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자와, 가나자와
몇 번 발음하다 보니 느낌이 좋다. 그런 도시가 있다. 한두 번만 해도 입에 착 달라붙는 도시가 있는 반면 몇 번을 들어도 영 헷갈리는 도시도 있다. 가나자와는 몇 번을 발음 하다 보면 리듬감이 붙어서인지 저절로 신이 난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도시, 내게 가나자와는 그런 곳이었다.
드디어 도야마로 간다. 도야마는 일본 주부(中部) 지방 도야마 현(富山縣)의 현청 소재지이다. 내가 도야마를 알게 된 것은 알펜루트 때문이었다. 그 여정이 끝나고 만난 도야마라 그런지 느낌이 새로웠다. 어느덧 날은 저물고, 물어보니 묵기로 한 숙소에서 환수공원은 가깝다. 저녁을 먹고 슬슬 바람을 쐬려 길을 나선다. 채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그 유명하다는 환수공원이 있다니.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절로 난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다리와 스타벅스라니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리의 첫인상은 몽환적이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고급스럽다. 설계자가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 전화에서 착안했다는 붉은 선은 탑과 탑 사이를 연결해주면서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흐린 날씨다.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아마 오늘 밤에 못다 한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작정인가 보다. 커피 한잔을 시켜 야외 테이블로 나간다. 커피 가격도 비교적 착한 편이다. 바로 눈앞에 다리가 한눈에 보인다. 명당자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막 초입에 들어선 여행 생각을 하며, 오늘 하루 고생했던 일정을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앞으로도 남은 일정은 많다.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는 것이 가장 급하다. 오늘 아침만 해도 무로도를 벗어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잘 마무리하지 않았던가. 항상 그렇지만 여행지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특히, 이번처럼 혼자 여행을 떠나면 더 그런 생각이 든다. 떠나올 때의 설렘과 달리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뜻하지 않게 어떤 변수가 생기지는 않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수시로 나를 짓누른다.
도야마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가나자와에서 이틀을 보내는 일정이다. 도야마에서의 일정은 마지막 이틀이 잡혀 있다. 그래서인지 도야마에서는 마음이 조금은 여유롭다. 처음에는 다카야마에서 하루를 잘까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냥 가나자와에서 이틀을 보내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었다.
도야마에서 가나자와까지는 보통열차로는 1시간 정도 걸리지만 신칸센으로는 20분 남짓이면 간다. 더군다나 나는 호쿠리쿠 패스가 있기 때문에 신칸센만이 아니라 JR버스 또한 무료이다. 교통비 비싸기로 소문난 일본에서 교통비 부담을 하지 않고 지낸다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다. 내가 묵기로 한 숙소는 히가시 차야 부근이었다. 가나자와 역에서는 두 가지 코스로 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다. 하나는 시내를 돌아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직통이라 할 정도로 비교적 가까운 거리였다. 아침 일찍 서두른 탓에 가나자와에 도착해서도 시간이 널널했다. 숙소에 짐을 두고 가나자와 성으로 향했다.
가나자와(かなざわ, Kanazawa) 시는 한자로는 金沢市라고 쓴다. 일본하면 동경이나 오사카, 후쿠오카 등만 떠올리는 우리에게 가나자와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가나자와는 제2차 세계대전을 포함하여 450여 년간 전쟁과 지진 피해를 입지 않아 일본의 전통문화와 옛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어제에 이어 흐린 날씨는 계속 이어진다. 흐린 날에는 가나자와라는 말이 입에 붙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만 글쎄 연평균 기온이 14도이고, 해를 볼 수 있는 맑은 날은 19일에 불과하단다. 가나자와는 강수량이 1mm 이상인 날이 연 181일에 달할 정도로 비와 눈이 많이 내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래서 숙소 카운터의 매니저는 날씨를 묻는 내 질문에 “당신이 러키 가이라면 날씨도 좋을 걸요!”라고 했던가. 물론 나는 ‘of course.'라고 답했지만 말이다.
