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쯤 일어나서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덧 일출 투어시간이 되었다. 어제 레드사막까지는 다녀왔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는데, 레드를 지나고 나서도 한참을 간다. 아마 30분 이상 달렸을 것이다. 다행히 완전 무개차는 아니라서 바람을 어느 정도 막아주었다는 사실이다. 새벽 지프차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도로를 질주했다. 앞차가 조금이라도 늦은 기미가 보이면 다음 차가 경적을 울리며 앞서 지른다. 그 이른 시간에 도로를 달리는 차는 일출 투어를 나선 차들 뿐이다.
새벽부터 화이트 샌드로 향하는 지프차의 행렬이 이어진다. 새벽 4시 반. 베트남에서 아침을 가장 일찍 시작하는 이들이 목적지로 삼는 곳은 화이트 샌드. 레드 샌드를 지나다 보면 화이트 샌드로 향하는 이정표가 나온다. 오른쪽에 해변을 끼고 지프차로 달려가면 간혹 베트남인을 발견할 수 있다. 새벽 4시 반. 그 이른 시간에 그들은 왜 도로를 지나가고 있는가.
이 시간에 움직이는 차량은 모두 다 일출을 보러 간다고 생각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지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출에 대한 부푼 꿈을 안은 사람들을 태우고 도로 위를 달려간다. 우리 앞에도 이미 몇 대가 가고 있다. 어제 다녀왔던 레드 샌드를 지나 한참을 달려왔다. 기사는 마음이 급한지 차를 앞질러 간다. 보통은 무개차일텐데 다행히 천막을 씌워서 그나마 바람의 영향을 덜 받는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머리칼은 이미 봉두난발이 되었을 것이다.
아침 날씨는 무이네치고는 제법 쌀쌀하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 이유는 지프차가 달리기 때문일 것이다. 도로 사정도 나쁘지 않다. 라오스에 비하면. 화이트 샌드가 이렇게 멀다니. 오토바이로는 아예 올 생각조차 않는 게 나을 뻔했다. 오토바이로 일출을 보러 가기에는 너무 멀다. 방법은 지프차를 제외한다면 택시나 오토바이뿐. 하지만 이 새벽에 택시가 있을 리 없다.
한참을 달렸건만 좀처럼 화이트 샌드는 나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을까. 보통이라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는 일이 어림도 없을 시간이다. 그러나 늦잠을 자던 우리 아이들도 오늘만큼은 새벽 4시 반에 맞추어 깨어 있다. 우리 가족은 일출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벽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제시간에 맞춰 길을 나섰다. 다시 생각해도 대견하기 짝이 없다. 마음이 급한 차들은 중앙선을 가로 질로 휙휙 지나간다. 그래봤자 1~2분 차이일 텐데 새벽에 워낙 차가 없다 보니 이런 일도 가능한가 보다.
오른쪽으로는 끝없이 해변이 이어진다. 이렇게 큰 해변을 가졌으니 무이네의 해산물이 풍부한 것은 당연하다. 그 선도 또한 당연히 신선하다. 냉동 탑차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없을 가능성이 크다. 베트남을 다니면서 냉동 탑차와 비슷한 차를 본 기억이 없다. 매일 아침이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무이네를 찾는 여행객을 위해 제공된다.
지금 바다에서 멀리서 반짝이는 것은 다 어선들이다. 눈대중으로 어림 잡아도 몇십 척은 넘어 보이는 배들이 바다 위에 떠 있다. 어부는 오늘도 만선을 기대하면서 배를 띄웠을 것이다. 주변에 밝은 빛이 없어서인지 하늘의 별도 반짝인다. 레드샌드에서 비교적 가까운 우리 숙소에서도 이 정도 거리라면 보케거리나 시내 중심부에서라면 한참을 더 달렸어야 하리라.
다행히 하늘은 맑을 모양이다. 경험 많은 이라면 오늘 날씨가 맑을지 흐릴지를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다르다. 아까 만났던 우기때 온 친구들은 일출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던데 오늘은 사정이 다르기를 바랄 수밖에. 매캐한 냄새가 나더니 자세히 보니 길변에 모닥불을 피워놓았다. 이 시간에 누가 모닥불을 피워 놓았을까? 새벽에는 예상치 못한 일이 많이 생긴다.
지프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가고 있을까? 진짜 이렇게 먼 거리를 4명이 50만 동(한국돈으로 25,000원 가량)만 내면 왕복 교통비뿐만 아니라 주변 여행지까지 다 해결된다. 만약 택시를 타고 온다면 택시비만도 상당히 나올 것이다. 버스가 지나간다. 지프차는 많이 보았어도 버스는 처음이다. 아마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있으리라. 지프 투어에 앞서 사전에 마스크와 긴팔을 챙기라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으나 긴팔을 입었음에도 제법 쌀쌀하다.
