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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과 심야버스

- 우연하게도 글을 쓰는 지금도 심야이다

by 산들

황금 같은 설 명절. 내가 하릴없이 이번 연휴에 한 일이라고는 주야장천 여행 관련 유튜브를 본 일이다. 여행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노라면 불현듯 배낭을 싸고 싶어진다. 여행에 대한 간절함은 작년이야 어떻게든 견딜 만했지만 올해는 점점 더 증상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책이 유튜브 동계 캠핑 탐색이었다. 내게 동계 비박의 추억이라고 해봐야 지리산 천왕봉을 갔을 때, 덜덜 떨며 새벽 일출을 보러 간 게 전부이다. 하지만 혼자 눈길 산행을 하거나 산속에서 엄동설한에 용감하게 텐트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과연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 반, 질투 반으로 어느새 심경이 복잡해진다.


최근에 보았던 유튜버 중에 인상 깊은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28일간 다른 동생 2명과 남미여행을 다녀온 <정원의 세계여행>을 운영하는 정원이라는 친구이고, 다른 한 명은 코로나 시국에 터키로 훌쩍 떠난 <차박차박>이라는 채널에 업로드를 하는 친구이다.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정도면 거의 여행 중독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구태여 구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는 상당히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보면 쉽게 빠져들 정도로 매력이 넘친다. 이들의 매력이 코로나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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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때문에 프랑스 일을 접고 현재 태국에서 300일 넘게 버티고 있는 정원이라는 친구는 아는 두 동생과 남미여행을 계획한다. 그런데 그 수준이 가히 무모하다고 할 정도이다. 교통비가 상당한 남미에서 한 곳에 머무르는 형태가 아니라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니는 남미 코스를 완주했다는 게 대단하다. 동남아도 아니고 130만 원으로 남미에서 거의 한 달을 지내고 왔다는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을뿐더러 항공기를 이용하지 않고 버스로만 전거리를 이동했다는 사실은 더 놀라웠다.


실제로 그들의 여행 영상을 보면 이건 여행이라기보다는 흡사 고난의 행군과 닮아 있다. 그러다 보니 일정 자체가 워낙 빡빡해서 막차 인생이라는 본인들의 고백처럼 막차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여정의 연속이었다. 끼니를 거르는 게 보통이며 교통수단과 호텔 가격을 깎는 것은 일상이다. 그런데도 화면 속 그들은 끊임없이 웃고 있다. 지금의 나라면 아마도 손을 들고 말았을 그런 벅찬 일정과 허접한 식사 앞에서도 나는 부러워야만 했다. 물론 그 이유가 결항으로 작년에 연기했던 삿포로 항공권이 얼마 전 취소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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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모처럼만에 짠내 풀풀 나는 세 남자의 남미여행의 잔재미에 푹 빠져서 보냈다. 빠듯한 경비에 빡빡한 일정까지 정말 보는 사람조차 숨 막히게 진행되는 남미여행이었다. 처음에는 28일과 130만 원이라는 썸네일에 혹해서 보게 된 영상이었다. 마치 홈쇼핑의 미끼 상품처럼 낚인 셈이지만 그래도 젊은 청춘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게 된 즐거움은 컸다. 보통 우리가 아는 생각하는 남미여행은 여행기간이 많이 걸리는 점도 있지만 적어도 팔백만 원이나 천만 원대에 가까운 경비가 든다. 일반인들이 쉽게 남미여행을 계획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금액으로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보다 보니 마지막 날 남미를 떠날 때쯤에는 나까지 어찌나 아쉽던지.


