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한 식당을 ‘차오마오’라고 불렀다가 딸아이에게 혼났다. 바로 ‘짜오마오’라고 발음을 못 했다는 이유였다. 가끔 발음에 헷갈리는 단어가 있다. 베트남처럼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은 발음에 유독 신경이 쓰인다. 전통적으로 베트남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의 영향, 좀 더 정확히는 침략, 을 많이 받았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이 적장이었던 맹획을 잡았다 놓아주는 식으로 감화시켰다는 칠종칠획(七縱七獲)의 실제 배경은 운남이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서 베트남이 떠올랐다. 베트남의 역사에서 중국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그 영향 때문에 베트남에는 중국식 사당이나 사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근세사에서 베트남만큼 험난한 고난을 겪은 나라는 흔치 않다. 베트남은 한때 프랑스 식민지였다가 미국의 보호를 받았고 결국은 남북의 통일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다. 그 여파는 중국과 베트남의 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1979년 2월 17일 국경분쟁을 시작으로 일어난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중-월전쟁 또는 중국-베트남 전쟁으로 불리는 전쟁이다.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지정학적인 문제가 개입한다. 당시 부주석이던 덩샤오핑은 “동맹국 캄보디아 침공과 베트남 내의 중국계 화교 추방(베트남 측은 이를 부인)”을 이유로 ‘베트남에 대한 징벌적 군사행동’을 공식 발표하고 전쟁을 개시한다.
우리가 가기로 한 ‘짜오마오’는 베트남의 대중음식점이다. 가보니 대중음식점이라기보다는 고급음식점이라는 편이 더 어울린다. 다행히 숙소에서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샛노란색의 짜오마오의 첫인상은 푸근했다. 환한 노란색을 보자 마음까지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대기 손님이 많은 듯 입구에는 친절하게 의자까지 놓아두었다. 특히, 입구에 사진을 찍다가 소매치기를 당할 수 있다는 경고문이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식당에서 그런 경고를 붙였을까. 아마도 이미 그런 일이 한두 번 이상 발생해서 낭패를 본 손님이 있다는 말일 게다. 베트남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한 소매치기는 유명하다. 베트남의 인력거인 릭샤를 탄 관광객이 핸드폰으로 주변 풍경을 찍으면 소매치기가 와서 가져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일단 식당 입구에서부터 난관이다. 종업원 이야기가 바로 입장은 안 되고 15분 정도 기다려야 한단다. 기다리는 동안 다시 또 다른 손님이 들어온다. 그만큼 음식이 맛이 있거나 유명한 식당이라는 의미이다. 하기야 짜오마오는 지금 나트랑에서 가장 뜨고 있는 음식점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기다리다 보니 베트남 식당이지만 정작 들어오는 손님은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가격이 상당히 비싸다. 비록 베트남의 전통 음식을 팔지만 베트남인이 찾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한국 사람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한데다 적당한 가격까지 맞물리다 보니 한국인이 즐겨 찾는 식당으로 뜨고 있는 셈이다.
기다리는 동안 건물 바깥에서 식당을 보니 분위기가 제법 그럴싸하다. 베트남 중부의 호이안 길거리에서 익숙하게 보았던 화사한 등이 고혹스러운 분위기를 만드는 주인공이다. 아마도 주인은 호이안에서 인테리어의 모티브를 따왔을 것이다. 식당 내부에 창 쪽으로 등을 배치한 모양인지 한 눈에 확 뜨인다. 아마 유리창에 비치는 수까지 고려해서 등을 배치했는지 등 숫자가 실제보다 더 많아 보인다. 3층짜리 건물 전체가 등으로 꽉 차 있는 느낌이다. 외관부터가 이러니 손님 입장에서는 사진을 안 찍고는 못 배기는 상황인데, 소매치기들이 그걸 노리는 모양이다. 어쩐지 식당 입구에서부터 눈이 호사하더니 화려한 등을 보니 마음은 어느새 호이안으로 달려간다.
실내에 들어가 보니 인테리어가 더 근사하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상당히 분위기가 있다 싶었는데 2층에 올라가보니 더 하다. 한쪽 벽에는 그저 철지난 신문을 걸어두었을 뿐인데 그 자체가 이국적이면서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인테리어도 베트남의 토속적인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편안함과 이국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이런 안목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상당히 절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안목 있는 이의 솜씨임이 분명하다. 세상에는 꼭 그런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른 이들은 보지 못하는 특별한 안목으로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내가 놀란 것은 식당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식당 종업원들의 서빙 태도였다. 종업원이 적당한 품격과 여유를 갖고 손님을 대하는 태도는 저절로 기분이 좋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덕분에 음식을 먹기도 전에 이미 기분이 좋아져버렸다. 약간 시장했던 터라 반쎄오와 갈릭 새우, 미꽝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켰다.
예전에 처음 베트남에 왔을 때 맛보았던 반쎄오와는 차원이 달랐다. 다낭의 그 음식점도 유명하다고는 했으나 짜오마오의 반쎄오가 더 바삭바삭하면서 내용물이 풍부했다. 베트남인들이 좋아하는 반쎄오는 양이 너무 많아서 1인분을 시켰는데도 가족 모두가 맛보기에 충분했다. 2인분을 시켰더라면 다른 요리는 먹지도 못할 뻔했다. 이어 나온 다른 요리도 맛이 깔끔했다. 마지막 주문은 8시 30분이니 늦지 않도록 시간 안배가 필요하다. 만약 나트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더라면 한 번은 더 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