가나자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옛 거리나 주택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히가시 차야도 그런 전통거리 중의 하나이다. 아직도 200년 전에 조성된 140여 채의 찻집이 남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가 어울리는 전통거리의 느낌을 전해준다. 히가시 차야라는 지역은 낮에는 찻집이 즐비하지만 밤이면 칵테일 바나 술집으로 변하는 동네이다. 어느 날 골목을 지나다가 왁자지껄한 소리에 놀라 보니, 그곳은 바(Bar)였다.
경찰서 옆 도로를 끼고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몇십 채의 찻집이 지금도 영업 중이다. 이 도시에 찻집 거리가 이렇게 발달한 이유는 가나자와의 풍부한 재력 때문이다. 금연못이라는 의미의 가나자와는 예로부터 사금이 많이 생산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마키에 금가루 공예나 금박 공예가 발달하였다. 다른 지방과 달라 가나자와에서 아이스크림에까지 금박을 이용하는 문화는 이런 배경에서 나온 셈이다. 결국 넉넉한 경제형편이 일상에서 차를 가까이하는 문화를 만들었고, 지금 히가시 차야 거리가 생긴 유래이다.
숙소에서 가나자와 성까지는 걸어서 10분 남짓. 바로 가나자와 성으로 갈까 하다가 주변 상황을 지켜보니 제법 많은 수의 관광객이 겐로쿠엔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겐로쿠엔은 일본 3대 정원에도 속할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다. 흔히 미토시의 가이라쿠엔, 오카야마의 고라쿠엔와 함께 가나자와의 겐로쿠엔을 일본 3대 정원으로 꼽는다. 요금은 310엔. 처음에는 그곳이 겐로쿠엔일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입구의 첫인상은 평범했기에 일본식 정원이라고만 생각하고 들어갈까 말까를 망설였을 정도였다. 하지만 입구를 벗어나자 내가 생각하던 그런 정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규모만도 11.4ha라고 하니 엄청난 크기이다. 여기에는 약 8,200여 그루의 나무가 숨을 쉬고 있다.
설명서에는 겐로쿠엔이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대정원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나와 있다. 1676년, 제5대 영주이던 마에다 쓰나노리는 정자를 짓고 그 주위에 정원을 조성했다. 이후 1774년에 축조해서 지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조성자가 소나무를 구해서 심고, 자신이 원하는 정원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고심한 흔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전해진다.
‘겐로쿠엔’의 유래는 중국 송나라 시대의 시인 이격비가 쓴 낙양명원기 속의 문장에서 광대, 유수, 인력, 창고, 수천, 조망의 6가지를 겸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기원한다. 지금은 ‘특별 명승’ 지정을 받아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유가오테이(多顔亭) 다실은 정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연못 한편에 자리한 다실은 한눈에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일 뿐만 아니라 연못과 어우러져 그윽한 풍미까지 느껴진다. 여기에서 마시는 차는 그 향부터 다를 것만 같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차를 마시며 앞마당 같이 넓게 펼쳐진 정원을 감상한다. 연못 주변을 채우고 있는 가이 세키토(탑)과 미도리타키(폭포)를 보고 있노라면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정원은 ‘특별 명승’이라는 말에 걸맞게 감탄이 절로 나올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정원을 걷고 있노라니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어떻게 이토록 정교하게 배치하며 만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만의 정원에 그치지 않고 모두의 정원을 만든 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겐로쿠엔은 워낙 아름다운 정원이라 그대로 스쳐 지나가며 보기에는 너무도 아름답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음이 각박해져서일까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만 봐도 눈물이 날 뻔했다. 특히 마음에 드는 구간에서는 바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근처를 몇 번이나 어슬렁거리며 오래오래 가슴에 담으려고 애썼다.
오후 들어서면서 겐로쿠엔에는 관광객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개인 위주가 많았다면 오후부터는 급속하게 단체 관광객이 늘어나는 게 완연했다. 대부분 중국인 단체였지만 한국인 단체도 눈에 띄었다. 단체 관람객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정원의 평온함과 느긋함은 사라지고 대신에 사방이 어수선해졌다. 그래도 어찌하랴. 그들 역시 나처럼 이곳을 보기 위해 찾은 관광객인 것을. 이제는 그들을 위해 내가 자리를 비껴주어야 할 때이다.