어찌 여행이 즐겁기만 하겠는가마는 여행 영상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즐거운 표정이었다.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그들은 틈만 나면 뛰고 달렸다. 마치 이 땅은 좁으니 날 수밖에 없다는 것처럼. 게다가 숙소도 정해놓지 않고 즉석에서 흥정을 해서 잡거나 그날 막차를 타고 다음 여행지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도 있지만 지금의 나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야생의 여행이 날것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주스 한 잔을 시켜서 나눠 먹으면서도 무에 그리 즐거운지 그들은 연신 행복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청춘의 힘이리라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버거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내 생활과 비교되어 씁쓸함이 밀려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내 인생에도 24시간 버스를 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나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하기는 엄밀히 말하면 나는 24시간이나 버스를 타본 기억이 없다. 고작해야 열몇 시간이 전부였다. 물론 국내에서는 아니었다. 런던-에든버러, 런던-파리, 중국 위해-태산, 중국 위해-황산, 중국 운남 다리–리장, 베트남 하노이-사파, 네팔 카트만두-포카라 등이 제법 긴 여행이었다. 이외에도 기차와 배로 장시간 여행한 적이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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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면서 가장 오래 했던 장거리 여행은 45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배낭여행이라는 말도 없을 때였으니 고생을 하면서도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이국적인 아름다움과 새로움을 접하는 것은 다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규모가 다른 점도 매력적이었지만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면 유럽을 눈앞에서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은 내 발길을 재촉하게 만든 힘이었다. 그렇게 한 달 넘게 유럽을 숨 가쁘게 돌고 스페인에서 보냈던 마지막 일주일은 한국이 그리워서 당장에라도 귀국하고 싶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 이후에도 짧고 긴 여행을 간간히 다녀왔지만 한 달 이상의 여행을 계획하기에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인터넷도 없던 젊은 시절, 무사히 혼자 잘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 각박한 삶은 위안을 받곤 했다. 그 이후 시간을 내어 부지런히 다니려고 애를 썼지만 남들처럼 1년이나 2년의 장기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몇 년 전, 다시 찾았던 헝가리의 기억이 내 기억과 너무 달라서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20대 혼자 떠났던 여행이 없었더라면 내 인생의 20대는 얼마나 슬프고 적막했을 것인가? 만약 내가 그때 여행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아마 지금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최근에 장거리 버스를 탄 건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 이동할 때였다. 대략 8시간 거리였지만 나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하루도 묵지 않고 배낭여행의 성지라는 포카라로 떠난 셈이었다. 처음에는 항공편을 알아보기도 했지만 턱없이 비싼 비용도 비용이지만 비가 오거나 기상이 좋지 않으면 비행기가 안 뜬다는 말 앞에 버스로 방향을 돌렸다.


카트만두 골목길을 오가면서 구경을 하다가 시간에 맞추어 택시를 타고 갔더니 정류장도 아닌, 간이 정류소인지는 모르겠으나, 길가에 버스 두 대가 있었다. 짐을 짐칸에 실지 않아서 옆자리에 짐을 두었던 나는 다른 손님이 안 타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랐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는 중간중간에 손님을 다 태워서 꽉 채운 채 포카라로 출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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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과 좌석 사이가 넓지 않아 장거리 이동에는 불편하다


좌석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지만 새벽녘 허름한 휴게소에 내렸을 때는 어둠 속에 휴게소만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먼지 풀풀 날리는 도로변 휴게소를 제외하고는 변변한 가로등조차 거의 없어서 완전 오지를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포카라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시 무렵, 아무도 없는 길에 나를 남겨둔 채 버스는 떠났다. 비몽사몽간에 차장에게 몇 번이나 내리는 곳이 맞다는 다짐을 받고 내렸음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의문이 여전히 남았다. 다른 곳에 내려주었다 해도 나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마침 민박집주인이 오토바이를 끌고 마중을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 새벽시간은 무척이나 길고도 힘든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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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떠난 버스가 새벽 무렵,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경험은 조금은 이채롭다. 그 도시에 대한 첫인상이 새벽시간에 결정 나기도 한다. 대부분 아직도 사람들이 활동하기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우리는 도착해서 주변을 쓱 훑어보면서 본능적으로 그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버린다. 따뜻했던 실내에서 차가운 바람 속으로 내려설 때나 시원하던 실내를 벗어나 숨이 턱 막히는 다른 세계로 내려서는 느낌은 당혹에 가깝다. 새벽을 즐기는 이도 있기는 하지만 밤 시간대에 작업을 주로 하는 나는 새벽시간에 취약하다. 물론 여행에서도 이런 패턴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형편이니 나는 심야버스의 도착시간인 새벽에는 예외 없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일단 몸이 편하지 않다. 게다가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면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숙면을 방해한다. 장시간 구겨져있다시피, 일부 심야버스는 침대칸이 제공되는 경우도 있지만, 했던 몸을 추슬러 지상으로 내려오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쉬어진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편안함 저편에는 다시 이 낯선 동네에 적응해야 한다는 걱정이 자리한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경험으로 본다면 새벽의 먹먹함과 어색함이 제법 빨리 사라진다는 점이다.


