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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30. 2023

교정의 길로 간다는 의미

우리가 작업할 천자문은 총 32장의 나무 판본이다. 중간을 기점으로 삼아 접으면 총 64장이 나온다. 인쇄 시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나온 이후에는 이를 원본 텍스트와 비교하는 작업을 거친다. 


이때 제일 먼저 검토해야 하는 것은 우선 외곽선과 계선이다. 이를 먼저 체크하고 작업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나중에 계선이 글자와 맞물려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외곽선과 계선은 글자를 작업한 이후에 마지막으로 작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벌 인쇄 후 교정 작업은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친다. 원본 텍스트와 자신이 판각작업한 것의 차이점을 체크하는 것이다. 흔히 하는 실수 중에 하나는 삐침이 계선에 닿았는데 닿지 않은 걸로 작업하거나, 닿지 않았는데 닿은 것으로 하는 경우이다. 이 실수는 전체 문제 중 30% 정도로 다른 실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전체 공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처리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칼로 처리가 가능한 경우이다. 먼저 원본과 자신이 판각한 판목을 비교하면서 미흡하게 처리한 부분에 대해서 칼로 마무리 작업한다. 이때는 망치로 때리지 않고 끌어당겨서 처리하는 방식을 취한다.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은 칼의 상태이다. 본격적인 교정에 앞서 작업에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칼을 제대로 벼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글자를 제대로 처리할 수가 없다.


두 번째 방법은 도저히 글자를 살릴 수 없을 경우이다. 이때는 과감하게 나무를 붙여 다시 새기거나 매목(埋木)해야 한다. 획이 떨어져 부분적으로 복원해야 하는 경우는 적당한 크기의 나무를 아교로 붙인 후 새김으로써 가능하다. 하지만 떨어진 글자나 글자가 뭉개져 도저히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 그 부분을 통째로 도려내어 대체나무로 메목한 후 글자를 새기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처럼 초벌 인출 작업에서는 각자를 하면서 자신이 작업한 부분에 어디가 문제가 있으며,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다음 단계에 답이 나온다. 그러므로 자신이 각자 한 글자와 원본 텍스트가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를 정확하게 체크하는 것이야말로 교정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각수는 자신이 평소 어떤 실수를 반복적으로 행하는가, 또 글자에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야를 확보한다. 



초벌 인출 및 교정 과정을 거치다 보면 본인 스스로 깜짝 놀랄 만큼 좋아진다고 한다. 마치 아파트 입주 전 하자 공사를 하는 것처럼 전체를 점검하고 어느 부분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전략을 짜는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교정은 인쇄용 판본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며 미흡한 부분을 수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각수로서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이다.               


실제로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각수도 중요하지만 출판과정을 전체적으로 검토하고 방향성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의 참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비록 작품의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작품을 보는 눈썰미며 공간 지각력이 뛰어난 이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이 발견하지 못한 오류를 명확하게 짚어내고, 실제 판각 작업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설령 판각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출판하는 과정에서 교정자로 얼마든지 참여가 가능하다.



교정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판각은 철저하게 개인 작업이다. 그러다 보니 전체적으로 균질한 느낌을 주지 못한다. 흔히 말하는 일관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개별 작품으로 뛰어날 수 있지만 이를 모아 놓으면 어느 정도 편차라 있기 마련이다. 이를 최대한 조율해서 전체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교정작업에서 이루어진다. 물론 교정을 혼자 작업할 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같이 검토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상당하다. 


첫째, 본인이 보지 못했던 오류 부분을 다른 이가 확인할 수 있다. 여러 명이 교차 점검하고 작업함으로써 완벽도를 높일 수 있다. 한 명이 설령 놓쳤다 쳐도 다른 사람이 이를 보완하기 때문에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을 낮춘다. 각수로서는 그만큼 안전망이 생긴다고 할 수 있다. 

둘째, 공동 협업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끈끈한 동료애가 만들어질 수 있다. 평소 판각 작업은 공동 작업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대개는 각자의 공간에서 개인 작업이 이루어진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만의 세계에 함몰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다 보면 잘못된 습관이나 문제점을 개선할 기회가 별로 없다. 특히 본인의 습관, 본인이 어떤 점이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는 셈이다. 

셋째, 같이 상의하고 검수하는 과정에서 글자 획이나 삐침, 여백이나 간극 등을 꼼꼼하게 살펴봄으로써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는 제품의 최종 출고 전 꼼꼼한 검수 작업을 통하여 불량률을 낮추는 것과 유사하다. 결국 공동작업은 최종 결과물의 완성도를 극대화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각수는 각자 타고난 역량이 다르다. 어떤 이는 섬세하고 깔끔하게 판각을 하는 이가 있는 반면 반면에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마음처럼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교정 과정은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지 못한 이에게 다시 한번 기적의 기회를 주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즉 초벌 인쇄 후 교정 작업은 죽은 작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출판의 미학을 결정하는 고난도의 작업이다. 교정과정을 거침으로써 각수 입장에서는 자신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실력 있는 동료들과 이에 대해서 해결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양질의 출판 결과물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나는 판각 직전에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도저히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다. 서화관에서 작업을 해야 했는데 격리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불가능했다. 결국 내가 맡았던 부분은 다른 이가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론적으로 아쉽게도 내가 새긴 판본이 없다. 첫 모임을 할 때 다들 자신이 새긴 판본이 있는데 나만 없는 느낌이어서 계속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 나도 교정에 일원으로 참여함으로써 책 출판에 참가할 수 있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오늘 다른 선생님께서 작업한 판본을 받았다. 한자는 비교적 각자 상태가 양호했으나 한글이 문제다. 교정작업 내내 나만의 판본이 생긴 셈이다. 이게 과연 수정이 가능할까 싶기도 하지만 앞으로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판각에 뛰어난 실력을 갖춘 이도 있고 미흡한 이도 있지만 이 과정에 참여한 모두 호흡을 맞춰가며 작업을 하다 보면 지금과는 다른 길이 보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판각에 임했던 마음가짐과 그들의 작품이 세상 사람들에게 어떤 과정을 거쳐 선보여졌는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출이 끝나고 실제 교정에 들어가면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고 판각과정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에 좀 더 접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판각만 했을 때의 매력과 그 아름다움에 빠져드는 일만 남았다.


실제로 교정을 하다 보면 자신이 글자를 새길 때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아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처음 작업할 때 불완전하게 하면 이후 교정 때 더 많은 손길을 거쳐야 하고, 그 결과물 또한 좋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서 교정을 해본 이들은 판각 작업을 할 때 조금 더 신경을 쓰고, 후에 다시 손을 대야 할 여지를 줄이고자 더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신이 새긴 판본을 인출하고 이를 교정하는 작업은 글 쓴 후에 출판에 앞서 교정하는 과정과 상당히 유사하다. 


특히 이 작업은 혼자 함으로써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여럿이 다시 점검하고 칼로 마무리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고 출판물로서의 가치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각자 하는 판각보다 교정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고 말하는 이가 있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교정이야말로 인쇄문화의 꽃이자 출판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꽃을 화려하게 피우기 위해 지금 준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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