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는 인생은 없다. 여행은 더 그렇다. 어쩌면 그게 여행의 묘미일지도 모르지만, 여행지에서는 뜻밖의 일이 늘 생긴다. 가끔 뜻하게 않게 우연한 사건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내게 후쿠이는 그런 인연이었다. 후쿠이(福井)는 처음 내 여행계획에는 아예 없었다. 나고야 투어 인포메이션에서 접한 리플릿에서 처음 후쿠이라는 이름을 보았다. 언뜻 듣기로는 후쿠이는 일본 사람들도 모르는 이가 많을 정도로 깡촌 중의 깡촌이라는 말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가나자와에서 후쿠이까지는 신칸센으로 대략 1시간쯤 걸린다. 후쿠이역에서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게 공룡 박사이다. 역에서 만날 수 있는 공룡 박사는 이 지역에서 공룡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깡촌인 후쿠이가 유명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이곳에서 대규모 공룡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1986년 한 여중생이 우연히 육식공룡의 이빨 화석을 발견한 이후, 일본 정부는 1989년부터 본격적인 공룡화석 발굴에 착수했다. 일본 최대 규모인 후쿠이 현립 공룡박물관의 개관으로 이 한적한 동네는 그야말로 공룡 애호가들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한 해에 90만 명 이상이 공룡을 보기 위해 온다. 공룡이 끌리기는 했으나 내 마음은 사진상 이미지가 더 강렬했던 도진보(東尋坊)로 이미 향해 있었다.
세계에 3곳밖에 없다는 주상절리의 도진보
아와라 온천에서 도진보까지는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 도진보는 후쿠이현의 북부와 이시카와현에 인접한 일본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이동하는 중에 잠깐 찾아본 자료에 따르면 도진보는 세계에서 3곳밖에 없는 주상절리로도 유명하지만 자살바위로 더 유명했다. 심지어 바다에 빠져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시도한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해안가에 생명의 전화와 같은 비상전화가 있다는 글도 있었으나 현지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는 없었다. 바로 이 도진보를 가는 과정 중에 아와라 온천지대가 있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을 기념해서 만들었다는 55m 전망대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도진보가 보이지는 않았다.
도진보는 거친 파도에 침식된 험준한 단애 절벽으로 에치젠-가가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약 1.5km에 걸쳐 이어지는 이 절벽은 현재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누구라도 그 앞에 서면 위압감을 느끼게 된다. 휘석 안산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곳은 일본에서도 유일할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이곳을 포함하여 단 세 곳밖에 없다하니 더 마음이 끌린다.
도진보의 백미는 높이가 25m에 절벽에 둘러싸인 "도진보 오이케”라고 불리는 해안 뒤쪽이다. 겨울철에는 파도가 얼었다가 순간적으로 바람에 흩어져 날아오르는 ‘파도의 꽃’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볼 수도 있다 한다. 혹여나 다음 세상에라도 그걸 볼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을 가로지르다. 도진보
서둘러 도진보에 도착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벽에 몰려 있다. 그런데 막상 절벽 위에서 아래를 보려하니 무서워서 도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도무지 똑바로 서서는 볼 자신이 없어 엎드린 채로 다가가니 몇십 미터 아래 수직으로 물살이 휘몰아치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즉사할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이 멋진 풍경을 배경 삼아 세상을 등지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치명적인 유혹을 품은 도진보를 보고 있노라니 무심한 파도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도진보에서 온천을 할까도 생각했으나 이미 차가 끊긴 상태였다. 결국 막차를 타고 가나자와로 오니 피곤이 밀려왔다. 돌아오는 길목에서 이런 시가 생각났다.
하루가 들풀처럼 지고 있습니다.
