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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16. 2023

후미코의 한국나들이 2탄

- 남대문 노포, 그리고 조용필


드디어 어제 우리는 점심을 먹고 시청역 8번 출구에서 만났습니다.

일본의 지하철과 달리 한국의 지하철은 규모도 크고 깨끗합니다. 물론 일본이 기차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연결망을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마는 한국의 지하철을 타보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틀 동안 신나게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습니다. 특히, 북촌 한옥마을의 느낌은 이채로웠습니다. 예전에 전통가옥으로 유명한 다카야마(소교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유명합니다)에 간 적이 있었는데 북촌 한옥마을은 수백 채의 한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은 어디를 가나 관광객이 많습니다.


친구들은 다들 남대문으로 출사를 나선다니 아침부터 설레나 봅니다. 우리는 간단하게 가로수길을 다녀온 후 점심을 먹고 8번 출구에 모였습니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처음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없다 보니 슬쩍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도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둘 사람들이 8번 출구 앞에 모였습니다. 처음에 저는 우쓰라상이 누군지를 알 수가 없어서 초조했습니다. 사진을 보기는 했지만 실제 보면 또 다를 테니까요. 약속 5분 전쯤, 흰 줄무늬 옷을 입은 우쓰라상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모델처럼 키가 커서 놀랐습니다. 머뭇거리는 저를 보고 우쓰라상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우쓰라입니다. 혹시 후미코상?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후미코입니다. 이들은 제 친구들입니다.

어서오세요.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을 안내할 사진작가 우쓰라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일제히 고개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나머지 한국분들도 합류해서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표정이 밝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남대문 노포 출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우리 일행은 소풍이라도 나선 것처럼 진짜 신이 났답니다.




남대문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마 주말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았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우쓰라상을 놓칠까 봐 신경이 곤두섰습니다. 잠시 한눈을 팔면 남대문시장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일본 아줌마 10명이 종종걸음으로 우쓰라상 뒤를 졸졸 따라가는 모습을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납니다.




코로나가 끝나서인지 곳곳에서 반가운 일본어가 들렸습니다. 물론 다른 외국인도 엄청 많았습니다. 군데군데 히잡을 쓴 여인들도 보였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다니지 못했던 사람들은 진짜 지금부터 여행을 즐기는 모양입니다. 곳곳에 남대문시장 특유의 길거리 음식이 눈에 뜨였습니다. 일부 음식점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제야 왜 사람들이 남대문, 남대문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쓰라상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일행 중 몇몇은 사진을 찍다 우쓰라상을 놓치기도 했기 때문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중간에 끼어서 마음이 조마조마했습니다. 물론 우쓰라상이 시작할 때 중간에 헤어지면 그대로 집으로 가면 된다고 얘기를 했지만 남대문에서 집으로 가기까지는 너무 멉니다. 우쓰라상, 농담이라는 걸 알지만 외국인에게는 그런 농담도 감당하기 어려워요. 하하.




물론 호텔 명함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중간에 헤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입니다. 우쓰라상은 남대문에 사람이 너무 많다면서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물론 저는 한국어를 조금밖에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쓰라상이 얘기를 할 때마다 번역기를 돌려서 들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어를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갔던 길은 내가 그동안 드라마에서 봤던 한국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서울처럼 큰 도시에 이런 골목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남대문시장을 빠져나갔습니다. 길 오른편에 작은 건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빌딩 사이에 애처롭게 보이는 건물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성처럼 보였습니다. 우쓰라님은 그게 남대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확실히 한국과 일본은 건축물에서부터 분위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제가 사는 오사카성만 하더라도 오랜 시간을 거쳐 건축을 진행했기 때문에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남대문은 몇 년 전에 불에 타서 사라져 버렸다고 하는군요. 어쩐지 그다지 오래되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진짜 이런 문화재는 우리 모두가 오래 지켜야 할 문화유산인데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서울 도심 한복판에 저렇게 성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우리는 큰길을 지나 좁은 골목길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우쓰라상이 가는 도중에 잠시 멈춰 서서 도로 아래편을 쳐다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멈춰서 아래를 쳐다보았지요. 아, 이런 곳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또 재미가 상당합니다. 우리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끼리 왔더라면 절대 보지 못했을 풍경입니다. 길게 늘어선 우리들 표정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만 여기는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좁은 골목길, 어떻게 그런 곳에 사람이 살까 하는 그런 골목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골목길에는 이상하게도 거의 사람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길을 잃을 걱정은 없어 보였습니다. 같이 출사를 나간 사람들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우리도 정신없이 그 틈에 섞여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얼마 전에 카메라를 핸드폰을 남편이 바꿔줬는데 오늘따라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좀 마음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벽에 무슨 종이가 붙어 있어서 “이게 뭐지?” 하고 번역을 해보니 임대라는 글자였습니다. 한두 곳도 아니고 여러 곳에 그런 종이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살기가 팍팍해졌다고 그러던데 여기도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경제가 안 좋을수록 가진 이들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지만 없는 이들일수록 더 타격이 심한 법입니다.



그래도 골목 군데군데는 아기자기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데 불이 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골목길을 빠져나왔을 때, 우쓰라님이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사람들이 갑자기 핸드폰과 카메라를 일제히 들어 찍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덩달아 찍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이 교주님을 만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참 재미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골목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우리가 처음 출발했던 그 장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잠시 다른 세상에 갔다가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없던 골목길에서 다시 또 넘쳐나는 남대문시장으로 왔기 때문입니다.





