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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May 31. 2023

지금은 자연과 사랑에 빠질 때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해질녘, 어둠이 몰려 올 때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대상이 내가 키우는 개인지 나를 해치기 위해 오는 늑대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 시간대를 지칭하는 프랑스 표현이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 공포와 두려움도 함께 오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밝음을 대변하는 선과 어둠을 머금고 있는 악이 그 자리를 바꾸는 순간이야말로 미지의 영역이자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에코샵 홀씨의 양경모 대표의 새소리 강좌를 듣기 위해 온 경남 산청에서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공포보다는 기대가,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섰다는 사실이다. 강의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밤에 우는 새와 아침에 우는 새를 이어주는 새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면 새들이 시간대를 이어 울 듯이 우리 삶도 아슬아슬한 연속성을 지니며 이어진다. 간신히 하나의 매듭을 풀었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또 다른 고민이 옆에 와 있다. 


간밤에 산청에는 폭우가 깊었다. 하루 종일 비가 왔고 새벽 무렵 과연 새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눈을 뜨자마자 숙소에서 나와 보니 사방은 새소리였다. 가까이서 우는 소리부터 멀리 우리는 새까지 내 무딘 귀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새소리를 다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사방에서 생명의 소리들이 들려오는 느낌은 경이로운 순간이었다. 


새벽 4시는 눈보다 귀가 먼저 열리는 시간이다. 사방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을 때 귀는 가장 먼저 세상이 열리는 소리를 듣는다. 밤새 울던 새가 사라지자 그 침묵을 깨고 아침의 문을 여는 새들이 온다. 때로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고자 때로 구애를 하고자 새들은 아침 고요의 침묵을 연다. 


사방은 새 울음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마 어둠이었더라면 귀가 더 먼저 더 빨리 반응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새들이 나는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새들의 울음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가만 눈을 감아 본다. 왼쪽, 오른쪽, 아니 앞뒤에서 새들이 울어댄다. 듣고 있으니 정신이 혼미할 정도이다.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 분명히 귀에 익은 소리다. 하지만 분간할 재간이 없다. 어젯밤에 들으면서 마음에 새겨두었지만 각오는 어디로 갔는지 아침에도 구분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어 어젯밤에 들었던 새소리를 따라간다. 멀리서 소쩍새가 울고 검은등뻐꾸기, 그리고 호반새도 울었다. 비가 온 후 습도가 높은 시간대에는 새들이 우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린다. 오늘처럼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이면 새소리는 더 높고 멀리까지 전달된다.


어제와는 분명히 다른 소리다. 새소리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난 후, 새소리가 더 잘 들리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건 나만은 아니다. 여전히 구분은 쉽지 않지만 조금은 새와 더 친해진 느낌이다. 가만가만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따라가 본다. 잘 듣다 보면 어디 하나쯤 내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릴 것이다. 그래 저기 어디쯤에는 되지빠귀, 꾀꼬리, 그리고 검은등뻐꾸기 소리도 들린다. 아, 딱새와 박새가 내는 소리가 저런 거였던가. 잠깐 새소리를 듣는 사이에 온갖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어제 사람들 반응이 뜨거웠던 호반새 소리를 들으며 더듬더듬 눈으로는 나무와 숲을, 귀로는 새가 허공에 흩뿌려놓는 노래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나비를 공부할 때도 그랬지만 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어디 새만 그러랴. 식물도 그렇고 곤충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속도에 취해 주변을 관찰하는 힘을 잃어버린 때문이다. 눈앞에 현란한 모습에 취해 눈 감고 새 울음소리를 들어보는 일을 잊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알도 레오폴드가 지은 『모래 군(郡)의 열두 달』은 자연에 대한 나의 무지를 일깨우기에 충분한 책이다. 


처음부터 이 책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고흐가 당대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초창기의 반응은 그렇게 뜨겁지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을 거듭하여 출판한 지 25년 동안 100만 권 넘게 팔리면서 오늘날 『침묵의 봄』과 더불어 환경생태학을 이야기하는데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히고 있다. 심지어 ‘현대 환경운동의 바이블’이라 칭하는 이까지 있을 정도이다.      


우리 집 목재 더미는 모두 강에서 주워 모은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개성의 집합일 뿐만 아니라 상류지대 농장과 숲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담고 있는 한 권의 책이기도 하다. 이 묵은 판자 자서전은 아직까지 대학에서 가르치지는 않지만 하나의 문학이다. 모든 강가 농장은 망치질이나 톱질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이다. 홍수가 밀려오면 언제나 새 책이 도착한다.(홍수의 계절, p.48)       


일찍이 알도 레오폴드가 간파했던 것처럼 매일 아침 우리에게는 새 책이 도착한다. 어제 다 읽지 못했다 할지라도 새 책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것은 때로 산딸나무의 화사한 꽃, 화려한 호랑나비의 날갯짓, 휘파랑새의 노래로 다가오기도 한다. 새로운 책을 읽노라면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자연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삶을 살았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자연에 눈을 뜬다는 것은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어느 순간,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어제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보냈던 나무 이름이 궁금하고, 지금 울고 있는 새 이름이 무엇일까 알고 싶어진다. 내 눈앞에서 스쳐 지나간 나비 이름이 이름을 더듬거리며 상상도 해보는 것이다. 이 책은 한 편의 감성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자신의 주변을 소소하게 더듬어가는 몇몇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은 우리를 위스콘신의 숲속으로 이끈다. 


어둠에서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청각뿐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길라잡이 삼아 우리는 나무로, 숲으로 온 신경을 쏟는다. 어둠이 빛으로 변할 때 우리는 귀로 세상을 읽는 데서 벗어나 눈으로 마주하게 된다. 귀의 문이 좁아지는 대신에 눈의 창이 더 넓어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어제까지 안 보이던 벌레가 갉아 먹은 잎이 보이고 하늘을 나는 새 이름이 궁금해진다면 이제 당신도 자연으로 발을 옮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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