우선 심야버스는 편의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심야버스를 타는 이유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또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이다. 남들이 편안한 잠자리를 찾을 때 엉덩이를 걸칠 정도의 공간에 의지해서 긴긴밤을 버텨야 하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두 시간이 지나기 시작하면 엉덩이는 점차 불편함을 호소한다. 운신의 폭이 제법 넓은 항공기와 달리 버스 안에서는 아무리 몸을 뒤척여도 불편함은 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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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버스에서는 이런 멋진 풍경은 포기해야 한다.


아무래도 버스라는 공간의 특성상 누군가 기침이라도 한다거나 코를 심하게 고는 것과 같은 불편한 행동을 취하면 그 공간에 있는 승객 모두가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다. 몇몇에 의해 다수가 곤란에 처하는 일도 있다. 이러한 경험은 심야버스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중국 운남 지방을 여행할 때, 다리에서 리장까지 가는 심야 기차를 탄 적이 있었다. 한 칸이 1, 2, 3등으로 나누어지는 그런 기차였다. 잠이 들만 하면 멀리서 가래 끓는 소리, 기침소리, 코 고는 소리가 섞여서 들려왔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상당히 오래 힘들었던 것은 뚜렷하게 기억난다.


아, 그때의 당혹스러움이란 쉽게 표현하기 힘들 정도이다. 무엇보다 다른 승객들과 함께 비좁은 공간에 장시간 동안 그대로 노출되는 경험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차멀미를 심하게 하거나 신경이 예민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묘한 일이지만 심야버스에서는 아무리 잘 잔다고 해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몸은 잠을 자고 있지만 의식은 깨어 있기 때문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심야버스를 타고난 후에는 몸이 쉽게 회복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그래서인지 최근에 보았던 시베리아 횡단 철도 같은 여행을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로망에 가까운 시베리아 횡단 기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도 가고 싶지만 그 긴긴 시간을 감당할 자신이 점차 없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동행이 있으면 좋으련만 시간을 맞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여행지에서 뜻 맞는 이를 만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아무리 가족이라 할지라도.


그러고 보니 나도 그동안 심야버스를 몇 번 탔던 기억이 난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런던에서 에든버러에 갔을 때와 베트남 사파의 추억이다. 물론 런던에서 파리를 갈 때도 빼놓을 수 없다.


십여 년도 훌쩍 넘은 예전에 런던 소아스 대학(SOAS, University of London)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한다는 공고가 났다. 때마침 중국 대학에서의 근무가 끝나 귀국하는 길이었다. 숙소와 항공료 일부를 지원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한 것이 덜컥 선정이 되었다. 나는 박노자 선생보다 앞서 발표가 잡혀 있었다. 학회가 열리는 날보다 하루 앞서 런던에 도착했으나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예전에 갔을 때 기억으로는 밤에 런던만큼 따분한 동네는 없었다. 런던 시내 구경이야 학회 중간중간에 짬을 내서 볼 작정이었다.


이리저리 정보를 찾다 보니 런던에서 그나마 가까운 에든버러가 마침 축제기간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정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지만 딱이구나 싶었다. 서둘러 숙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터미널에 가보니 다행히 밤에 떠나는 버스가 있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심야버스에 몸을 실었다. 한여름이었으나 새벽에 도착한 에든버러는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그런 여유의 기원은 짐이야 런던에 두고 왔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마음을 비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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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꿈 같던 에든버러


