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순천, 한 달 살기 속 인연들을 인터뷰하다.
환대와 낭만의 도시, 순천
한 달 동안 바라본 풍경과 얼굴들
우물 속에서 살 땐 전혀 느끼지 못한 감각이 있다. 그것은 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산다는, 자기주도성의 감각이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엔 월요일에 출근하고 주말에 쉬는 정해진 패턴이 있었다. 정해진 패턴 속에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는지 차츰 잊어버렸다. 회사에서 내게 주어진 프로젝트를 무사히 끝내는 것만이 유일한 과제였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건 나의 생각이 아니라 회사의 생각이었다. 나는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톱니바퀴의 작은 부품처럼 굴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삶이 점점 답답해졌다. '이대로 살다간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두려움이 목을 조였다. 그래서 멈췄다. 우물 밖으로 고개를 들고, 조금은 덜 안전하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용기를 내어 우물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그곳에는 자기 방식대로 길을 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균님도 그랬다. 그는 말한다. 여행을 하며 산다는 것, 다양한 지역을 돌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 그것은 우물 속 개구리로 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입체적인 삶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확신이 생겼다. 그는 "돌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삶이 있기에 다양한 지역을 탐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1년째 이어진 그의 방랑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입체적이었고,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해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다.
퇴사를 결심하기 전, 나 역시 이런 방식의 삶이 있을 거라곤 알지 못했다. 그러나 호균님의 여정을 곁에서 듣고 나니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우물 밖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자유로우며, 무엇보다 내가 주도적으로 살아낼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순천에 터를 잡은 지 어느덧 10년이 되었다는 그의 말에 처음엔 의아함이 앞섰다.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왜 하필 '순천'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인터뷰가 조금씩 깊어지자, 그의 마음 한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순천에 대한 애정이 그를 이곳으로 불러온 힘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순천을 향해 품은 사랑은 단순한 호감이나 머무름이 아니었다. 지역 자체를 온전히 껴안는 마음, 그 마음이 지금의 그를 이글어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이다.
나는 문득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본가는 사천, 대학 시절 10년을 보낸 곳은 진주, 그리고 회사 때문에 5년을 살아낸 창원까지. 나는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정작 한 지역을 그렇게 깊이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한 지역을 마음 깊이 사랑한다는 것. 순천을 사랑하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나만의 지역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을 다른 이들에게도 기꺼이 전하며, 함게 행복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겠다는 생각이 함게 따라왔다.
퇴사 후의 나는, 그동안 우물 속에서만 지내왔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고 있다. 순천에 와서야 그 우물 밖 풍경을 조금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과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행을 삶의 방식으로 택한 호균님의 모습, 그리고 순천을 향한 사랑을 자신의 업으로 만들어낸 희주님의 모습까지. 그들을 바라보며 알게 되었다. 인생은 결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갈래와 모양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우물 속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진실. 나의 길도 이제는 그 다양한 갈래 중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를 해방처럼 가슴 깊이 전해졌다.
한때는 마케터가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랫동안 꿈은 작가였지만, 꿈은 꿈대로 두고 생계를 위한 직업은 따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돈을 벌어야 하는 일은 철저히 다른 영역이라 여겼다. 그 흑백논리 속에서 나는 스스로 가두고 있었다.
하지만 책방심다를 운영하는 주은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단단한 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늘 자신에게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며 살아왔다. 좋아하는 것을 좁게 정의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조금씩 확장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알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고 싶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의 폭을 넓히면 된다는 것을. 한 가지 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좋아하고, 조금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 되는 것이었다.
순천에 와서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배움을 얻었다. 그 과정은 나를 우물 밖으로 꺼내주었지만, 주은 대표님을 만나고 나서는 그 배움이 한 걸음 더 확장되었다. 그는 삶을 흑과 백으로 나누지 않고, 회색의 스펙트럼 속에서 새로운 빛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의 태도는 나에게도 묻는다.
"너는 얼마나 많은 것을 좋아하며, 그 좋아함 속에서 너만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겠니?"
그 물음은 내 삶의 방향을 조금 더 유연하게,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