두 시간 남짓 빠듯하게 정신없이 걸었더니 살짝 배가 고픕니다. 시장의 큰 재미는 먹는 건데 좀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아는지 우쓰라님은 최고라고 자랑하던 식당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습니다. 식당 이름은 <막내횟집>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의 식당은 예전에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일행은 계단을 올라갈 때 계단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너무 좁고 위험해 보였습니다. 아직까지 이런 건물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식당에 들어가자 안은 제법 넓었습니다. 이미 식당 주인은 우리를 위해 식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고등어조림과, 감자조림 그리고 회, 마지막으로 회덮밥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우쓰라님은 술을 무척이나 좋아하나 봅니다. 저는 한 잔 따라서 홀짝홀짝 마시는 데 익숙한데 한국 사람들은 역시 통이 커서인지 한 병 가져올 때 술을 몇 병씩 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마시는 속도도 엄청 빨랐습니다. 그걸 어찌 다 먹나 싶었더니 진짜 그 짧은 시간에 스무 병도 넘는 맥주를 마셨어요. 남편이 제 앞에 쌓인 병을 보면 기절할지도 모릅니다. 평소 저는 맥주 한 잔 정도가 딱 제 주량이라고 생각하고 살았거든요. 이건 제가 마신 술이 아닙니다.




어쨌거나 우쓰라님은 사장처럼 계속해서 안주와 술을 날랐습니다. 마치 식당 사장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는 출사에 나온 사람들과 아주 흥겹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다 보니 행복해졌습니다. 만약 한국의 남대문 시장을 우리끼리 왔더라면 골목 출사의 색다른 느낌은 도저히 맛보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는 한참 웃고 즐기며 나왔습니다. 정신없이 먹었기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쓰라님은 우리에게 남은 한국에서의 일정을 재미있게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분들도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남대문시장을 나오면서 몇 컷을 더 찍었습니다. 언제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싶어서요.




우쓰라님 일행과 헤어지다 보니 오후 5시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있는 남대문 회현역에서 잠실 종합경기장까지는 대략 35분 정도 걸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배가 터질 만큼 많이 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먹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대문 맛집들을 지나오다 보니 나나짱이 잠시 발을 멈추고 우리를 불렀습니다.



진짜 배부르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또 이게 들어갑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우리는 너무 재밌어서 우리 서로를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드디어 조용필 공연을 보러 갑니다. 이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한달 동안 마음이 설렜습니다. 처음 우리는 오른쪽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나 직원들이 막아섰습니다. 우리 좌석은 잔디밭이라서 그쪽이 아니라 다른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공연 시간이 채 30분도 남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안내에 따라 서둘러서 이동했습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있었습니다. 표를 검사하는 곳에서는 야광봉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아마도 응원할 때 쓰라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공짜랍니다. 우리는 횡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 자리는 잔디밭 좌석 16열이었습니다. 나나짱이 어찌 그렇게 좋은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경기장 한가운데 잔디밭에 플라스틱 의자들이 쭉 들어서 있습니다.


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은 사실 조용필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사실 알고 기꺼이 이 콘서트를 예매해 주었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친구들입니다. 잠시 후 조용필 가수가 화면에 나왔습니다. 우리 좌석은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수 얼굴까지는 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광판이 컸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노래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야광봉을 흔들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야광봉을 같이 흔들면서 노래를 즐겼습니다. 조용필상은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유명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의 대표노래인 <비련의 여자>를 비롯해서 <여행을 떠나요> 등 수많은 히트가요가 흘러나왔습니다. 중간에 처음 들어보는 곡도 있었습니다. 아마 신곡인 모양이었습니다. 엄청난 무대와 사람들의 환호가 들려서 뒤를 돌아보니 2층, 3층까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한국인도 구경하기 힘들다는 조용필 콘서트를 이렇게 직접 볼 줄이야. 제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역시 나나짱 최고! 이따가 많이 많이 사랑해 줄 거야.


우리는 그렇게 한참이나 조용필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들었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7시 50분과 무렵 시작된 공연은 거의 10시가 되어서 끝났습니다. 공연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나짱을 비롯해 친구들은 가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해서 제가 잠시만 있어 보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다시 조용필 가수가 등장했습니다. 바운스 바운스 바운스를 외쳤습니다. 이런 공연은 정말 끝내줍니다. 앉아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같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 정말 일본에서는 야구 경기를 제외하고는 이런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기가 막힌 풍경입니다. 저는 이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몇 장 사진을 남겼습니다.


공연이 다 끝나고 사람들과 함께 나오는데 그것도 장관이었습니다. 부부가 함께 온 팀, 딸아이의 손을 잡고 온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물론 젊은 친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들 감동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들 모두 가수 조용필과 함께 추억을 나누며 늙어왔을 겁니다. 친구들도 공연에 대만족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화장실을 찾을 수 없는 겁니다. 우린 일단 사람들 뒤를 따라가서 지하철로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지하철에는 이미 긴 줄이 있었습니다.


이게 뭐지?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나?


알고 보니 그건 지하철 줄이 아니라 화장실 줄이었습니다. 엄청나게 긴 화장실 줄이 있습니다. 우리도 한참을 기다렸다 죽기 직전에 간신히 해결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니 오늘 하루가 꿈같았습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던 남대문시장,

음식 냄새로 가득찬 골득

오래된 가게들이 주는 정겨운 풍경들,

그리고 이어졌던 조용필 콘서트.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는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지만 또 잊을 수 없는 하루이기도 합니다.

고마워. 나나짱 감사해요. 미치코도 고마워.

우쓰라상 오늘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나중에 오사카에 오면 꼭 연락하세요.

함께 출사 했던 여러분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오래오래 간직할 거 같아요.

모두 사랑합니다.



*이 글은 후미코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대문 출사와 조용필 공연 이야기를 다룬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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