종종걸음으로 에든버러 성이며 시내 구경을 나섰다. 그중 압권은 미술관 앞에 펼쳐진 넓은 잔디밭이었다. 마치 한 폭의 풍경 같은 거기에 앉은 수백 명의 사람들은 피크닉이라도 나온 듯 음식을 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느낌으로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도 샌드위치를 하나 사 들고 잠시 그들처럼 느긋함을 즐기려고 애썼다. 당시 인기를 끌던 비보이 그룹과 길거리 공연을 잠깐 보았던 기억이 있다. 딱 하루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돌아본 도시가 워낙 예뻐서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이나 했다. 일정 때문에 당일 심야버스로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야 했지만 그날 이후 에든버러는 내게 푸근한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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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봐도 이 풍경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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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파의 기억도 특별하다. <Tour de monde>에 실린 글에서도 한 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하노이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사파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야간 기차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라오까이 역(Lao Cai Train Station)에 도착해서 새벽시간에 작은 밴으로 갈아타고 이동한 터라 피곤함은 극에 달했다. 사파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몽사몽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는데 한 사내가 차에 오르더니 자기네 호텔을 예약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닌가. 바로 우리가 묵기로 했던 호텔에서 나온 지배인이었다.


보통 호텔 체크인은 오후 3시를 전후로 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도 당연히 그 시간까지 있을 곳을 고민해야 했다. 처음 도착한 도시에서 체크인까지 족히 몇 시간이 넘는 시간을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심야버스를 타본 사람은 알 것이다. 짐이야 카운터에 맡긴다 하더라도 오전 내내 그 길고 긴 시간을 무엇인가를 하며 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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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호텔, 사파 호라이즌


그런데 이 궂은 날씨에 마중까지 나오다니. 그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호텔에는 따뜻한 생강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자칫 우울하게 시작할 수도 있었던 여행의 눅눅함을 풀어주는 정겨운 차 한 잔이었다. 더 멋진 일은 투숙객이 원한다면 체크인 전이라도 간단한 샤워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참 많은 호텔을 다녀보았지만 이런 호텔이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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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파에 머무는 동안 호텔 서비스는 정말 인생 호텔이었다고 할 만큼 최고였다. 떠나는 날, 호텔에서는 하노이까지 가는 동안에 먹으라고 따뜻한 반미 도시락을 만들어주었다. 사파는 다랑이논과 ‘인도차이나의 지붕’으로 불리는 판시판 산(Fansipan Mountain, Phan Xi Păng, 3143m)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이 호텔에 묵기 위해서만이라도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만약에 내가 다시 사파에 갈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여기에 묵겠다는 다짐을 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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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파리까지는 한 번은 비행기로, 두 번은 버스로 이동을 했다. 지금은 어떻게 예약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버스 바우처를 구해서 예약을 진행했다. 파리행 버스는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사람들 이동이 편한 시간대는 비싼 반면 새벽이나 늦은 시간대는 그만큼 가격이 떨어진다. 런던에서 파리행 버스를 탈 때는 묵었던 숙소에서 터미널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 쯤은 알고 있었다. 서둘렀어야 했는데, 시간이 충분하다는 주인집 아주머니의 말만 듣고 여유를 부리다가 아슬아슬하게 버스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그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간식도 사지 못하고 차를 탔던 기억이 생생하다. 더군다나 파리행은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했던 터라 차를 놓치면 안 된다는 중압감이 컸다. 게다가 버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이 어찌나 신경이 쓰이던지 도착할 때까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마침내 한참을 달려 도버해협을 건너고 국경지대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잠시 쉬면서도 눈치를 봐야만 했던 심야버스. 프랑스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차 안에 머물러야 했다. 런던을 달려 도버해협을 건너온 버스는 새벽 공기가 차가운 프랑스 땅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래도 무사히 파리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크게 다가왔다. 어쨌거나 우리는 파리에 있었으니 그거면 모든 게 충분했다.

그동안 제법 심야버스 경험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나는 심야버스가 익숙하지는 않다. 물론 장거리 버스는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하지만 지금도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게 심야버스이다. 그래도 심야버스에는 어떤 막연한 기다림이 있다. 심야버스를 타면 누구보다 일찍 그 도시에 도착한다는 점, 가장 일찍 시작해서 그 도시를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는 그런 설렘이 존재한다. 조만간 그 설렘을 다시 맛볼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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