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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M경비지도사 Apr 22. 2024

<운전자의 길잡이>

택시, 택시기사, 기사식당

신호대기 하는 택시 옆에 나란히 차를 세우고 창문을 열어 길을 묻습니다.

“기사님, 이 근처에 ‘득남호텔’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기사님이 말합니다.

“다음 사거리에 우회전 하시면 건너편에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 택시기사는 운전자의 길잡이였으며 관광지와 맛집을 알려주는 정보원이었습니다. 거치형 네비게이션도 오래 전에 사라지고 지금은 휴대폰 어플로 길을 찾아갑니다. 택시기사한테 길을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1년에 한 번 자동차보험을 갱신할 때 마다 최신판 도로지도책을 받아서 차에 두고 다니 던 때가 언제인지 가물가물 합니다. 그 시절에는 팔당의 ‘봉주르’ 카페로 여인을 안내하면 호감도가 급상승해서 진도가 빨라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아내하고 만리포 해변을 걷는데 갑자기 아내가 소리쳤습니다.

“오빠!”

저는 어리둥절하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처남내외를 발견했습니다. 춘천에서 개인택시를 하는 처남이 처남댁을 태우고 바닷바람을 쐬러 왔습니다. 만리포에서 우연히 마주친 염氏 남매는 신났습니다. 다 같이 근처 횟집에 가서 회무침을 시켜놓고 소주 한 잔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춘천의 처가에 식구가 다 모였습니다. 아내는 신나서 만리포 이야기를 꺼냈고, 저도 한 마디 했습니다.

 “그 날 처남댁이 아니라 여자 손님이랑 있었어야 극적인 드라마가 되는 건데”

 처남들이 신나서 웃었습니다. 저한테 개인택시 운전은 은퇴 후 삶의 방식으로 생각해 둔 하나의 선택지였습니다. 처남 4명이 살고 있는 춘천에 자리를 잡으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서울시내에서 차를 세워두고 점심식사와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기사식당이 적당합니다. 푸짐한 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최고의 맛집은 아니어도 실패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제육, 불백, 돈까스가 단골메뉴이며 서울의 오래된 기사식당은 가성비가 좋은 진짜배기입니다. 털보네, 최가네, 현대식당 등의 한글 간판은 English 상호가 유행하기 전에 자리 잡은 추억이 서려있습니다.     


  빈 택시는 느릿느릿 움직이고 신호를 잘 지키며 길가의 사람들을 주시합니다. 손님을 태운 택시기사는 얌전히 운전 할 수 없습니다. 손님한테 오해를 받기도 싫고 빨리 내려주고 다른 손님을 태워야 합니다. 내 차 앞의 굼뜬 빈 택시도 짜증나고, 손님을 태우고 거칠게 운전하는 택시기사도 곱게 보이지 않습니다. 모르는 길을 물어볼 일도 없으니 택시는 도로 위의 얌체일 뿐입니다.      


  오마이뉴스의 오연호님이 쓴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는 덴마크 택시기사, 밀보의 인생철학을 소개합니다. 덴마크의 행복한 택시기사를 취재한 오연호님은 글을 마무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서울에서 택시를 탈 때면 왠지 미안하다. 늘 시간에 쫒기고 피곤해 보이는 그들의 얼굴을 대하기가 불편하다. “

  택시기사를 비롯해서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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