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떠날 준비를 한다.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은 사실은 떠나기 위해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다. 가끔 지금 내가 일을 하는 게 어쩌면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지를 생각하기만 해도 설레고 가슴이 뛰는 걸 어쩌랴. 나는 그 삶을 거부하는 대신에 사랑하기로 했다.
내가 살면서 한국을 가장 오래 떠나 있었던 때는 1991년이었다. 나는 군대시절 제대를 앞두고 여행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내 생에 첫 해외여행이었다. 처음에는 동남아 여행을 떠나고 싶었으나 이내 마음을 바꿔 유럽으로 방향을 잡았다. 비록 가보지는 못했지만 가고 싶은 나라는 많았다. 이왕 가는 김에 힘닿는 데까지 가고 싶었다. 당연히 기간도 길어져서 이곳저곳을 여행지에 포함시키다 보니 한달 반이나 되었다.
당시만 해도 해외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한 모험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주변에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사람은 아예 없었다. 그것도 한달 반이나 다녀온다니 주변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당시에는 배낭여행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다. 누구에게 물어보거나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막상 떠나기로 생각하니 이것저것 준비할 게 하나둘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것도 아니라서 항공권을 구입하는 것부터 발품을 팔아야만 했다.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몇몇 여행사를 돌면서 가장 싼 항공권을 구입했다. 당시 구입했던 항공권 가격은 60만 원대였다. 30년 전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가격이었다. 재미있는 건 지금도 싼 유럽 항공권이 60만 원대라는 것이다. 30년 동안 항공권 가격이 안 오른 게 아니라 그때가 그만큼 비쌌던 거다.
일단 여행 코스를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우선 제일 익숙한 도시인 런던 in 파리 out으로 코스를 잡았다. 말로만 듣던 런던으로 간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설렜다. 항상 교과서에서만 보았던 빅벤, 타워 오브 브리지, 런던탑, 피카달리 서커스([Piccadilly Circus]), 내셔날 갤러리 등이 눈앞에 있었다. 이후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페인, 그리스, 헝가리, 체코까지. 당시만 해도 헝가리와 체코는 우리나라와 미수교국이었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에서 비자를 받아 갔던 기억이 있다.
떠나기는 혼자 떠났지만 현지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때 유럽 곳곳을 돌면서 받았던 충격과 신선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입국장에서 한국을 모르는 관리 때문에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던 기억도 있다. 올림픽을 끝낸 터라 세계에서 한국을 모를 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정말 세계는 넓고 가야 할 곳은 많았다. 낯설고 생소한 유럽에서 지낸 한달 반 동안 힘들고 고독했지만 그만큼 빛나는 시간이었다. 그때 만약 여행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때 왜 떠났던가? 일단 표면적으로는 군 제대 이후 복학하기까지 시간이 있었다. 돈을 벌거나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다행히 유럽을 목표로 세움으로써 내 시야는 많이 확장되었다. 공산국가였던 체코에서 대학생과 만나 늦은 밤까지 당시 현실과 상황을 이야기했던 기억도 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환율을 잘못 계산해서 대학교수 한 달 봉급에 해당하는 식사를 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던 중에 작은 배낭을 소매치기 당하기도 했으며, 스페인의 오지에서 혼자 남겨진 경험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신기하게도 내 몸과 내 마음은 그런 추억들을 다 기억하고 있다.
다음으로 나는 당시만 해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민주화열풍이 전국을 휩쓸던 시기였다. 물론 학과가 졸업하면 취직이 보장되기는 하였지만 나는 그 길이 썩 내키지 않았다. 대부분 졸업을 하고 군대를 가던 시절에 학기 도중에 군대를 갔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말도 잘 안 통하는 유럽에서 한달 반을 버티고 나니 한국에서는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사람 중심으로 모든 것을 우선하는 유럽식 문화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물론이다. 내 시야가 넓어졌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올해로 해외여행을 시작한 지 30년째라 그런지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나는 수시로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재작년에는 한달 가량 유럽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도 보면 문제가 생겼다. 무엇보다 여행을 다녀온 후가 문제였다. 한번 여행을 다녀오면 수천 장의 사진이 쌓이는 데, 따로 기록을 해놓지 않다 보니 하드에만 쌓여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어디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것도 내심 불만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네이버 블로그였다.
여행에서 다녀온 후, 또는 현지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기록을 해둔 게 돌아와서 글을 쓰는 데 유용했다. 블로그를 하면서는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여행 중이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빼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적어두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두서없던 여행이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동안 한동안 잊고 살던 옛기억과 만날 수 있었다.