겐로쿠엔을 나와 다리를 건너면 가나자와 성 안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가나자와 성은 납을 함유한 하얀 지붕으
로도 유명하다. 일설에는 가나자와 지방이 눈이 많기 때문에 납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고, 유사시 납을 녹여 무기로 사용할 수 있기 위한 대비책이라는 말도 있다. 일본의 다른 지방의 성과 달리 가나자와 성은 전체 길이가 무척이나 긴 성이다. 목조 3층으로 되어 있는 히시야구라는 지붕의 높이가 17.34m이며, 바닥의 총면적은 255m2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이다. 17세기 말경 가나자와 성의 니노마루는 <천 장의 타타미가 깔린 어전>으로 불려질 만큼 장대했다고 전한다.
지금의 가나자와 성은 예부터 전해오는 일본의 목조 축조공법을 사용하여 기둥과 대들보를 짜 맞추는 방식으로 뼈대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걸어서도 한참 걸리는 그 먼 거리를 요즘처럼 장비도 없을 때 균일하게 만들었다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출창(창문)이다. 축벽을 타고 올라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출창은 유사시 병사들이 마루청을 열고 돌을 던지도록 한 장치이다. 언제 발생할지도 모르는 전시에 대한 방비책은 쯔루노마루 토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토담의 산노마루에 접한 아래 부분은 해삼벽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평상시에 가려져 있다가 유사시에 총포를 쏘기 위한 구멍으로 사용한다. 1층 전시실에는 창호와 지붕 처마 끝 등의 단면 모형을 전시해두어 방문객의 이해를 돕고 있다.
가나자와 성에는 휠체어 전용문이 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갔을 때도 그림을 소개하는 점자 안내문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사회가 발전한다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다는 것이며, 이는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은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타인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가능하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가나자와 성 주변에 있던 산줏켄나가야(三十間長屋)를 개방하고 있었다. 군사들의 탄약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였던 것이나 원형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건물이다. 규모만으로도 상당한 부대가 근무했으리라는 짐작이 가능하다. 특히나, 성 안쪽에는 교큐센 인마루데이엔(玉泉院丸庭園) 정원이 있다.
마침 인마루데이엔에서는 3월부터 8월까지 금, 토요일에 라이트 업(Light Up)이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봄에는 벚꽃을, 여름에는 페스티벌이라는 주제로 해질 무렵부터 9시까지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행사였다. 정원 전체에 레이저 빔을 쏘아서 낮과 달리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프로그램이다. 햇발에 노출된 정원과 인공광에 노출된 정원은 느낌부터 다르다. 우리가 정원을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원이야말로 우리의 집안으로 끌어들인 자연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우리가 도달하지 못한 세계를 본다.
가나자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오미초 시장이다. 역에서 히가시 차야로 가는 내내 가장 자주 접한 게 바로 오초메 시장이었다. 여행에서 재래시장을 가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수순이기는 하지만 이곳의 활력은 보는 내내 즐거움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큰 소리로 손님을 호객하는 점원만이 아니라 수산물을 사러 온 손님들이 가세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해졌다.
오미초 시장은 손님이 생선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내장을 손질 해주거나 생굴을 그 자리에서 시식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느 시장과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재래시장에서도 그런 생기 넘치는 모습을 좀처럼 보지 못했기에 그런 소소한 행동조차 내게는 커다란 볼거리였다. 게다가 나처럼 뜨내기 외국인도 적지 않아서 별다른 부담이 없었다. 역시 현지인들의 맨얼굴을 만나는 데는 재래시장만한 게 없다. 덕분에 시장 구석구석을 도는 것만으도 가나자와의 건강한 아침을 만나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오미초 시장은 관광객도 많이 찾지만 현지인들도 사랑하는 시장이다. 한눈에 봐도 현지인임이 분명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찬거리를 사러 온 아주머니,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을 사러 온 할아버지가 가게 주인이나 점원과 이야기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다. 아마도 농담을 주고받거나 흥정을 하는 것이겠지만 대화를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서운할 필요가 없다. 그런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는 건 그들의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진한 공감대이리라.
