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이 일년의 반을 훌쩍 넘는다는 가나자와에서였다. 어느 글에선가 ‘흐린 날엔 가나자와’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다. 내가 가나자와에 머무는 동안에도 날씨는 흐림과 비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가나자와의 유명한 “가나자와에서는 도시락은 잊어도 우산은 잊으면 안 된다.”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날도 아침부터 날이 잔뜩 흐렸다. 겐로쿠엔(兼六園)이며 가나자와성(金沢城)까지 두루두루 보느라 오후가 지나면서부터 피곤이 몰려오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는 시간대의 저녁식사 메뉴 선정은 쉽지 않다. 게다가 빡빡한 하루를 보낸 후라면 조금은 더 특별한 저녁 생각이 간절해진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가 검색 끝에 일본 가정식 백반을 취급한다는 식당에 눈길이 끌렸다.
음식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는 음식점을 가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인지 식당 소개하는 이가 말하는 가족이 대를 이어서 간다는 말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단품 요리는 많이 먹어보았지만 가정식 백반이라니 좀처럼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대를 이어서 할아버지가 아버지, 손자와 함께 간다는 90년 전통의 우동소바 전문집이라니 일단 그 문구만으로도 호감이 갔다. 게다가 일본에서 현지 거주하고 있는 이가 추천하는 집이라니 더 신뢰가 간다.
어찌어찌하다가 그 집에서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으나 정작 가는 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날따라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다리는 버스까지도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내가 식당 근처라는 오미초(近江町) 시장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8시 10분경이었다. 일단 식당으로 목표를 정하자 마음이 급해졌다. 라스트 오더가 8시 30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미초 시장 근처라는 건 알겠는데, 구글 지도를 봐도 어디가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식당 주소를 들고 지나가는 일본인에게 물어보았건만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우리도 누군가가 갑자기 식당 주소나 이름을 물어보면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오미초 시장에서 지도에 나와 있는 방향 쪽으로 몇 발걸음을 떼기는 했지만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여기에서 조금 더 시간이 늦어진다면 식당 찾기는 더 어려워진다. 한국도 그렇지만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는다는 건 밥을 먹을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혹시 식당을 찾더라도 술안주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 정도가 남을 것이다. 그만큼 늦은 시간에 식당을 찾는 건 선택의 폭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일본도 예외는 아닐 터였다.
아마도 늦은 시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지나가는 청년에게 식당 이름을 보이며 물어보았지만 손사래를 친다. 그 황망함이란. 점점 시간은 가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없다. 포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사이 커플이 지나간다. 무작정 미안하다며 주소를 들이밀었다. 늦은 시간에 길에서 낯선 이가 불쑥 다가오는 것은 위협적이다. 비록 길은 열린 공간이기는 하지만 그 공간은 다른 이에 의해 방해받을 때 충분히 두려움의 공간으로 바뀐다. 게다가 은폐의 시간대인 밤이라면 상황은 더 최악이다. 그 위협을 건너뛸 수 있는 방법은 시선을 회피하거나 서둘러 도망치는 일이다.
여자분이 내가 건네는 주소를 받더니 그곳을 안다는 표정이었다. 여자분이 같이 가던 일행에게 거기가 맞지 않느냐고 동의를 구하자 그렇다는 끄덕임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내게 가야 할 길에 대해 설명을 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자 상황이 바뀌었다. 갑자기 여자분이 시계를 보더니 앞장서 걷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말릴 틈도 없었다.
지금도 바람소리를 휘휘 내며 씩씩하게 걸어가던 걸음이 생각난다. 게다가 내가 가야 할 방향은 그들이 오던 길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다. 그냥 길을 알려줘도 될 텐데 이렇게까지. 아마도 그들은 내 표정을 보더니 말로만 설명하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했나 보다. 마치 자기가 급하게 약속 장소로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왠지 가나자와에서 좋은 추억이 생길 것 같았다.
