에 대해 신이 나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차를 마실 때까지도 아무 답이 없었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게 그렇게 쉽겠어?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이틀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오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후미코, 지난번 그거 가능하다는데

진짜? 진짜!


나는 놀라 하마터면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습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간식으로 먹을 라멘 물을 끓이다가 다 태워먹었습니다 하하)


새로운 고민이 생겼습니다. 우리 일행이 열 명이나 되는데 나 혼자 남대문 출사를 가면 나머지 친구들은 뭘 해야지? 순간 우리 일행 10명을 신청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나는 다시 한번 사오리에게 정중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사오리상, 미치코에게 일본인 아줌마 10명이 혹시 참가할 수 있는가 한번 물어봐줘. 폐는 끼치지 않을 테고 사례는 꼭 하겠다고 말이야.

열 명?


수화기 너머에서 놀란 사오리의 음성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기는 열 명이면 대부대인데 누가 쉽게 허락을 할까 싶기도 했습니다.


알았어. 아무튼 말은 해볼게.


그날 저녁 늦게 미찌코가 직접 전화를 해왔습니다. 밝은 목소리였습니다. 


아줌마 축하해요. 우쓰라상이 가능하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놀라더니 일본 아줌마 10명이 한국에 와서 좋은 인상을 받으면 어떻겠냐 설득을 하니 웃으며 허락을 했다고 합니다. 우쓰라, 만세!

어쨌거나 13일은 내 인생 최고의 날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낮에는 남대문에서 노포 순례를 하고 저녁에는 조용필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늦게 퇴근한다던 남편이 일찍 집에 왔습니다. 밤 산책을 나가자고 하네요. 아쉽지만 그만 써야겠습니다. 사실 이런 글을 여기에 올려도 좋은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남편은 일본 아줌마 글을 누가 읽겠냐며 은근히 퉁명스럽습니다. 그때 저희와 남대문 노포에서 만났던 분들의 응원을 기다립니다. 특히 우쓰라상이 꼭 읽어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다음 편이 궁금하시면 저 후미코에게 힘을 실어주세요!








* 이 글은 후미코라는 가상 인물의 한국 남대문 노포 출사기를 다룬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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