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이다. 지독했던 겨울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듯 세상은 꽃으로 넘쳐난다. 겨울을 이기고 현란하게 핀 흰꽃, 노랑꽃, 붉은 꽃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주변으로 눈을 돌리면 어디서나 쉽게 흐드러진 꽃망울을 자랑하는 꽃을 볼 수 있는 게 봄이 아니라면 가당한 일인가. 봄에 피는 꽃의 종류는 다양할 뿐만 아니라 그 풍성함으로도 다른 계절을 압도한다. 이맘때쯤이면 꽃 주변에서 벌이나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봄이 주는 또 다른 볼거리이다.
봄이 되고 산천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가장 바빠지는 사람 중 하나가 양봉하는 이들이다. 이 무렵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꽃이다. 물론 그들은 꽃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밀원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꽃이 만개하여 벌이 활발하게 다니면서 꿀을 많이 모으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흥이 나고, 비가 내려 꽃이 시들해서 흉작이면 맥이 빠지는 게 그들의 운명이다.
흔히 양봉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지도가 하나쯤은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꽃이 피는 시기와 장소는 가장 중요한 장사 밑천이자 자산이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공산품이야 어디서든지 조건만 맞으면 구매할 수 있지만 꽃은 다르다. 기후와 날씨 등 신이 허락해야만 풍성한 꽃을 만날 수 있다. 만약 꽃이 피는 시기에 비가 많이 내려 꽃이 빨리 시들거나 가뭄 때문에 성장이 좋지 않으면 양봉업자의 한숨은 깊어진다. 여기에 키우는 벌이 낭충봉아부패병과 같은 전염병에라도 걸리면 그해 양봉 농사는 끝이라고 봐야 한다. 그것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꿀벌 애벌레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리면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죽는다. 한때 국내 토종벌을 98% 가까이 폐사시킨 무시무시한 병이다.
양봉을 위해서는 기후나 다른 조건도 중요하지만 다른 여건보다도 꽃은 절대적이다. 꽃이 벌의 주 식량이자 꿀의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벌은 꽃 사이를 다니며 꿀을 모으기도 하지만 식물의 원활한 수분을 돕는 대표적인 곤충이다. 벌이 사라지면 인류의 식량 수급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은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말이 아니다. 벌에게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셈이다.
양봉업자가 좋은 꿀을 얻기 위해서는 꽃이 풍성한 지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꽃이 항상 피어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꽃이 지고 나면 벌을 치는 이들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이유가 없어진다. 양봉업자는 몽골의 유목민이 그랬던 것처럼 꽃 피는 장소로 벌을 싣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실력 있는 양봉업자라면 어디에서 언제쯤 어떤 꽃이 피는가를 줄줄이 꾀고 있어야 한다. 가을에 지역에 따라 단풍 드는 시기가 다른 것처럼 꽃이 피는 시기도 장소에 따라 다르다.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되기에 양봉업자는 벌을 싣고 이동하면서 제대로 꽃이 핀 장소를 공략하는 것이 관건이다.
만약 양봉업자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벌은 꽃을 구경조차 못해볼 테고, 그의 1년 농사 역시 물 건너간다. 아쉽게도 한반도의 생태 환경이 바뀌면서 예전처럼 꿀을 채취할 수 있는 좋은 꽃을 만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만약 비가 잦아지면 그해 꿀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양봉업자들은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무릅쓰고라도 벌통을 싣고 꿀이 나올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벌은 외부조건에 예민하기 때문에 차로 오래 이동하는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소를 누구보다 먼저 선점해서 차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벌을 위해서도 그들을 위해서도.
나비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머릿속도 비슷하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언제쯤 나비가 나올 것이며 어디로 가야 나비를 볼 수 있으리라는 지도와 일정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오랜 시간과 열정을 기울인 결과물이다. 그가 수많은 지역에 나비를 보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축적한 자신만의 노하우이기도 하다. 물론 날씨가 더워져서 나비가 나오는 시기가 당겨지는 것처럼 조건이 예년과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이전 시점과 비교해서 일정을 조정하면 그뿐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전체 일정과 나비 출몰 지역의 지도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큰 무형의 자산이다.