일출을 보러 가는 차들은 앞서거니 뒷서거니 거리를 유지하면서 간다. 지프차의 행렬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들이 왜 무이네의 사막투어에 열광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도 같다. 언뜻 보니 갈래길의 표지판은 2킬로와 27킬로로 나눠진다. 부디 남은 거리가 2킬로이기를 기대해본다. 이러한 느낌은 터키에서 열기구를 타러 갔을 때와 느낌이 비슷하다. 그때도 새벽이었다.
지프투어가 대략 4시간에서 5시간 정도 걸리는 이유는 전체 이동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기사는 삐약소리가 나는 경음기를 울리더니 다시 앞차를 따라 잡는다. 지프라는 말 자체가 마치 오프로드를 달리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채롭기는 하다. 카파도키아에서 누렸던 지프 여행도 비슷했다. 확실히 지프차는 승용차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것은 야생의 날것 느낌 그대로이다.
이 새벽에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간다. 우리 앞에 있는 오토바이는 일출을 보러가는 것일끼? 아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추운 시간에 여기서 배회할 필요도 이유가 없다. 어디어서 늘 보는 태양이지만 새벽에 해를 보는 느낌은 좀 다르다. 일출을 보러가는 날은 하루가 유난히 길다. 다른 이들이 일상과 타협하며 잠자리를 청할 때 그들은 잠을 희생하고 여기를 택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기를.
이미 출발한 지 거의 30분이 다 되어간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 30분에 출발했고 30분 정도에 출발해서 지금은 57분이니 그리 오래 걸린 편은 아니다. 이미 주차장에는 미리 도착한 지프차들이 모여 있다. 화이트 샌드에 도착하니 가이드가 간단한 설명을 한다. 특별한 내용은 없고 ATV이용과 관련한 내용이다.
순간의 선택이 여행을 가른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결정을 해야 한다. 걸어서 올라갈 것인가 아니면 ATV를 이용할 것인가? 만약 이용한다면 정상까지만 갈 것인가, 혹은 호수까지 다녀올 것인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1인당 정상까지는 20만 동, 호수까지는 30만 동이다. 보통 5시간짜리 투어 가격이 50만 동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이다. 만약 ATV 이용가격만 생각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우리는 아내와 나는 걷고 아이들은 ATV를 이용하기로 했다. 언제 또 사막을 걷겠냐는 생각과 그다지 힘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강했다. 사실 모래에 발이 빠진다는 점과 목적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 말고는 사막이라고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걷고 있노라니 다른 사람들이 하나 둘 합류한다. 어두운 밤을 뚫고 우리 곁을 ATV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이제 막 도착한 사람들을 태우고 사막을 달리는 ATV의 행렬이 그럴싸하다.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ATV로는 불과 3분 남짓한 거리지만 사막을 오르는 길은 팍팍하다. 다행히 다른 이들과 함께 걷다 보니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우리가 모래언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에 앉아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는 바다에서처럼 뜨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이벤트는 허망하다. 해가 뜨기 시작하자 약속이나 한 듯이 사람들이 빠르게 흩어졌다. 하기는 해 뜨는 것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일부는 ATV를 타고 호수쪽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일부는 지프차를 내렸던 곳으로 움직였다. 거의 경사가 70도 이상인 사막을 ATV가 아래로 질주한다. 당연히 지프차에 탔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즐겁다.
기사는 화이트 샌드듄 지역을 통과해서 오던 도중에 사진을 찍으라며 용과 농장 근처에 멈추어 선다. 개인 사진을 찍으라고 하더니 지프차 위로 올라가라며 가족사진을 찍어준다. 중간중간에 다양한 포즈를 주문한다. 평소 같으면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으라면 질색이었을 아이들이 흔쾌히 포즈에 응해준다. 잠시 협곡을 지나 도착하는 곳은 옐로 샌드듄이다. 어제 일몰과 같은 감흥은 없다. 사람들도 화이트 샌드듄에 비해 규모가 한참이나 딸리는 이곳에서 오래 머물지 않는다. 게다가 모래 썰매를 빌려주는 사람들에 대한 악평이 많아서 가급적 이곳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대개 소문의 내용은 썰매 타는 것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핸드폰을 훔치거나 고생시킨다는 등이었다.
아이들도 옐로 샌드듄에서는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옐로 샌드듄의 깊고 여유 있었던 느긋함을 낮에는 도저히 깨달을 수 없다. 나야 전날에 일몰을 보러 왔기 때문에 어제와 비교가 가능하다. 확실히 낮의 사막은 어제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일출과 일몰을 경험해본 나로서는 해가 지는 시간대의 사막이 더 매력적이었다. 석양의 은근함을 머금어서인지 사막은 더 빛을 발한다. 햇볕을 받은 모래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느낌은 해변을 거닐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사막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이다. 몇 번을 보았건만 사막과 모래바람, 그리고 하얀 두건을 쓰고 사막을 말 타고 달리던 전사의 모습만이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내가 사막에 간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막에서 어슬렁거리거나 사막에서 생명을 붙여가고 있는 식물을 만나는 일뿐이었다. 시간이 나면 사진을 찍기도 하였으나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사막은 아무나에게 정을 주지 않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