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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01. 2023

용늪 가는 길

강원도 인제에 있는 용늪을 다녀온 후 아쉬움은 더 오래 남는다. 

몇 년을 벼르고 별러서 갔던 용늪이었다. 이전에 강원도에 나비 탐사를 왔을 때도 용늪이라는 표지판을 스쳐 지나갔기 때문에 내게 용늪은 그렇게 낯선 지명은 아니다. 용늪이 대한민국에서 람사르 슾지 1호로 선정되었는 상징성도 그렇지만 숲을 공부하면서 숱하게 이름을 들어보았고, 나비 탐사 때 그 옆을 여러 차례 스쳐 지나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용늪을 눈으로만 보고 왔기 때문이다. 1분이라도, 아니 30초만이라도 눈을 감고 용늪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조금 눈치를 보더라도 코를 벌렁거리며 용늪이 내게 풍기는 그 냄새를 맡고 왔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고작 눈으로 용늪을 쓱 한번 훑어보고 지나왔을 뿐이다. 너무도 빨리 휘익!



물론 감사하게도 용늪은 처음 찾은 우리에게 올해 처음 핀 비로용담을 보여주었고, 끈끈이주걱과 꽃을 보여주었으며, 구름표범나비까지 보여주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장엄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약 용늪이 내가 마음먹으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더라면 아마 이렇게 진한 아쉬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사는 전주에서 용늪까지 온다는 것은 제주도를 가는 것 이상으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거리는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 있다. 우리는 공간을 떠올릴 때 자신과의 거리를 앞에 두고 계산하는 습관이 있다. 여기에 심리적인 거리가 개입하면 좀 더 상황은 복잡해진다. 멀리 여행을 떠나왔다가 자기가 아는 지명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는 그 공간이 나의 의식과 삶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강원도라는 이름만 들어도 먼저 가슴이 먹먹해지고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가끔 내가 죽을 때까지 강원도를 몇 번이나 찾겠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더구나 이번 목적지인 용늪은 인제에 속하기 때문에 강원도 내에서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어림 잡아도 왕복으로 족히 10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달려와서 불과 20여 분 동안 용늪을 봤으니 그 허탈함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다. 글로 보는 용늪과 눈으로 자기가 직접 체험하며 느끼는 용늪 사이의 간극은 크레바스만큼이나 깊고 넓다. 용늪에 들어서기 전, 두 분의 해설가께서 용늪 이야기를 하셨지만 듣는 내내 실감은 별로 나지 않았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 저편의 경남 우포가 겹쳐질 뿐이었다. 하지만 데크를 내려서는 순간 상황이 달라졌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한 용늪이 한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장대한 크기는 눈으로 아무리 담고 싶어도 발버둥 쳐도 도저히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대암산 남서쪽 사면에 있는 1,280m의 구릉지대에 형성된 용늪은 북방계 식물이 남하하다가 남방계 식물과 만나는 곳, 즉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는 내내 여러 사초가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길을 걷다 보니 사초 비율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고 크기 또한 크다는 사실이 다가왔다. 뿐만 아니라 해설사님은 물을 머금은 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어서 밟으면 마치 땅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게 용늪의 자랑인 이탄층 때문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탄층이란 식물이 죽어도 채 썩지 않고 쌓여 스펀지처럼 말랑말랑한 지층의 일종으로 용늪에는 평균 1m에서 1.8m 정도 쌓여있다고 한다. 용늪에 이탄층이 발생한 이유도 흥미롭다.  용늪은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어 1년 중 170일 이상이 안개에 싸여있다고 한다. 그 결과 습도가 높고, 5개월 이상이 영하의 기온으로 지내야 하기 때문에 적설기간이 길어 식물이 죽어도 잘 썩지 않고 그대로 쌓여 ‘이탄층’이 발달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이 마련되었다. 나는 얼마 전 다녀온 태국 치앙다오가 생각났다. 용늪처럼은 아니지만, 태국에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이번 탐방의 가장 큰 목적은 용늪이 아니었던가? 당연히 다른 지역보다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해설사님의 걸음은 너무 빨랐고, 우리들은 용늪에 고정시킨 시선을 채 거둬들이지도 못한 채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뒤따라야 했다. 이렇게 스쳐 지나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의 속도였다. 뒷팀이 있기 때문에 진도를 나간다고는 했으나 뒤에 올 팀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비로용담 꽃이 핀 게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해설사님에게 그 사실을 물어보자 어제도 확인을 했는데 꽃 핀 개체를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를 하셨다. 일주일 전에 피었다는 기생꽃도 못 보고, 기대했던 비로용담도 못 보고 그 아쉬움을 끈끈이주걱을 보는 것으로 달래야 하나 싶었다. 그나마 끈끈이주걱까지도 시야로는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거리였다. 



