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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Jul 30. 2023

천자문 책을 만들다

인출과 교정에서 길을 읽다          

그리스 신화에는 이카루스 이야기가 나온다. 대충 신화의 내용은 이렇다. 영웅 테세우스는 아테네가 매년 크로노스로 괴물의 먹이로 쓸 인간 공물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이 직접 가서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기로 한다. 이를 위해 그는 크레타섬으로 가서 크로노스의 공주 아리아드네를 꼬시고, 공주는 미궁의 제작자 다이달로스를 찾아가 해법을 알아낸다. 테세우스는 공주의 조언대로 실타래를 가지고 미궁 속으로 들어가 괴물을 죽이고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대해 분노한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둬버린다. 탈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다이달로스는 하늘을 나는 새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얻는다. 마침내 새의 깃털을 모아 이를 밀랍으로 고정시킨 날개를 완성하고 감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고대하던 감옥으로의 탈출, 그것은 자유를 의미했다. 이 시도는 성공적이어서 다이달로스와 아들은 꿈에 그리던 대로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때 다이달로스가 아들 이카로스에게 단 한 가지를 신신당부한다. 바로 적당한 경계를 유지하며 날라는 것이었다. 하늘에 너무 가까이 근접하면 강렬한 햇볕 때문에 밀랍이 녹아버리는 일이 생길 수 있고 바다에 가까이 다가서면 날개가 젖어 추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전 처음 나는 비행의 즐거움에 푹 빠진 아들은 아버지의 경계를 잊고 높이 날다가 결국 추락해서 바다에 빠져 죽는다. 

어찌 보면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작업 시 너무 얇게 글씨를 파면 문제이고, 너무 두껍게 파는 것도 문제가 생긴다. 물론 이 중간을 조절하면서 최적의 상태로 글자를 새길 수 있는 실력만 있다면야 무슨 걱정을 하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과 달리 마음대로 판각하는 일이 어렵다. 어쩌면 적절하게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판각하는 입장에서는 이카루스의 날개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책 발간 위한 세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이다. 하루 종일 버겁게 몰아치는 더운 바람을 피해 완판본문화관에 도착하니 일반인 몇 명이 목판 체험을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제대로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있기 마련이다. 목판에 먹물을 몇 번 칠하고 한지를 올리고 찍자 뚝딱 민화그림 한 장이 나온다. 제대로 찍힌 것을 확인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도 즐겁다. 


지난주와 달리 오늘은 사람들 도착이 더뎠다. 조금 더 기다렸다 시작하기로 했다. 모임 시간이 6시인데, 시간대가 하필 퇴근 시간과 맞물린다. 도로가 한참 막힐 때라서 모임에 참석하는 이로서는 부담이 가는 시간대이다. 연일 35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길을 걷거나 차를 타면 숨이 턱 막혀 온다. 어쩌면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터라 휴가를 떠난 이도 있을 것이다.               



지난 시간에 이어 오늘은 인출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았다. 사실 인출(印出)이라는 단어는 일반인에게 생소하다. 오히려 일반인은 탁본이라는 단어에 익숙하다. 책판(冊板)에 박아냄을 뜻하는 인출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정의 편의성을 위한 것이다. 물론 판각을 한 목판에 처음부터 직접 수정을 할 수도 있으나 고수가 아닌 이상 쉽지가 않은 작업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출을 하여 원본 원본 텍스트와 비교하는 방식을 택하기로 하였다. 

인출을 하면 내가 판각한 작품과 원본과의 차이를 비교하고 검토가 보다 용이하다. 아무래도 먹을 머금은 목판과 원본을 비교하는 일은 고역이다. 기존에 이미 인출을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참석한 이들 위주로 인출 작업을 하기로 했다. 인출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1. 우선 먹물을 붓고 고르게 섞는다. 

2. 돼지털 솔(먹솔)에 먹을 묻혀 판각한 나무에 몇 차례 고르게 바른다. 

3. 이 작업을 반복한 후 준비를 마치면 인쇄를 시작한다. 

4. 한지의 매끄러운 면을 아래로 향한 후 여러 번 문질러준다. 

5. 한지를 떼고 인쇄 상태를 확인한다.           


먹솔로 여러 번 판각한 나무에 문지른다. 이 작업은 인출과정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이 작업을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먹솔로 작업을 하면서 혹시 판각과정에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각자의 흔적, 즉 나무 부스러기를 제거한다. 판각 과정에서 남은 이물질은 인쇄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둘째, 이전에 인쇄하며 남아 있던 한지나 먹의 흔적을 제거하는 것이다. 인쇄를 하며 칠한 먹이나 한지 여분이 판각한 글자 사이에 끼거나 뭉침으로써 글자의 선명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물론 인쇄를 하는 경우 중간중간에 세척을 하여 관리한다. 

셋째, 먹을 머금은 나무는 상당한 방충효과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나무의 뒤틀림 등을 예방하는 차원도 있다. 습기와 벌레는 판각한 나무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치명적인 요인이다. 따라서 판목에 골고루 먹을 먹이는 작업은 원판이 천년을 갈 수 있는 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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