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몰락과 인천도시역사관>

근대화의 영광과 식민지의 아픔이 공존하는 인천도시역사관

by FM경비지도사

[최문섭의 뚜벅뚜벅] 근대화의 영광과 식민지의 아픔이 교차하는 ‘인천도시역사관’ < 여행 < 시니어라이프 < 기사본문 - 이모작뉴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열풍이 뜨겁다. 조선의 역사를 다룬 영화가 다시 한번 흥행의 아이콘이 되었고, 영화의 감동을 잊지 못하는 관객들이 영월과 청령포를 찾는다. 조선왕조 500년은 부침(浮沈)의 연속이었고, 그 마지막은 슬프고도 아리다. 조선의 소멸은 한국의 근대화와 맞물려 있고 일제 식민지 역사의 중심에 인천이 있다.


조선의 국운(國運)이 완전히 기울어진 1899년 9월, 경인선 철도가 인천 제물포에서 노량진까지 이어졌지만, 그 배경에는 일본 제국주의가 버티고 있었다. 인천에서 시작된 한국 최초의 철도는 근대화의 상징이었으나,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인천 송도에 자리 잡은 인천도시역사관은 근대화의 영광과 식민지의 아픔으로 얼룩진 인천의 도시 역사를 소개하는 시립박물관이다. 필자가 인천도시역사관을 찾은 건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목전에 둔 지난 6일 오후였다.

인천도시역사관 앞은 인천시티투어버스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사진 최문섭).jpg <인천시티투어버스>

인천도시역사관은 송도 국제도시를 대표하는 센트럴파크에 자리 잡아서 접근성이 뛰어나다. 센트럴파크역 3번 출구 앞에 있어서 이용하기 쉽고, 관람객에게 무료 주차장을 제공한다. 금요일 오후에 인천도시역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담소를 나누고 전시물을 둘러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누구나 무료로 이용하는 인천도시역사관의 1층 근대도시관은 제물포 개항에서부터 근대기 인천의 도시 성격과 공간 변화를 주제로 하며, 2층 인천 모형관은 현재 인천의 모습을 재현했고, 3층은 어린이 전용 상설 전시관이다.


1883년 1월 1일 조선 정부는 인천도호부 서쪽의 작은 포구 제물포를 개항했고, 몇 척의 어선이 드나들던 제물포 해안이 외국 기선의 정박지가 되면서 개항장(開港場)으로 변모했다. 제물포는 개항장의 특정 지역에 마련된 외국인 전용 거주 공간이자, 행정권을 위임한 조계지(租界地)였으며, 일본과 청나라의 전관 조계와 영국, 미국, 독일 등이 공동으로 관리하던 공동 조계가 있었다. 각 나라의 조계 안에서는 조선인의 거주와 상업 행위가 금지되었으나, 외국인은 1883년 조선과 영국 사이에 체결된 '조영수호통상조약'에 따라 10리 이내의 잡거지에서 토지와 가옥을 소유할 수 있었다.


일본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설치된 전기, 수도, 항만 등의 기반 시설과 산업시설 등은 인천을 화려한 근대 도시로 치장하는 선전 도구가 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인천의 번영을 식민 통치의 치적으로 삼아 국제적으로 널리 선전하고자 했다. 근대 인천의 도시발전과 번영의 혜택은 대부분 일본인에게 돌아갔으며, 다수 조선인의 삶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걸 인천도시역사관은 보여준다.


한편, 인천도시역사관은 인천종합관광안내소와 나란히 있으며, 인천시티투어버스 노선의 기점이자 종점이다. 인천시티투어버스의 배차간격은 1시간이고, 1시간 30분 동안 순환하는 레트로노선과 2시간 35분 코스의 바다노선이 운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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