글을 쓰면서 사진을 찍었을 때의 느낌과 당시의 생생했던 상황이 그대로 살아났다. 추억을 회상하면서 얻어지는 행복한 기분은 덤이었다. 그냥 사진만 찍었더라면 도저히 그런 느낌과의 만남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일기를 쓰듯이 여행기를 쓰는 것은 피했다. 결과물이 쌓이던 중, 나는 여행잡지 <Tour de monde>가 모집한 인플루언스에 지원을 했다. 그동안 다녀왔던 여행기를 보내면 그쪽에서 원고의 질을 판단해서 뽑는 방식이었다. 다행히도 선정되어, 그해 12월부터 여행잡지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항상 동경해오던 여행작가라는 또 다른 직업이 추가된 계기였다.
오늘 저녁을 먹으러 나간 김에 일본 시즈오카로 가는 항공권을 취소했다. 항공사 직원과 전화를 끊고 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일단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미룰까 했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언제가 될지 모른다. 지난주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항공권을 취소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도 한 번쯤은 가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지금 가면 딱 좋다는 말에 5월에 미리 결제한 항공권이었다. 그때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처음 비행기표를 예약할 때만 해도 코로나가 가을까지 이어질 거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명색이 여행작가인데 여행을 못 가는 시간이 9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올해 1월에 가족과 함께 2주 가량 베트남 나트랑, 무이네, 달랏을 다녀온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자유여행의 장점은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도 넉넉하게 잡았다고 했건만 막상 현지에서는 시간이 부족했다. 지난번에 하노이부터 사파까지 북부 베트남을 돌았기 때문에 남부지방으로 방향을 잡은 게 탁월한 선택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아마 두세 군데는 다녀왔어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발이 묶인 올해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잡지에 연재할 여행기를 쓰느라 봄 동안 베트남 이곳저곳을 소환하느라 바빴다. 한동안 밑천이 떨어지고 난 다음에는 예전에 다녀왔던 곳을 소환해야만 했다. 한동안 내 기억의 뒤편으로 미루어 두었던 곳이었다. 만약 내게 그런 여행의 추억조차 없었더라면 올해를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대신 올해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여행을 가지 못하는 대신에 평생 요즘처럼 많은 글을 쓴 적이 없다. 매달 잡지에 여행기를 연재했고, 시집 몇 권을 묶어도 충분할 만큼 많은 시를 썼다. 그 외에도 다른 산문을 쓰기도 했다. 이 모두가 코로나 덕분에 넉넉한 시간이 생긴 때문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갈 수 없다고 우울하다고 여겼으나 생각을 바꾸니 코로나가 내게는 또 다른 축복으로 다가왔다.
올해, 내게는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몇 가지 사건이 일어났다. 첫 번째는 극동방송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 라디오는 음악 프로그램만 듣던 나로서는 기도 찬양과 말씀을 주로 하는 기독교 방송을 이처럼 즐겨 들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애청하고 있으니 인생은 참 모를 일이다. 어떤 때는 방송을 듣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기도 한다. 그 마음을 시로 쓰기 시작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시집 몇 권 분량의 시가 쏟아져나왔다.
올해의 또 다른 수확은 인스타그램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페이스북, 블로그, 브런치, 인스타그램 등을 가입은 했었다. 그중 일부는 활발하게 활동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의 경우, 계정만 만들어 두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남는 동안에 우연히 여행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나도 그 대열이 동참했다. 대개의 사람들은 인스타에 올린 사진만 보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거기에는 여행지와 일상에서 느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사진이 말을 걸어왔다.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스타 인친에게 선물로 보냈다. 시를 받은 이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감동이라거나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냈다는 평이 댓글로 남았다. 하기야 살면서 시를 선물받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풍경 사진보다는 사람이 있는 사진이었다. 지금은 밤 10시 반에 내 인스타그램에 그 시를 연재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시 쓰기 작업은 어느덧 50편을 넘었고, 나는 이 시를 묶어서 <인스타에서 빛나는 별>이라는 시집으로 만들기로 했다.
어찌 보면 내게 여행지는 또 다른 의미의 정착지이다. 사전적인 의미의 ‘정착’이 어느 공간에 붙박이로 머무는 것을 이야기한다면 내게는 그 기간이 짧을 뿐이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추억은 내 인생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지명을 듣거나 떠올릴 때마다 거기에서 있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 삶의 갈피들이 없었더라면 내 삶은 팍팍하고 단조로웠을 것이다. 가족이 함께 다녀왔던 여행지가 TV에 나올 때마다 그때 있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다행히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지가 제법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그 기억이 있어 우리 가족은 더 풍요로워졌다. 이는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었던 나만의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