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을 할 때마다 자동차를 타고 신호등이 없는 고속도로 위를 달린다. 그럴 때마다 보통은 도로 옆으로 갓길이 있는지, 얼마만큼의 폭으로 있는지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운전을 하는 동안 나는 앞차와 부딪히지 않아야 하고, 내가 가야하는 방향에 따라 차선도 바꿔야 하고, 속도 제한 카메라의 위치와 차선을 바꾸려는 다른 차들과의 거리에 따라 속도도 조절해야 하고, 한기를 느끼면 히터도 켜야하고, 온도 차이 때문에 앞유리가 뿌옇게 변하면 앞유리쪽으로 찬바람도 보내야 하고, 기침이 나오면 물도 마셔야 하고......신경써야 하는 다른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어두컴컴할 때 집에서 나와 시동을 켜고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겨울에 가까워지면서 해가 떠오르는 시각이 늦어져서 빨간 신호등에 걸릴 때마다 책을 읽을 수도 없고, 어두울 때 유튜브 영상을 보려니 하루 하루 눈이 침침해지는 것도 같아서 요즘엔 신호등이 있는 도로에 있을 때부터 머릿 속을 아예 비우거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그것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어떤 날은 그 날 있을 수업에 관한 생각이었고, 어떤 날은 읽고 있는 책과 그 책을 쓴 작가님에 관한 생각이었고, 어떤 날은 살아나갈 날들에 대한 생각이었고, 어떤 날은 딱히 필요하진 않지만 사고 싶은 물건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꼬리를 잡으면서 고속도로에 진입을 하고, 고속도로 위에서는 우선은 내가 신경써야 하는 것들을 의식하며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가며 밟는데, 신경쓸 거리가 줄어들면 또 다시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그 날은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져 뇌가 얼어버린 것인지 머릿 속이 백지 상태였다. 전날의 피로가 덜 풀린 것 같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내 앞에 있는 차의 브레이크 등과 신호등이었는데, 앞차의 브레이크 등과 신호등을 번갈아 보다가 고속도로의 초입에서 저 멀리에 있는 하늘의 아래끝 부분이 점점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해가 곧 떠오르겠구나.' 하면서 조금씩 학교에 더 가까워지고 있을 때, 해가 산 너머로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해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내 생각엔 추운 공기가 해를 조금은 가련하게 보이게 했던 것은데, 그래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와......"하고 탄성이 나왔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중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바로 그 때,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서있는 차와 그 차에서 소닉처럼 달려나가는 아저씨를 발견했다. 아저씨는 차문을 채 다 닫지도 않고 한 손에 카메라가 들고 반대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아저씨가 차가운 겨울 공기와 뜨거운 태양이 만들어낸 진심으로 놓치고 싶지 않은 한 장면을 눈으로 보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잠깐 본 것이라 이것도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아저씨의 얼굴을 보았을 때 아저씨의 눈, 코, 입 중에서 입이 가장 커 보였는데 왠지 아저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사실 고속도로의 갓길은 자동차들의 비상용 도로라서, 갑작스럽게 차가 고장이 났다거나 사고가 났을 때 이용하는 도로다. 그래서 갓길에 비상등이 켜진 자동차가 있다면, 보통은 보험회사로 전화를 거는 사람이나 자신의 차를 확인하는 사람이나 상대의 차를 확인하는 사람을 보게 되고 가끔씩은 교통 경찰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얼굴에 기쁨을 가득 담은 채로 카메라를 들고 반대방향으로 내달리는 사람이라니. 처음 보았다. 신기했고 내심 부러웠다.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그것을 위해 가던 길도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아저씨를 본 것이 한 달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 기억나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으니 그것을 위해서 갓길에 멈춰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