그들은 나비를 보러 가면서도 자신만의 계획을 가지고 간다. 만약 몇 시간 동안 먼 거리를 달려가서 허탕을 친다면 그거야말로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사전에 계획한 1안이 실패하더라도 다른 2안으로 바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맛집이라고 알려진 식당에 찾아갔을 때 손님이 많으면 근처의 다른 식당으로 가거나 음식 종류를 바꾸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당연히 나비를 보러 가는 이라면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상세한 계획과 자신만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경북 의성으로 붉은점모시나비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붉은점모시나비는 환경부 멸종 위기 2급에 속하는 야생 동물이다. 1980년대는 전국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던 모시나비가 국토 개발의 바람에 밀려 점차 사라지는 추세이다. 마침 그곳에서는 붉은점모시나비의 생태탐방로를 조성하는 중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고속도로를 공사하던 중에 이 서식지가 발견되어 이곳으로 서식지를 대대적으로 옮기는 공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를 하면서 전체 숲을 다 파헤치다시피 엎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보기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말이 뒤따랐다. 언제나 그렇듯이 생육환경이 바뀌면 자연도 생물도 지독한 몸살을 앓는다. 지금의 의성은 그 과정에 있는 셈이다.
조성지에 도착하여 언덕을 조금 올라가자 서식지로 새로 조성한 곳이 나왔다. 아직 어린 기린초를 심어 놓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느낌이 싸하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훑어보니 잔뜩 기대했던 붉은점모시나비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함께 간 이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서둘러 길을 내려간다. 나도 엉겁결에 함께 길을 나섰다. 일행을 태운 차는 달려 새로 조성한 서식지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도착했다. 인근에 차를 주차하고 숲길을 조금 올라가니 하얀 암석의 바위산이 보인다. 나무는 거의 없고 탁 트인 공간은 짙은 회색바위만이 가득했다.
그제야 붉은점모시나비가 석회암이 많은 바위산을 좋아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는 붉은점모시나비가 기린초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때서야 알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지만 붉은점모시나비만이 아니라 기주식물이라는 기린초라는 식물 역시 그때 처음으로 보았다. 한때 흔했던 나비가 사라진 이유 중에 하나가 먹이인 기린초가 개발탓에 사라진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땅에서는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초지와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일반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저 공터이거나 묵은 초지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런 땅을 개발하지 않고 버려둔다는 것이 자본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을 묵혀둔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가 없다. 조금만 손을 보고 개발만 하면 상당한 돈이 될 거라는 망상이 그들을 사로잡는 순간 생태계는 원형을 잃고 훼손된다. 그렇게 붉은점모시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나비들이 우리 곁을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풀밭이나 초지에 불과했을지 모르겠지만 그 생태계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있다. 무성한 풀밭으로만 보이던 공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이며 애벌레가 그득하다.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생존을 거듭해왔다. 모양이 보기 싫다고 또는 개발해야 한다고 불도저가 들어가고 예초기가 들어서는 순간 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야산에서 가장 먼저 내 시선을 끈 것은 우아한 나비였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회색 바위 위를 붉은점모시나비들이 여유롭게 날고 있었다. 맹세코 그렇게 멋지게 하늘을 나는 나비를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이 없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나는 마치 행글라이더가 활공하듯이 바위산 위를 유유자적하며 나는 나비를 한참 넋을 잃고 지켜보았다. 지금까지 보았던 나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대개 나비는 허공을 팔랑거리며 난다. 그래서 우리는 나비가 팔랑거린다고 표현한다. 대개의 나비는 지긋이 한 곳에 정착하는 대신 이리저리 다니기 때문에 간혹 촐싹댄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어떤 나비는 얄미운 새침데기처럼 한 곳에 앉지 않고 잠깐 앉았다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도 한다. 그 모습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즐겁기보다는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사진에 포즈를 안 취해 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붉은점모시나비는 달랐다. 우선 큼지막한 날개로 허공에 유려한 선을 긋듯이 날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넓은 하늘을 제 집처럼 날고 있는 모습은 가히 하늘의 왕자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가까이서 지켜 보니 날개에 마치 루비를 박아 넣은 듯이 빛나는 붉은 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나는 모습을 유심히 보니 그 커다란 날개를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도 글라이더를 타듯이 멋지게 이동한다. 그래서인지 붉은점모시나비가 나는 모습은 재촉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마치 산책이나 마실을 나선 것처럼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그날 내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붉은점모시나비는 한껏 느긋하게 날았다. 마치 세련된 춤꾼이 우아한 왈츠를 추는 것처럼 눈부시게,
그날 우리는 운이 좋게도 붉은점모시나비가 짝짓기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이한 형태로 짝짓기를 하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나오는 나비 성충을 보기 위해서도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귀한 짝짓기라니. 아마 다섯 번은 와야 한 번 볼까 말까 한 광경을 보았다는 말에 과연 그럴만도 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온다고 해도 과연 여기를 찾아올 수 있을까. 아마 찾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붉은점모시나비를 만났다. 운명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