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장'이란 이름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유
장혜영 감독이 정의당의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후, 인터뷰를 진행하려니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가 몇 년 전부터 관심 있게 보았던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였기에 영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꽤 오랜 시간 만나온 사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그와 쌍방향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영상들을 보며, 정치에 직접 참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런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이 매우 신기했다.
그렇지만 신기함도 잠시,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장혜영 위원장은 정치와 가장 가까이에 맞닿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의 말처럼 한국 정치의 폐해는 현실의 문제들을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회에 없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현실의 문제들을 '내 문제'로 체감하며 살아온 사람이며, 문제제기에서 나아가 긍정적인 변화를 직접 만들어 갈 의지로 가득했다. '오직 나여야 할 이유도 없지만, 내가 아니어야 할 이유도 없기에' 정치를 시작했다는 장혜영 위원장의 앞으로의 정치 활동과,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가 그려 갈 환한 미래를 기대해 본다.
정의당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 장혜영. 때에 따라서 나를 수식하고 소개하는 단어가 다르기는 하다. 어떤 때에는 책을 쓰는 작가, 어떤 때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 또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채널 운영자이기도. 가장 최근에는 정의당에서 미래정치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막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 인터뷰에서는,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시민 장혜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실 내가 정치를 시작하는 지금 이 시점까지의 내 삶은, 전혀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였다. 2017년 6월, 동생의 탈시설을 함께 하고 나서는 동생과 함께 ‘한국사회에서 둘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 하자’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방향이 되었다. 그 삶의 방향을 걸어가는 길에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것, 장애인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이 잘해야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제도적으로, 문화적으로 바뀌어야 할 측면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단순한 개인의 삶 안에서의 실천만이 아니라, (이런 측면들을) 미디어 작업으로 풀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어른이 되면’이라는 프로젝트다. 굳이 프로젝트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여러 가지 콘텐츠의 형태로 ‘사람들한테 가서 닿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전방위적인 작업을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영화라고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계기가 되는 것이다 보니, 현실적인 투쟁의 전선들에 있어서 어려움에 부딪히며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예를 들어 장애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여러 투쟁의 전선들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장애등급제의 폐지를 위한 투쟁, 장애와 빈곤이 겹쳐져 있기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을 철폐하자는 투쟁, 탈시설에 대한 투쟁 등. 개인의 자격으로 이런 현장에서의 투쟁에 연대를 하게 되었는데 현실에서의 투쟁이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가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을 하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약속을 해서, 광화문에서 거의 5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유지했던 농성이 끝이 났었다. 그리고 장애등급제가 폐지가 됐는데, 정작 장애인 당사자와 가족들의 삶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거였다. 제도가 ‘제도 그 자체’만 없어지고, 내실은 별로 변하지 않았을 때, 이 상황에 대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사실은 큰 한계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당연히 거리에 나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작업하고, 외치는 것도 중요한 실천이다. 그러나 약속을 했던 사람들이 그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을 때 그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그러면 안 된다. 약속을 이행하라”라고 할 수 있는 직접적인 ‘힘’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지금까지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 계속 해달라는 요구만 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직접 힘을 갖고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를 지금의 사회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 문화, 제도, 관습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려서 지금의 사회를 결정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규정하는 큰 ‘아이디어’가 변하지 않으면,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삶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는 힘들 것이다. 예를 들어 ‘내 한 몸도 살기 힘든 세상에 누가 어떻게 남을 돌봐?’라는 것이 삶의 기준이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약자들의 삶이 피폐하다고 하더라도 그저 안타까워할 뿐, 적극적으로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들의 상식, 사회의 기준이라고 하는 것이 ‘서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 한 몸도 살기 힘들어진 것’이라고 생각의 순서를 바꾼다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기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큰 변화라는 건 시민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긴 하지만 명백한 정책과 제도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지금의 정치 현실을 보았을 때 사실상 ‘적대적 양당 공생관계’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가. ‘기득권’이라고 하는 것이 명확하게 정치영역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은 자신들이 기득권이기 때문에 현실의 변화, 특히 큰 변화에 대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문제를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 점진적, 단계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이고, 바람 앞의 등불인 신세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사실 안 하겠다는 말과 다른 게 없다. 그러니 드라마틱한 변화를 만들려면, 지금 이 상황에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필요한 곳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제3의 영역에 있는, 지금 이 상황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그런 곳 중에서 나와 가치가 맞는 곳.
그리고 그곳이 정의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을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별적인 순간들에 있어서 ‘가장 옳은 선택만을 해 왔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이고, 그 현실 속에서 최대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생각한다. 당장 탈 시설 법안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의원들도 다 정의당 의원들이었고,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의원들도 대부분 정의당 의원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바람, 비전, 가능성과 정의당이 가지고 있는 바람, 비전, 가능성이 함께 나아갈 수 있겠다고 보았다. 정의당을 통해서 내가 생각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내 삶의 태도와도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살면서 큰 결정을 내려왔을 때, 그 결정이 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얘기해줬던 건 거의 없었다.(웃음) 예를 들어 대학을 그만뒀을 때, 동생을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사실 저를 아끼는 사람들일수록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라고 얘기를 해줬었다. 그것은 아마 너무 불확실한 것에 모든 것을 건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명확한 불행이 예정되어 보일 때, 오히려 조금이라도 행복을 거머쥐는 방법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나는 없는 집에서 태어나서 동생은 장애인으로, 시설에 있고 부모의 덕을 보기는커녕 부모를 봉양해야 할 신세였다. 사실 나조차도 이런 상황에서 각이 안 나오더라. 이 사회의 톱니바퀴 하나가 되어 어떻게든 해보려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정말 내가 돌보고 싶은 우리 가족들을 돌볼 수 있을까?’,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사회에 조금이라도 가치를 더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이 안 나왔으니까.
