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건 없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여행 고수들은 시간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음식 사진으로 배부를 수 없듯이, 수많은 여행책을 보는 것도 즐겁기는 하지만 직접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멋진 풍경들, 눈이 황홀해지고 입이 즐거운 음식들, 그리고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몇 줄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 당신은 죽기 전에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설레고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면 이미 당신은 여행을 즐길 준비는 충분하다. 만약 오늘 당신이 만나는 일상이 무료하고 지루하다면 모건 프리먼과 잭 니콜슨이 주연한 <버킷 리스트>라는 영화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오래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어리석은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다녀온 곳의 순위를 매기기도 한다. 그다지 많지는 않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난 후, 바로 또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지는 특이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삿포로 여행을 준비하던 나는 <북해도로 가자>라는 카페를 발견했다. 카페에서 글을 읽던 중에 이상한 후기를 읽었다. 삿포로로 떠난 사람들이 공항에 내려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가고 싶어 진다는 후기를 읽으면서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여행지를 다녀온 후라면 피곤함 때문에 아무 생각이 안 나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 어떤 곳이기에 사람들은 이렇게 푹 빠졌다는 말인가 의문이 들었다.
여행지를 종횡무진으로 돌아다니다가도 집에 도착하는 순간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피곤함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온몸을 휘감아버리는 것이다. 드디어 무사히 돌아왔다는 생각은 바짝 긴장했던 몸을 사정없이 풀어지게 만든다. 그 저편에는 별 사고 없이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평소 자기가 살던 동네이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오랜 여행 끝에 돌아온 후에는 공기조차 다르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여행은 낯익은 도로 표지판, 자주 다니던 가게만 봐도 반갑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행지의 즐거운 추억이고 뭐고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세상만사가 귀찮아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에 도착한 후 가방 정리조차 못하고 그대로 뻗어버리기 마련이다. 이 순간만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지는 것이다.
나 역시 삿포로에서 돌아오고 난 후, 그날 저녁에 다시 북해도 카페에 들어가 삿포로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해야 했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니다 보면 어느 한 곳쯤은 그처럼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삿포로>
삿포로라
쓰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 도시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나
러브레터의 한 장면처럼
푸른 하늘이며
거닐던 작은 골목길,
오도리 지하철역도 아직은 선명한데
삿포로는
이 가을 내게 보내는
작은 선물.
다음에 만날 때는
눈 쌓인 삿포로 이층 찻집에서
함박눈을 흠뻑, 마시리
아직
우리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으니
만약 당신이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생긴다면 일단 보이는 곳에 사진을 두는 것도 좋다. 만약 결정 장애라도 있다면 먼저 여행 적금을 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면 그만큼 당신의 여행지도 가까워질 것이다.
예전에 우연히 터키 열기구 사진을 본 후, 그 강렬한 모습에 흠뻑 빠져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가까운 곳에 계속 열기구 사진을 두고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과 함께 터키 카파도키아에 가서 열기구를 탔다. 어땠느냐고? 그거야 물어보나 마나다. 나보다 먼저 터키로 자유여행을 떠났던 아내는 열기구 예약까지 해놓고 날씨 때문에 타지 못했다고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그러고 보면 시간이나 돈이 있다 할지라도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없는 게 여행의 또 다른 묘미가 아닐까!
새벽 5시경에 허허벌판에 도착한 아들과 내 눈 앞에는 백여 대의 열기구가 벌판에 놓여 있었다. 사실 그 순간에는 얼마만큼의 열기구가 있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조금씩 바람이 들어가자 열기구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팽팽해졌다. 그리고는 마침내 두둥실. 어느 순간 우리는 하늘 위를 날고 있었다. 백 여 대의 열기구와 함께, 발아래로는 그림 같은 카파도키아 풍경이 흘러가고 있었다. 하늘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그동안 고단했던 세상사를 잊게 만들 정도로 황홀했다.
지금 만약 여행 갈 형편이 안 된다 할지라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이미 당신의 마음속에 여행을 떠나고 싶은 씨앗이 뿌려졌으므로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언젠가 그 싹이 자랄 것이다. 그리고 그 싹이 쑥쑥 자라서 언젠가 바람이 불기만 하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만약 당신이 어딘가를 떠나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목적지를 택하는 일이다. 여행은 식사를 하러 가는 것과 같다. 미리 무엇을 먹을 것인가 정하고 가기도 하지만 식당에 가서 음식을 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먹고 싶은 음식을 정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 음식을 먹으러 몇 백 킬로를 운전하고 가는 내내 마음이 설렐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우연히 들른 허름한 식당에서 인생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정말로 당신에게 생기리라 확신할 수 있는가? 만약 반대가 된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가족이 유럽 여행을 할 때였다. 가이드에게 피렌체의 인생 맛집이라는 티본스테이크를 잘한다는 식당을 추천받았다. 구글 지도를 켜고 호기롭게 갔다.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식당 분위기는 좋았고 웨이터는 친절했다. 음식도 나름 좋았다. 그런데 고대하던 티본스테이크는 없었다. 아무튼 식사를 하고 나오는 데 딸아이가 하는 말
하필 고르고 골라서 간 집이 옆 식당이라니. 그래도 어쩌랴.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가끔은 이런 엉뚱한 추억이 여행을 빛나게 한다. 그래도 이왕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면 적어도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공부를 하고 가자! 공부가 아니어도 좋다. 내가 갈 곳에 대해, 내가 먹어야 할 음식에 대해 그냥 살짝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또 누가 아는가, 그 소소한 준비가 당신의 여행을 더욱 빛나고 행복하게 만들지.
유홍준 선생의 말처럼 세상은 당신이 아는 만큼 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