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사랑한 아를

by 산들

엑상프로방스에서 길을 묻다

세상에 홀로 남겨져 있던 영혼은 평안을 기대하며 남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의 지치고 상처 받은 마음이 위로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도 거기에 갈 이유는 충분하다.

고호의 눈부신 그림 저편에 넘실거리는 남프랑스의 하늘은 오늘도 찬란히 빛난다.

우리가 아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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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고장 엑상프로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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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니스, 마르세유처럼 이미지가 딱 떨어지는 도시와 달리 엑상프로방스는 몽환적이고 두리뭉실하다. 여행에서 여러 번 지도를 봐도 쉽게 개념이 잡히지 않던 곳이 바로 여기였다. 그만큼 넓기도 하고 볼거리도 많은 게 이 지역이다.


상프로방스(프랑스어: Aix-en-Provence)는 프랑스 남부 부슈뒤론 주도시이다. 마르세유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인구는 약 13만 명이다. 아를을 제외하고는 처음 들어본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엑상프로방스는 막상 도착하기 전까지는 지도를 봐도 글을 읽어도 머릿속에 잡히지 않고 자꾸만 헷갈렸다. 최종적인 결론은 고호가 그토록 사랑하며 머물렀다는 아를만 생각하고, 다른 건 그때 가서 해결하기로 했다. 어차피 머리에 안 들어오는 것은 현지에서 해결하는 게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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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곳의 자연 풍경은 프랑스 북부와는 느낌이 상당히 다르다. 중부의 드넓은 평야지대를 지나고 나면 조금씩 산이 등장하고 주변 풍경도 달라진다. 엑상프로방스의 너른 들과 풍요로운 자연 환경은 이곳 사람들에게 넉넉한 삶의 여유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였다. 덕분에 세잔을 비롯해서 많은 화가들이 여기를 찾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예술혼을 한껏 불태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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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에는 다니기 힘들 정도로 프로방스의 햇살은 강렬하다. 지중해와 가까워서인지 강렬한 햇살과 바람이 여기까지 불어오는 느낌이다. 오늘도 프로방스의 햇살은 눈부시고, 쨍쨍한 햇발이 쏟아지면 우울했던 영혼조차 밝아진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햇빛과 눈부신 하늘은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 번씩 들판에 바람이라도 불면 사방으로 물결치는 밀밭을 보며 화가들은 무한한 감동과 자연과의 영적 교감을 누릴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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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프랑스 아를은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예술 도시이다. 아를을 대표하는 화가는 세잔이다. 세잔은 이곳 땅을 사들여 작업실을 만든 후, 여기에서 평생을 살았다. 그의 아들이 작업실을 매입한 후, 지금은 시에서 이를 관리한다. 그래서인지 이곳 사람들도 세잔을 사랑한다. 세잔이 산책하던 도로의 바닥에 세잔의 이름을 새겨놓을 정도이다. 특히 이곳을 찾는 이라면 세잔이 작업하던 흔적을 당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작업실에서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세잔의 고뇌와 예술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세잔 역시 이곳에 대한 애정이 강했고, 주변 산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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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를, 쓸쓸한 영혼의 고호를 위하여

이곳을 찾은 화가 중 고호를 빼놓을 수 없다. 생전에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비운의 화가였던 고호도 아를의 수혜를 받았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화가를 꿈꾸던 고호를 파리는 반겨주지 않았다. 삶에 지치고 영혼이 피폐해진 그는 남프랑스 프로방스로 자신의 발걸음을 옮겼다. 파리에서 상처 받았던 그의 영혼은 느긋하고 한적한 아를에서 잠시나마 위안을 받았다. 고호에는 자신에게 드리운 그늘을 지우기 위해 이곳을 찾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동안 아를의 정신병원에서 지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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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호가 머물렀던 병원은 고호를 기리는 사람들이 찾는 순례지로 변했다. 골목을 따라가면 그가 있던 병원이 나온다. 정원의 화려함만 본다면 과연 병원이 맞을까 싶을 정도이다. 여름을 맞아 정원에는 화려하고 눈부신 꽃이 여전히 피어있지만 고호는 가고 없고, 복제된 그의 그림만이 우리를 맞는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고호를 떠올리며 그의 그림 배경이 되었던 병원의 정원에서 해맑은 얼굴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고호의 파도치던 슬픔을 조금은 이해했을까?



가을볕처럼 따뜻해지면 좋겠다

운치가 있어 더 걷고 싶은 길처럼

기분 좋은 날이나

혼자서 울컥한 날에

가끔 생각이 나면 좋겠다

저녁을 먹고

해지는 모습을 보다가

차 한 잔을 나누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에게

산책길에 만나는 이름 모를 들꽃처럼

반갑게 읽혔으면 좋겠다

이른 새벽 아침이거나

바쁜 대낮이거나

저녁 노을처럼 사람들 마음에

잔잔하지만 따뜻하게

웃음처럼 마구 퍼졌으면 정말 좋겠다

내 그림이

- <고호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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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호의 생애에서 아를 시절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이 시절 고호의 그림은 한결 더 편안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가 여기에서 느꼈을 마음의 평안과 여유가 그림에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고호는 아를 시절에 <별이 빛나는 밤에>, <노란 카페가 있는 풍경> 등 가장 빛나는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그 별은 오늘도 빛나건만 그 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고 이를 그림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이는 흔하지 않다. 고호의 맑은 영혼은 아를과 만남으로써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지금도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호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가장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 배경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아를을 찾는 이들이 있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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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를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명소가 또 한 곳 있다. 바로 고호의 유명한 ‘노란 카페가 있는 풍경’의 배경이다. 고호가 그림을 그렸던 당시처럼 카페에는 여전히 노란 채양이 눈부시다. 사람들은 고호의 그림을 보고 카페를 보며 여전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신기해한다. 하지만 여행자들은 정작 그림의 배경인 카페에서 차를 마시지는 않고 그 앞에서 사진만 찍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오늘도 카페를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줄을 잇는다.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난 천재는 오늘날 사람들에게도 경이로운 존재이자 그리움의 대상이다.



정신 혼란을 겪던 힘든 시기에 고호가 이렇게 빛나는 작품을 남길 수 있게 만든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여기 생활을 접고, 파리 근교 오베르 쉬즈 우와즈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와주에 머물렀던 시절, 그가 그림 작품들은 마지막 생을 불태웠던 화가의 열정과 광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고 슬픈 목소리를 낸다. 그가 말년을 머물던 우와즈의 한적함도 좋지만 아를의 너른 평원과는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 후유증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은 평생 그의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와 함께 오베르 공동묘지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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