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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달선생 Jan 09. 2024

‘장롱 면허’ 아니고 ‘지갑 면허’였습니다만

운전면허 학원에서 운전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알려주었더라면 나는 면허증을 따자마자 어떻게 해서든 내 차를 샀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운전이 가능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면허증을 받은 후에도 혼자 어딘가를 가야 할 때는 꼬박꼬박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남편과 함께 어딘가를 가야 할 때는 운전석이 아닌 조수석에 앉았다.


환경을 보전하고 종잣돈을 모으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운전을 하지 못하는 면허증 소시자라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보통 나와 같은 경우의 사람들을 통칭해서 ‘장롱면허’라고 부른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친정 엄마가 무사고 30년에 빛나는 ‘장롱면허’이니까. 친정 엄마가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을 땐 면허증은 땄으나 가지고 다닐 일이 없어 장롱 어딘가에 깊숙이 넣어두었다는 뜻이겠거니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불릴 상황에 처하게 되자 일종의 위기감을 느꼈다. 장롱의 첫 번째 서랍도 아니고 그냥 장롱에 넣어두는 것이라면 다시는 꺼낼 일이 없다는 뜻이 된다. 그럴 거면 따순 방에 누워서 좋아하는 드라마나 볼 것이지 왜 굳이 시간 들이고 돈 들여서 추운 날에 기어 나가서 면허증은 땄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면허증은 지갑에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사용하겠다는 뜻으로다가.


그 사이에 임신과 출산을, 육아휴직을 하면서 3년이 지났다. 복직이 코 앞으로 다가왔고, 거기에 아이의 등하원을 내가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간이 배로 들었기 때문에 운전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마지못해 복직 한 달 전부터 주말마다 남편과 주행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남편의 자비 없는 잔소리를 쉴 새 없이 듣긴 했지만, 운전도 기술이라 연습을 하면 할수록 손에 익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긴장해서 온몸에 힘을 주고 운전을 해서 30분만 해도 피곤했었는데, 다시 일을 시작했을 즈음엔 1시간은 거뜬했다. 그렇게 그제야 ‘지갑 면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필기시험 보고 실기 시험 보고 주행 시험까지 보고 어렵게 딴 자격증이었다. 임용고시로 따지면, 1차, 2차, 3차 시험까지 보고 합격을 했는데 선생님을 하지 않는 것과 같았다. 선생님이 처음이라고 출근을 미루진 않았는데, 운전은 3년을 미뤘다.


작년에 발령동기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요즘 언제 제일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서 차로 출퇴근할 때”라고 대답했다. 3년만 미뤄서 다행이다. 평생을 미뤘다면 차 안에서 혼자 있는 행복을 모르고 갈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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