눈물 나는 날이었지요
하루 종일 걷다가 뛰다가
창밖으로 해가 지기에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함께 하는 자리였더라면
아마도 피곤했던 하루 때문에
곤한 잠을 자고 있을 텐데요
그 빈자리를 가방만이 지키고 있습니다
나의 세계와 당신의 세계가
이렇게 나누어져 있습니다
당신도 지금 해가 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까요
숙소로 돌아가는 이 짧은 시간에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당신이어서 다행입니다
내가 쓸쓸하고 한적한 숙소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당신을 떠올릴 수 있어서
지금 이 시간도 내게는 작은 행복입니다
- <당신의 하루를 응원합니다>
풍경이 있는 산사, 에이헤이지로 들어서다
눈앞의 절을 대했을 때 첫 느낌은 비현실적이었다. 온통 초록색이었다. 주변을 보니 삼나무가 가득하다. 비온 끝이라 그런지 나무들은 초록빛을 머금어 더 고혹적인 색을 내뿜고 있다. 우리가 보통 보는 여행 안내서에 나오는 사진은 에이헤이지 정문의 오른편에 위치해 있다. 에이헤이지는 사천왕상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향하는 우리나라와는 규모 자체도 클 뿐만 아니라 절의 구조 또한 상당히 달랐다. 에이헤이지의 가장 큰 특징은 각각의 건물이 복도식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건물이 독립채로 분리되어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에이헤이지는 전체를 탐방하듯이 돌면서 볼 수 있다. 기나긴 회랑을 거쳐 나오는 법당을 지나면 다시 산문이 나오는 식이다. 그래서인지 건물과 주변이 따로 놀지 않고 자연 속에 푹 파묻인 느낌을 받았다.
‘그림 천장의 넓은 방’ 산쇼카쿠에는 당시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144명이 그린 새와 꽃을 소재로 한 230장의 천장화가 빼곡하다. 그래서인지 산쇼카쿠의 천장을 가득 메운 그림은 에이헤이지의 백미로도 꼽힌다. 산쇼카쿠를 지나 회랑을 지나면서도 도무지 가늠이 안 되었다. 이동 중이건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쯤인가가 알 수가 없다. 산사를 이어주는 긴 회랑을 오르내리면서 느낀 사실이지만 건물에서 밖을 보면 바깥 숲이나 정원이 외부세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정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에이헤이지(永平寺)의 창시자인 도겐 젠지는 중국 송나라로 유학을 떠났다가 1227년에 일본에 돌아와서 가르침을 시작했다. 처음 그는 3년 동안 켄닌지 절에 머물다가, 교토 코쇼호린지에 첫 번째 절을 세웠다. 이후 도겐 선사는 1244년에 지금의 후쿠이 지역에 와서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그 시절 그가 지키고자 했던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에이헤이지는 전국에 말사 1만 5천 개를 거느린 조동종의 대본산이다. 현재는 칠당가람으로 불리는 일곱 개의 당(堂)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70여 채의 불전과 승당, 누각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의 에이헤이지는 창건 당시의 모습은 아니고, 16세기 말엽 불교의 다른 종파인 일향종 신자들의 습격을 받아 전소 이후 18세기에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것이다.
도겐 선사는 오로지 좌선을 통해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선종을 설파했고, 결국 그 가르침을 바탕으로 에이헤이지는 조동종의 개조가 되었다. 에이헤이지 입구에는 배를 탄 관음보살상에 있다. 일설에는 도겐 선사가 배를 타고 가다가 심한 풍랑을 만났는데, 그때 관음보살을 만났다고 전한다. ‘영원한 평화의 사찰’로 불리는 이 절은 지금도 200여 명의 수행승과 행각승이 수행 중인 일본 최대의 참선 수행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방문객은 법당에서 좌선도 할 수 있고 이곳에서 숙박을 하며 수도자의 금욕적인 생활도 체험해볼 수 있다. 에이헤이지에서는 ‘원나이트 스테이’ 프로그램은 운영한다. 좌선을 통한 명상, 전통 사찰식, 아침 수행 등 스님의 삶을 잠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후쿠이를 떠나오면서 마음이 내내 무거웠다. 삶과 죽음을 갈라놓았던 도진보, 그윽한 눈빛으로 다가왔던 에이헤이지, 그리고 한적했던 료오칸 정원도 눈부셨지만 그건 내 삶이 아니었다. 내 삶이 위급하다고 신호를 보낼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후쿠이에서 내가 보았던 건 풍경만이 아니었다. 가끔 내가 다녀온 후쿠이야말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어쩌면 내가 가고 싶었던 세계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