그런데 나는 인생이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것이지, 잘난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못난 사람들은 불행해져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뭔가 사람들의 ‘더 이상은 유예할 수 없다’라는 생각, ‘당장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절박감이 굉장히 커진 상태라고 느낀다. 지금까지 했던 방식으로는 아마 변화가 어려울 것이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수준까지 절박하게 뭔가를 해보면, 이번에는 바뀔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정의당 안의 능동적 변수가 되겠다’라는 각오로 정의당으로 왔다.
맞다, 소리 지르고 싶다. 으악!!(웃음)
나는 어렸을 때 시골마을에서 자랐고 87년생이다. 80년대 후반, 시골마을에서 장애를 가진 동생이랑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사회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반적인 기준에서 항상 예외가 되는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여러 경험 속에서 나와 우리 가족은 ‘예외’, ‘불청객’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들을 느껴왔다.
솔직히 ‘공정’이 나에게 와 닿지 않는 것은 내가 ‘기준 안에 있지 않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프레임에서도 포착되지 않는 삶이라는 것이 있다. 공정은 상대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쨌든 경기장 안에 들어올 수 있고, 그 경기장 안에서 공정을 따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동생과 그 동생을 돌봐야 하는 우리 가족은 아예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여전히 내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그것은 공정의 언어가 아니라 불평등의 언어여야 한다. 평등에 대한 우리의 시민적인 약속, 헌법에 있는 우리의 권리가 지켜지고 있지 않다. 한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과 생존 같은 절대적인 가치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공정은 너무 한가한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이 인터뷰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내 동생하고 있어 주는 것은 국가나 사회가 아니라 나의 친구다. ‘활동 지원 시간’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리자면, 장애인의 곁에서 가족이 아닌 국가가 장애인들의 생활, 활동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그런데 원하는 모든 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신청을 하면, 평가 후, 각자에게 몇 시간을 할당해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제시한다. 그렇게 제시받은 동생의 시간은 월 94시간이었다가 최근에 조금 늘어서 월 120시간 정도가 됐다. 우리가 주 52시간 근무를 얘기하는데, 주 52시간 근무라고 계산했을 때, 이는 사실 3주 동안은 내가 일할 수 없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나는 동생과 둘이 살고 있고 나 혼자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그러면 최소한 그래도 월 200시간은 되어야 내가 주 52시간 일하는 직장이라도 얻지 않겠는가? 일 하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 할 때, 지금 정부의 대답은 “그것도 많이 받는 것”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활동 지원시간을 산출한 기준에 따랐을 때 이는 공정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삶의 눈으로 보면 월 120시간을 지원해 주고 알아서 먹고살라고 하는 것은 나머지 필요한 시간은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사실 “너희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이것은 불평등한 것이다. 사람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니까. 그저 최저의 기준일 뿐이다.
그런데 ‘공정’의 기준인 ‘규칙 자체’를 문제로 삼으면 이런 삶이 안 보인다. 그래서 삶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고 얘기할 때 가져오는 키워드는 ‘불평등’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미래정치특별위원회위원장이기 때문이 아니라(웃음),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미래를 만들지 못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결정해야 하는 굵직한 사안들이 있지 않은가? 예를 들면 기후에 관한 것, 기본소득, 부와 소득의 재분배 방법 문제, 지금까지 동정과 시혜의 원칙에 입각해서 진행해왔던 복지의 문제점 등에 대해 우리가 어떤 새로운 원칙을 가질 것인가와 같은 것들. 이처럼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현재의 꽉 짜여진 기득권, 서로 주고받는 사익들은 촘촘하게 어떤 층을 이루고 있기에 중요한 사안들에 대한 어떤 합의 이전의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느낀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내 문제’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국회에 없다는 것이다. 즉, 미래의 시간에 살아갈 사람들이 정작 자기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책임과 권한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정치개혁’이라고 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해결책 중 하나라고 보며, ‘더 많은 청년들이 국회로 들어와야 한다’라고 하는 구호가 그래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래의 시간을 자신의 전성기로 살아갈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래와 아주 오래 살아왔기에 이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방식은 굉장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 미래정치특별위원회에서 해야 할 것들에 대해 당내에서, 미래정치특위에서 함께할 분들과 많은 논의를 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본적으로 미래정치특별위원회에서 하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하나는 '미래 정치의 내용을 만들어서 소통하는 것'. 수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일단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하고 싶은 것은, ‘왜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 집중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우리 사회의 구조적 약자들의 미래를 만들어낼 중요한 콘텐츠, 정책, 방향에 대한 의제를 세팅하려 한다.
나머지 하나는 청년 정치인, 여성 정치인 등이 의제를 본인의 의제로 끌고 나가며 정치를 실현할 미래 정치인들을 규합하는 것'이다. 당 내외에 있는 사람들을 규합해 미래 정치의 얼굴이 될 수 있도록 함께 커나가려 한다. 그걸 이제 어떻게 우리가 함께 해나갈 것인지, 일단 열심히 잘해봐야지.
지금까지는 내가 하는 A부터 Z까지가 다 ‘장혜영’의 이름으로 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소속이 생겼지 않은가? 사실 내 인생에서 소속이 생기는 것은 솔직히 진짜 이상한 일인데. 어쨌든 이제는 내 소속인 ‘정의당의 미래정치특별위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을까, 그것이 그냥 ‘장혜영’이었을 때와 어떻게 다를까에 대해서는 이제 파악해나가는 중이다. 그래서 좀 어렵기도 하다. 구체적 이야기들은 음, 다음 정의당 뉴스레터를 참조해 달라.(웃음)
[장혜영 위원장, "정의당 안의 능동적 변수가 되겠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