사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했지만 내가 가려던 식당의 라스트 오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급했던 터였다. 만약 중간에 길을 헤맨다면 고생 끝에 식당에 도착해서도 주문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나로서는 최악의 상황이 될 상황이었다. 그건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하루 종일 걷느라 고생한 데다 굶기까지 한다면 그날 하루 바지런히 다녔던 나에게 미안할 터였다. 내가 애매한 시간 때문에 그 식당에 갈까 말까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분들도 식당의 라스트 오더 시간을 아는 듯했다. 남자분이 함께 걸으면서 급하게 식당으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자분은 앞장서고 남자분은 식당에 전화를 걸고 찰떡궁합이 따로 없었다. 그 급한 와중에도 들었던 생각은 완전 ‘환상의 복식조’였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내용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지금 가면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간간히 들리는 일본어와 그이의 표정에서 나는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었다. 나야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셈이지만 이분들은 아무 죄도 없이 길 모르는 나를 만나서 고생을 하는 판이었다. 나는 그들 뒤에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뒤를 쫓아가는 꼴이었다. 마음 한구석에는 미안한 마음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초면에 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나 싶기도 했다. 앞장선 그분들 뒤를 따라 어색한 느낌으로 따라 걷는 형국이었으니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만도 하다. 여자분은 걸으면서도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어느새 여자분의 걸음은 걷는 수준을 넘어서 빠른 걸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녀의 발걸음만큼이나 내 마음도 바빠졌다. 그녀의 발걸음만큼이나 내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행히 남자분이 주방장과 이야기가 잘 되었다며, 지금 가도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말을 건넸다. 그는 내가 잘 이해했는지 재차 확인을 하며 안심을 시켰다. 그들을 따라잡느라 조바심을 내던 마음이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한편으로는 일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었다. 그냥 식사하러 나왔다가 뭔가 나도 모르게 일을 크게 만들어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으니 그 식당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가는 도중 그 식당에 대한 호기심 반 기대 반의 심정이 들었다. 처음에는 애매한 시간대 때문에 먹을 수 있으면 먹지라는 느슨한 마음이었는데 어느 순간에 반드시 먹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도와주었는데 먹지 못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가는 길이 멀었다. 거리가 멀수록 내 마음의 부담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내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목적지는 더욱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야 식당에 들어가서 맛있게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그들은 나와 함께 온 거리만큼을 다시 걸어가야 한다. 걸어온 거리가 10분이라면 다시 10분을 꼬박 되돌아 가야 하는 셈이다. 그것도 처음 본 외국인을 위해서 말이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있나.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내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같은 길을 다시 걸어야 하는 피곤함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10분 가까이 지나면서부터 나는 고맙다며 그들을 돌려보내고 싶었다. 아마 내가 일본어가 능숙했더라면 충분히 그랬을 것이다. 나야 거기가 아니라도 다시 오미초 시장 근처에 가서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한 끼를 때우면 된다. 그도 아니면 최악의 경우라 해도 편의점이 있다. 현지인이 추천하는 식당이라는 말만 듣고 나선 길이었기 때문에 굳이 거기 식당을 고수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 표정을 읽기라도 했을까, 여자분이 환한 표정으로 다 왔다는 손짓을 한다. 그런데 도무지 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대개의 식당은 길가에 있기 마련이다.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식당이 없다. 아니 없는 게 아니었다. 큰길에서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큰길에서 갈라지는 골목길 언덕 쪽에 식당 <코바시 오타후쿠(小橋オタフク)>가 있었다. 제대로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나 혼자서라면 도저히 찾지 못했을 위치였다. 게다가 밤이었기 때문에 나 혼자였더라면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음이 급했던 나로서는 아마 큰 길만 보다가 지나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제야 그들이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식당 주방장이 길 아래까지 나와 있었다. 아마 미리 전화통화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은 잠시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이었을 것이다. 내 안 어느 구석에 단단하게 남아 있던 일본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도 모르는 그들과의 인연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너무 고마운 나머지 한국에서 준비했던 무슨 선물을 주었던 것도 같다. 둘은 나를 목적지까지 잘 인도하는 게 자신들의 임무나 되는 듯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빠르게 사라졌다. 서둘러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급한 발걸음을 보면서 나는 한없이 미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나는 큰길에서 그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그래야만 그들이 가야 할 길에 대한 미안함이 덜어질 것 같았다. 그 따뜻한 마음을 안고 주방장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섰다. 일본풍 간이 정원을 품은 식당은 첫인상부터 푸근하고 아늑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무엇이라도 안 맛있었겠는가. 내가 가나자와에서 처음 맛본 정통 일본 가정식 백반집이었다.
피곤한 하루를 마감하며 맞이하는 따뜻한 저녁 한 끼는 큰 위로다. 더군다나 친절한 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음식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 식사는 잊히지 않는다. 그날 내가 그들이었더라면 과연 그렇게까지 했을까? 글쎄다. 그 시간대라면 아마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며 집으로 귀가하거나 어떤 모임에 가는 길이었을 수도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낯선 이를 위해 20분을 걸으라면, 솔직히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그날 가나자와 커플과의 만남에서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도 세상은 따뜻하다는, 그리고 어쩌면 일본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여행자에게 낯선 길에서 만난 우연한 호의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20년도 더 된 시절, 외국인인 나를 위해 막차를 희생하며 버스를 알려주던 어느 가족의 기억은 그 나라를 생각할 때마다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내가 언제 다시 방문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나는 이 도시를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들과 헤어지는 순간 알고 있었다. 내게 가나자와는 이 둘이 보여준 호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도시로 기억될 것이라고.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도시는 분명히 살 만한 세상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