우리 일행 가운데는 사진 찍는 동안 발을 헛디뎌 아래로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바로 눈앞에 있는데 사진으로 제대로 찍을 수 없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현이었다. 생태계를 보전해야 한다는 의미는 물론 안다. 나 역시 산자고의 수난을 직접 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필요가 있다는 데 동감한다. 인간의 욕심이 자연을 어떻게 망쳤는가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관찰할 수 있도록 데크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타협점을 찾는 정도면 어떨까 싶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약간의 배려를 해주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멀리 지켜보는 것만 강제한다고 능사는 아니다. 오히려 이곳을 참관하는 이들에게 기생꽃이나 비로용담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이후에 야생화에 지속적인 관심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인도 그렇지만 특히 숲에서 하시는 분들이나 그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끈끈이주걱을 야생에서 몇 번이나 보겠는가. 사진으로 보는 것과 눈앞에서 관찰하는 것은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나 역시 신안 분재공원에 있다는 끈끈이주걱과 이삭귀개를 찾느라 몇 시간을 헤맨 적이 있다. 결국 못 참고 포기하고 돌아왔지만, 그곳을 찾을 때마다 진하게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끝나야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우리의 발길을 더디게 만들었다. 그러던 찰나, 누군가 비로용담을 보았다고 우리를 부른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가 보니 역시 비로용담이 맞다. 이전까지 한 번도 비로용담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진짜 비로용담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사진과 실물이 일치한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비로용담이 맞다고 확신했다.



기생꽃을 보지 못해 낙심하던 우리에게 비로용담의 등장은 용늪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반전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비로용담은 용늪에 대한 또 다른 좋은 기억을 남겨주었다. 아마 용늪을 찾은 이들도 비로용담을 제대로 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용늪 개방 시기 자체가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 한시적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다시 또 비로용담이 개화하는 시기를 맞춘다는 것은 쉽지 않다. 올해처럼 이상 기온으로 꽃들의 개화 시기가 빨라진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심지어 해설하시는 분이 어제까지 찾았는데 못 봤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탐사길에 나선 이들은 억세게 운이 좋은 편이다. 



일단 비로용담을 보고 나니 아까의 서운함과 아쉬움이 다 사라진 듯했다. 여름철 닻꽃이나 제비동자꽃처럼 용늪을 대표하는 여러 식물이 있지만 기생꽃이 진 이 마당에 남은 유일한 대안은 비로용담이었다. 그 넓은 용늪에서 딱 거기만 꽃이 피어 있었다. 아직 피지 않았다고 포기했던 순간에 만난 비로용담이라 더 극적이었다. 더군다나 올해 처음 핀 비로용담을 보았으니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생겼다. 


그제야 미루었던 과제를 끝낸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마음의 여유가 생긴 나는 용늪을 품고 있는 푸른 하늘과 주변 산하를 사진에 담았다. 용늪에서 왕국을 이루며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이 치열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그 비밀의 세계를 엿보는 일은 잠시 다음으로 밀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용늪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보았던 범꼬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용늪과 이별했다. 해설사님이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이야기하셨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 나 역시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용늪에서 내가 느꼈던 그 먹먹함을 조금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은 그런 바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수천 년의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용늪을 이렇게 만나는 게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다. 지금은 이렇게 훌쩍 왔다 가지만 다음에 다시 만난다면 용늪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싶다. 그가 바람결에 흘려보내는 이야기들을 받아 적으면서 나는 또 얼마나 용늪을 사랑하게 될 것인가. 어쩌면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용늪에서 별이 쏟아지는 걸 보거나 새벽을 맞이하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음 팀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배려도 아름답지만 용늪과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용늪을 스쳐 지나가면서 힐끔 보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 좀 더 사랑스러운 눈으로 용늪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용늪을 구경도 하지 못하고 죽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아마 대부분이 용늪을 보기는커녕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잠시나마 용늪에 발을 담겼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감사할 일이고, 눈물겨운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용늪을 빠져나오면서 한 번 더 쳐다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눌렀다. 다시 용늪을 보면 떠나고 싶지 않은 내 욕망이 나를 사정없이 흔들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2023년 유월 햇살 좋은 날, 나는 그렇게 용늪을 처음 만났다.     



<용늪의 노래>                




봄바람이 불면 내 몸이 뜨거워지는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내가 끄라리고 온 무게들이

나를 누를 때마다 나도 힘겨웠다      


바람 부는 날을 기다리면  

어김없이 봄이 오고 

헐벗었던 내 몸에도 푸른 말들이 돋아나고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치듯 사방으로 출렁인다     


그럴 때면 가끔 나도 이곳에서 벗어나 

저 바람을 따라 어디론가 가보고 싶은 것이다

매일 보는 하늘과 주변 나무, 짐승들의 시선을 떨치고

발길 닿는 데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고슬고슬한 마른자리에 누워 

새가 물어다 주는 향기로운 흙냄새 옷을 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웃으며 

어디든 갈 데까지 가보고 싶은 것이다 

    

가다가 지치면 아무 길목에서라도 

노곤노곤한 다리도 쉬게 하고

숭숭 뚫린 내 가슴도 다독이면서

햇살 좋은 날을 즐겨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길을 만나면

목에 잔뜩 끼어 있던 먼지도 훌훌 털어버리고

내가 옛날부터 좋아하던 노래도 한 소절 부르면서 

사복사복 걸어가고 싶은 것이다


가다가 운이 좋아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면 

그동안 내가 용늪에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이며 

짐승들이며 곤충들 이야기 마음껏 풀어놓고

낄낄 대보고 싶은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아니 어쩌면 앞으로도 못할 수도 있지만 

나도 그런 꿈 하나를 잊지 않고

매일 아침 새벽이슬이 나를 건드릴 때마다

수많은 뭇별들이 밤마다 나를 굽어 볼 때마다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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