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생각을 잡아 두는 법

by 산들


당신에게 글쓰기란?

찬바람이 불면 어묵 국물이나 동태탕처럼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비 오는 날이면 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영화를 보면서 노릿노릿하게 구운 김치전이 먹고 싶어진다.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마시는 차 한 잔이 그리운 날도 있다. 힘든 산행을 마친 후 산에서 먹는 라면은 또 어떤가. 산행으로 지치고 힘든 몸에 얼큰한 라면 국물이 흘러 들어가면 몸은 환호성을 지른다. 이처럼 날씨와 음식은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린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 봐도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졌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 사람은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오히려 우리는 글과 거리두기를 할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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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글쓰기는 특정 목적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일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일기를 썼던 것도, 독후감과 같은 학교 숙제를 그토록 열심히 했던 것도, 대학에서 각종 자료를 찾으며 보고서에 열을 올렸던 것도 다 목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기한 내에 하지 않았을 경우 성적의 불이익이 주어지거나 체벌이 가해졌다. 글쓰기가 즐겁기보다는 불쾌한 기억을 떠올리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목적이 없거나 강제성이 없었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글쓰기가 너무 많다. 이런 상황이니 기분이 좋을 때나 우울할 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글쓰기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그렇다고 글쓰는 게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 마감일을 코 앞에 두고 쓰는 글은 부담스럽고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간다. 운동을 할 때 힘을 빼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잘 쓰려고 생각하면 할수록 글은 막히고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한 번에 막히지 않고 술술 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전문작가라도 늘 이렇게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음악에 모차르트가 있듯이, 글쓰기에도 타고난 천재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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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작가 중에 단편소설로 유명한 김동인이 있다. <감자>, <배따라기>,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등 수많은 작품을 쓴 작가이다. 그가 언젠가 술회하기를 자신은 중편 <왕부의 낙조>를 하룻밤에 써내려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쓰기 시작했는데 다음날 아침 무렵에 다 끝냈다는 것이다. 지금과 달리 원고지를 쓰던 시절이라 작가들은 원고지에 번호를 매겨서 쓰곤 했다. 김동인에 의하면 자신은 번호를 건너뛰는, 즉 파지를 만들지 않고 글을 쓴다고 했으니 실로 놀라운 필력이요 문장력이 아닐 수 없다.


예전부터 일필휘지(一筆揮之)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거침없이 글을 쓰기는 쉽지 않다. 『삼국지』에도 조조의 아들 조식이야기가 전한다. 조조는 왕위를 조식이 아닌 첫째 아들 조비에게 넘겨주었다. 왕위에 오른 조비는 동생 조식을 죽이고자 했으나 조식의 문장력이 아까워 갈등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식에게 일곱걸음이 끝나기 전에 시를 지으면 목숨을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조식은 조금도 머뭇거림 없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고, 자신의 처지를 빗대어 시를 지었다. 바로 지금까지도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煮豆燃豆萁(자두연두기)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한국에도 김삿갓의 작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천재성을 알려주는 다섯 살 때의 일화를 비롯해서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가 많다. 옛이야기에 문인들의 즉흥시 대결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운을 맞추어야 하고 무엇보다 무릎을 탁칠 만큼의 기발함이 필요하다. 적벽부로 유명한 소동파에게 어느 날 친구가 물었더니 하룻밤 사이에 썼다는 답이 왔다. 소동파가 잠시 자리를 비운 후 책상 밑을 보았더니 파지가 가득이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반면에 고심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심지어 작품을 발표하고 난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수정을 하는 작가도 있다. 대부분의 작가는 발표 이후 작품에 거의 손대지 않는다. 한국의 분단상황을 다룬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은 작품을 발표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정을 반복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작품을 발표하고 난 후에도 자신이 미흡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끊임없이 고침으로써 완성도를 높여나갔던 것이다. 이로써 <광장>은 주제의 독특함과 작가의 치열성을 기반으로 한국문학사에서 불멸의 작품으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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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진정성 측면에서는 <혼불>의 작가 최명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삶은 <혼불>을 두고 말할 수 없다. 17년간을 써내려간 작품 <혼불>은 우리말의 보고라는 평을 받는다. 남원 사매마을을 배경으로 한 <혼불>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감성세계를 충실하게 재현해냈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다.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 친구 이금림에게 보낸 편지 중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다니, 그 진정성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이 문장 하나만 봐도 작가가 어떤 마음자세로 글을 썼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장편 대하소설 <혼불>에 매달렸다. 그가 남긴 “行年 五十而知 四十九非(나이 오십에 이르러서야 마흔 아홉까지가 그릇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라는 말은 한 인간이자 작가로서의 마음가짐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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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류인생도 쓸거리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살면서 가끔씩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신만의 휴식 공간이니 그리 클 필요도 없다. 누군가에는 그게 영화관일 수도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찻집이거나 미술관일 수도 있다. 다른 이의 간섭이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느긋하고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거나 상관없다. 거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면 그곳이 당신의 공간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글 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나의 공간이다. 그런 점에서 나의 공간은 어디에 얽매이지 않으며 열려 있다. 때로 그곳은 산이기도 하고 바다이기도 했으며, 외딴 오지이기도 했다. 하지만 글을 쓸 수만 있으면 어디라도 좋다. 적어도 내게 공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른다. 어떤 때는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기발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다 하다니 스스로 대견하기도 하다. 하지만 매번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니다. 가끔이면 족하다. 뭐 거창한 생각이 아니어도 좋다. 어떤 사람은 아무 생각을 안 한다고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너무 힘들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기쁠 때도 눈물이 난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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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아, 기다려다오!

우리의 생각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흘러간다. 불현듯 예고 없이 불쑥 방문했다가 우리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춘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발한 상상이 잠깐 내 곁으로 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문제는 기발하다고 싶었던 순간이 지나면 그 기발함은 다시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싶다고 해서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고민을 해도 그 느낌을 재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럴 때 드는 생각, 메모를 해야 해!


아이들은 표정이 살아 있다고 말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꾸밀 필요가 없다. 또 다른 특징은 감정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조금만 신기해도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이들 눈에는 신기한 것 투성이다. 조금이라도 재미있으면 까르르 까르르 연신 웃음보가 터진다. 아이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에도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어른은 같은 상황이라도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이런 일로 웃다니 실없기는 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신 시큰둥할 뿐이다. 사는 게 팍팍하고 매일 피곤함의 연속이니 새삼스레 즐거울 일이 없다. 일에 치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 쓸게 넘쳐나는 사람과 어제와 똑같은 지루한 하루를 사는 사람과 누가 더 쓸게 많을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심장이 무디어져버린 느낌이다. 감동을 받는 일도 별로 없고 심장을 뛰게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침에 눈을 뜰 때 하루가 기다려지는 사람과 한숨 쉬면서 일어나는 사람의 하루가 같을 수 있을까? 당신이 오늘 만난 하루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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