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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30. 2023

인출(탁본)을 하는 이

인쇄에서 먹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우리나라에서 먹을 사용한 연원은 상당하다. 청주에서 고려시대 목관묘 안에 들어 있던 먹 ‘단산오옥(丹山烏玉)’이 발견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먹에 대한 애착도 크다. 먹이 없던 시절에는 석날(石涅)이라고 하는 검은색의 광물질을 빻거나 갈아 옻(漆)과 섞어서 썼다고 한다. 


먹 중에 최상으로 치는 먹은 소나무를 태워 생긴 그을음으로 만든 송연묵(松煙墨)이다. 1t 정도의 소나무를 태우면 1kg의 그을음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이것을 아교와 섞어 단단한 먹을 만드는 것이다. 인쇄에서도 중요한 경우는 이 송연목에 증류수를 넣어 갈아서 쓴다. 


각자를 마친 나무에 먹을 칠하는 과정에는 상당히 많은 먹물이 필요하다. 그 이유는 이제 막 각자를 마친 나무가 먹을 흡수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마른나무가 먹물을 흠뻑 머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에 여러 번 먹물을 발라줌으로써 인쇄를 할 수 있는 최적 상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균질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고르게 먹을 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만약 어느 한쪽이 먹이 제대로 입혀지지 않으면 그 부분에 문제가 발생한다. 반대로 진하게 칠해져도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판에 먹물 작업을 제대로 하는 일이야말로 인출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작업을 몇 차례 반복하면 먹물을 머금은 은행나무가 이전처럼 먹을 칠하지 않아도 인쇄가 가능한 상태에 도달한다. 여러 번 먹을 칠한 나무가 더 이상 먹은 머금지 못하고 뿜는 상태에 이른다. 이렇게 먹을 머금은 판목은 자르르 윤기가 흐른다. 마침내 본격적인 인쇄를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인출은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장을 진행하면서 최상의 상태를 확보한다. 대체로 첫 장은 먹이 제대로 스며들지 않아 흐릿하거나 선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첫 장을 찍고 두 번째나 세 번째 찍으면 상태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첫번째 인쇄한 것과 두번째 인쇄물의 차이가 선명하다 



인출을 하는 경우는 자신이 각자 한 내용이 제대로 되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인출한 종이와 원본 텍스트를 펜으로 체크를 하다 보면 고쳐야 할 부분이 제법 나온다. 멀리서 보면 고치지 않아도 되는 부분보다 고쳐야 할 부분이 훨씬 많은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인출하기 위해서는 각자 한 판에 먹을 바르고 한지를 올린다. 


이때 한지는 손으로 만져보았을 때 거친 면이 위로 올라오도록 배치한다. 찍는 이가 정확하게 위치를 잡은 한지를 골고루 문지르면 초벌 인출이 끝난다. 이때 사용하는 것은 먹비와 말총 또는 긴 모발을 뭉쳐 만든 부드러운 털 뭉치나 밀랍이다. 판각의 경우, 글자의 골이 다르고 섬세한 인쇄가 필요하므로 힘을 골고루 분산할 수 있는 장비를 이용하여 가볍게 문질러 찍어내면 만족할 만한 인쇄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종이를 바로 떼지 않으면 아교 성분 때문에 종이가 판목에 달라붙는 문제가 생긴다.               


                            맨 아랫줄을 보면 같은 판본이라도 결과물이 다른 작품처럼 느껴진다.



인출의 또 다른 성과는 각자 작업을 했던 나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육안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나무라할지라도 인출을 하고 나면 각자 상태가 어떤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각자 과정에서 나무를 새기다 보면 나무 상태를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인출하면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공장에서 일정하게 찍어내는 게 아니다 보니 건조나 제재과정에서 상태가 좋지 않은 나무가 있기 마련이다. 


이 나무에 그대로 작업을 하면 나중에 인출한 후 확인하면 줄이 생기거나 홈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 경우 천방짜리 사포를 이용하여 면을 고르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판각 작업하기에 좋은 나무를 만나면 더할 나위 없지만 매번 그런 행운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대안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작업 전과 후에 비교해서 나타나듯이,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 차이가 현저하게 줄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 유의할 점은 사포질을 오래 할 경우에 자칫하면 새긴 글자들의 두께가 자칫 두꺼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업자들은 이 과정에서 확인하면서 섬세하게 마무리 작업을 해야 한다.         



사포질을 할 때도 일정하게 힘을 주어 진행해야 결과물도 양호하다. 만약에 한쪽으로 쏠린다거나 힘을 잘못 줄 경우 그 부분의 나무에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각자 하기 이전에 나무의 상태를 확인하고 작업하는 일이다.


최악의 경우는 새기는 과정에서 칼이 제대로 먹지 않거나 글자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때는 교정 시 체크하여 글자를 다듬거나 메목을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책자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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