시장을 몇 바퀴 돌다 보니, 시식코너도 제법 많다. 시장 초입에 위치한 건어물 가게 아가씨는 내게 흥정을 걸어왔다. 원래 1,00엔인데 지금 사면 당신에게는 800엔에 주겠다는 식이다. 오미초 시장을 몇 번 둘러보았지만 그렇게 적극적으로 흥정을 붙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다시마를 튀긴 건어물은 그다지 맛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물건을 사게 되면 처치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이 그런 경우였다.
대신 11시부터 특가로 20명 한정으로 특가로 초밥을 제공한다는 집을 만났다. 세상에나 이런 가격이라니. 비록 손님을 끌기 위한 미끼 상품이겠지만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초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아직 시작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아서 다시 시장 근처를 한 바퀴 더 돌기로 했다. 시장 상인 대부분이 수산물이나 건어물을 다루고 있었지만 특이한 마케팅을 하는 과일가게도 있었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상품은 싱싱하고 맛있어 보였다.
오미초 시장 근처에는 현지인이 추천한 건강한 일본 소바 정식집이 있다. 하마터면 이 집 맛을 못 볼 뻔했다. 8시 30분이 마지막 주문이었는데, 내가 오초메 시장에 도착한 시간이 10분경이었다. 식당 주소를 들고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물어보았건만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리도 누군가가 갑자기 식당 주소나 이름을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식당 마지막 주문 시간은 다가오고, 위치는 모르겠고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이미 늦은 시간대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을 놓치면 편의점에서 저녁을 해결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때 구세주처럼 일본인 부부(혹시 친구인지도 모르겠지만) 나타났다. 여자분이 내가 건네는 주소를 받더니 가던 방향과 정반대였는데도 불구하고 성큼 앞장서 걷기 시작한다. 급한 내 마음을 안다는 듯 발걸음이 빨랐다. 그 바쁜 와중에 두 사람은 식당 이야기를 하면서 의견을 교환했다. 남자분은 마지막 주문시간을 보았는지 가면서 식당에 전화까지 해서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 그들도 집이나 친구를 만나거나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을 텐데 낯선 이방인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기꺼이 나서 주다니. 실로 감동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처음에는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왔다. 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초면에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나 싶기도 했다. 그때였다. 비록 먹지 못한다고 해도 이 두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가나자와는 내게 따뜻한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마침내 큰 도로변에서 약간 꺾어진 곳에 내가 찾던 식당 <코바시 오타후쿠>가 나왔다. 나 혼자서라면 도저히 찾지 못했을 위치였다. 게다가 밤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였더라면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내게 좋은 시간 보내라며 유쾌한 인사를 건네고 사라지는 그들을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식당 주인은 연락을 받았다며, 어서 들어가 보라고 했다. 종업원에게 소바 정식을 시키고 나니 그제야 식당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전통화로가 중앙에 턱하고 자리를 하고 있어서인지 분위기가 제법 근사했다. 이런 집이라면 좋은 사람들과 느긋하게 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어도 좋으련만 하필 마지막 손님으로 와서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른 손님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래서 현지에 사시는 분이 추천한 것이겠지만. 이런 곳이라면 음식이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
추천하셨던 분은 3대가 함께 가서 먹는 식당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만큼 기본적으로 음식에 대해 신뢰가 있다는 의미이리라. 90년 전통의 우동소바 전문점이라는 <코바시 오타후쿠>식당은 전체적인 분위기도 좋았지만 음식도 맛있었다. 게다가 정식이어서인지 소바만이 아니라 튀김까지 함께 나와서 과연 다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쩌면 단품으로 시키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음식을 먹다 보니 정원도 눈에 들어왔다. 눈 내리는 날, 이런 곳에서 음식을 먹고 있으면 한 폭의 멋진 풍경화가 될 것이다. 이 식당에서 굳이 유일한 흠을 잡는다면 카드는 안 되고 현금만 받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게 이 식당의 이미지를 훼손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며 맞이하는 따뜻한 저녁 한 끼는 큰 위로다. 더군다나 친절한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면 더 그렇다. 나는 그날 가나자와에서 그 평범하면서도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역시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