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 주연의 <머니볼>이라는 영화가 있다. 메이저리그의 만년 최하위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을 맡게 된 빌리 빈은 통계를 앞세운 야구로 승부를 건다. 처음에는 호흡을 맞춰야 하는 팀 구성원들에게조차 신뢰를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전략이 제대로 맞아 들어가자 상황은 순식간에 바뀐다. 팀은 메이저리그 최다 연승 기록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한다. 비록 팀의 최종 결승 진출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그들은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역사를 쓴다.
만약 그가 이전의 단장들처럼 했다거나 아니면 다른 팀을 모방하거나 했더라면 그와 같은 꿈의 성적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 이를 바탕으로 뚝심 있게 추진할 결과 기적 같은 일을 만들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비록 살아생전에 작품이 단 한 점밖에 팔리지 않았던 빈센트 반 고흐는 다른 이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화풍을 그림 속에 새겨두었다. 자신의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든 고흐의 작품은 지금도 보는 이를 전율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힘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전력투구야말로 누구라도 모방이 불가능한 절대성의 위력을 발휘한다.
나다운 글을 쓰는 일도 비슷하다. 글을 쓰는 이라면 한 번쯤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문장을 꿈꾸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글이 쉽게 올 리가 없다. 그런 이를 우리는 대가라 부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재 작가가 있기는 하다. 문제는 그게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의욕적으로 도전해보기는 하지만 처음 생각처럼 글이 써지지는 않는다. 책상 앞에 앉아도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무언가 멋진 표현, 읽고 난 후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욕심내면 낼수록 그런 글로 가는 길은 더 암담하기만 하다. 점점 자신감은 떨어지고 글 쓰는 일이 더 두려워진다.
글을 쓰는 이 가운데는 표현이 화려한 이도 있고, 군더더기 없이 경쾌한 이도 있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마치 나도 덩달아 숨이 가빠오고, 마치 흥겨운 왈츠를 추는 느낌이 든다. 춤을 배울 때도 그렇지만 글을 쓸 때도 실력이 뛰어나거나 눈치 빠른 이들은 군더더기 없는 글을 쓱쓱 써놓는다. 어찌 그리도 간결하고 멋진 문장을 쏟아놓을 수 있는지 경이롭기만 하다.
글에서도 선택과 집중을 적절히 구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의 문체는 그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다. 물론 <우동 한 그릇>을 쓴 구리 료헤이처럼 이질적인 예외가 있기는 하다. 글에서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스타일, 자기만의 문체를 만드는 데는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린다. 먼저 자기의 호흡이 산문에 적합한지 운문에 적합한지를 아는 것도 필요하다. 우리는 평생 글을 쓰면서도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를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피드백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평생 동안 그런 피드백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일기며 독서 감상문을 제출하면 그걸로 끝이다. 피드백이라고 해도 몇 줄 감상평과 격려가 전부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자신의 글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점검을 받아본 경험이 없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숙제와 리포터를 써댔지만 그 글들은 평가할 때만 잠시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과 같은 구양수의 3다 원칙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내가 지금 글을 잘 쓰고 있는지,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추측해볼 뿐이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주변을 돌아봐도 물어볼 이가 없다.
창작하는 이가 대부분 느끼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반응을 확인하는 과정은 괴롭다. 누군가에게 글을 읽어달라고 말을 꺼낸 이후 상대방의 반응이 나올 때까지 그 길고 긴 시간을 견디기 힘들다. 우리 문단에서 주례사 비평이라 불리는 글이 많은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준다고 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공격이나 나쁜 말고 동일시해버린다. 그러니 일단 상대방에 대해 비판부터 하고 본다. 이런 상황이니 상대방이 마음먹고 해준 말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다. 원수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천재라 할지라도 좋아하는 이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말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기침과 사랑을 감출 수 없다고 했던가. 무엇이거나 정말로 좋아하기 시작하면 감추기 어렵다. 글과 사랑에 빠진다면 길을 걷다가도, 잠을 청하다가도 기발하고 멋진 생각이 떠오르면 쓸 수밖에 없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이, 그리고 마음이 먼저 반응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라면 약간의 희생, 금전적인 지출, 시간의 투자쯤이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아직은 당신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진짜 글과 사랑에 빠지면 달라진다. 한 번 글이 시작하면 그 문장은 다음 문장을 끌고 들어온다. 문장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셈이다. 당신은 거기 잠시 몸을 맡기면 된다. 이제 당신 인생에서 그런 문장을 만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