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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들 Feb 09. 2024

세계에서 유일한 제주고사리삼

곶자왈에서 제주고사리삼을 만나다           

2박 3일 동안 제주도 습지를 돌아보는 여정이었지만 어느 순간에 4박 5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이란 처음 계획한 것과는 달라지는 법이다. 이번 겨울, 환경작가 동기들과 여러 곳의 제주 습지를 다녀오기로 했다. 몇 차례 제주를 다녀왔지만 이번처럼 온전히 습지를 다녀오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에게 항상 제주는 오름이나 수목원, 한라산과 바다 등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제주 습지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않았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제주고사리삼이었다. 동기 중에 제주 사는 이가 있어 우연히 제주고사리삼 이야기를 했던 인연이 이번 여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유독 제주 선흘 곶자왈에만 있다는 이 특별한 식물을 보기 위해서 그 먼 길을 달려왔나 싶을 정도로 살짝 흥분이 되었다.



숲길을 한참 걸어갔을 때, 선흘 곶자왈 외진 땅에 바짝 엎드린 제주고사리삼이 있었다. 제주고사리삼은 습하고 낙엽수가 있는 아래에 산다. 앙징맞은 몇 개체가 여기 있다고 손을 들 듯이 거기 있었다. 처음에 기대했던 것처럼 무성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전 세계에서 유일한 식물과 함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몹시도 설레는 일이었다. 만년의 역사를 가진 동백동산 곶자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제주고사리삼과의 만남이 전체 여행에서 가장 깊은 인상으로 남았다.  



사실 식물을 보는 일은 시기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시기를 맞춘다고 하더라도 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니 그럴 만도 하다. 이른 봄에 피는 동강 할미꽃, 강원도 청태산의 모데미풀, 화악산의 금강초롱 등이 그것이다. 안타까운 일은 귀한 식물들이 우리 주변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강원도에 갔을 때 현지인에게 직접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광릉요강꽃 이야기였다. 예전에는 야생에서 열몇 촉이 있었는데 어느 날 누군가가 다 캐가고 볼품없는 한 촉만이 남았다고 했다. 귀하거나 돈이 되는 식물이라면 야생에 남아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자연 생태적으로 개체가 사라지는 일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욕심이나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 주변에서 없어지는 일이 더 많다.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 학산이 있다. 도심지의 산이지만 다양한 생태계를 엿볼 수 있어서 많은 이들이 찾는 산이다. 지인이 어느 날 흥분한 얼굴로 학산에 있던 사철난을 누군가 캐갔다고 말했다. 산에서 생장하는 식물은 그 산을 벗어나면 살지 못하는 게 거의 정설이다. 그냥 자연 상태로 두면 같이 볼 수 있는 식물을 개인 욕심으로 캐버리면 어느 누구도 다시는 볼 수 없다. 


생태 환경운동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우리 주변에 있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 그대로 두는 걸 참지 못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답답해 보이거나 쓸모없어 보이는 땅에도 끊임없이 생명의 움직임이 일어난다. 그 도도한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우리가 계절을 거스를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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