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우연한 기회에 타지마할에 다녀왔다.
타지마할을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며칠 전부터 설렜다. 전날, 일행과 함께 타지마할이 보이는 야무르 강가를 방문하였다. 바짝 마른 강물은 플라스틱을 비롯한 온갖 쓰레기로 뒤덮여 참혹한 지경이었다. 냄새도 고약했지만 고인 물에 서식하는 모기 역시 기승을 부렸다. 내가 고대했던 낭만적인 타지마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둠이 쓰레기 더미를 가렸고, 어스름에 비친 타지마할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다음날 일행과 함께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타지마할과 같은 명승지는 순식간에 사람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개장 전에 서둘렀건만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제법 많다. 맨 앞줄에 선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우리보다 1시간 전에 왔다 한다. 타지마할을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인지 다들 표정이 유쾌하다.
동이 트기 한참 전이었다. 나는 타지마할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 때문에 아그라로 오는 내내 몹시 흥분한 생태였다. 마침내 출구가 열리자 미리 알아둔 방향으로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나만 뛰는 게 아니라 다들 같이 뛰었다. 보안 검색대를 지나 타지마할 방향으로 뛰어갔으나 이미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아무도 없는 타지마할을 찍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서 타지마할의 아우라가 약해지거나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러면서 자신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를 알려주기도 했다. 알고 보니 그렇게 포인트를 알려주고 팁을 받는 현지인들이었다. 타지마할에는 그런 현지인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일행과 떨어지면 어떤 낭패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 마음을 접었다.
사진을 찍는 내내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왔다. 타지마할의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기야 인도 사람들도 죽기 전에 타지마할을 한 번이라도 보고 싶다는 소원을 많이 가진다고 한다.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는 그만큼 인도인들에게 소원의 성지였다.
알려진 것처럼 타지마할은 샤자한이 아내를 위해 지은 묘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를 위한 절절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은 나라의 국력을 쇠하게 할 정도였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은 총애하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이 죽은 후, 그녀를 기리기 위하여 1632년에 무덤 건축을 명한다. 타지마할을 짓기 위해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동원되었다. 뭄타즈 마할이 죽은 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에 무려 22년이나 걸리는 대역사였다.
타지마할 건설의 후유증은 컸다. 이를 짓기 위해 막대한 세금과 과도한 수탈을 하다 보니 전국에서 민심이 악화하였다. 또한 샤 자한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차 정무에 무관심해졌고, 결국 샤 자한의 아들인 아우랑제브가 반란을 일으켜 왕을 폐위시킨 후 아그라 성에 감금해 버린다. 그는 죽을 때까지 아그라 성에서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그녀를 그리워했다고 한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전혀 쇠퇴하지 않았다. 물론 대기오염 등에 의해서 색깔이 변하기고 오염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예전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필요했을 것이다. 워낙 큰 건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몸이 상하거나 죽는 이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오늘날 후손들은 이 건물의 혜택을 보고 있다. 관광객으로 방문했던 우리 역시 그 수혜를 입었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클 때도 있는 법이다. 그게 사랑의 힘이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