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닭발의 기억

by 이양고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불던 어느 날로 기억한다. 방금 막 20살이 된 나는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이제 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거잖아. 휴대폰 속 시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이지만 나이로는 미성년자를 벗어났다는 것이 그리도 기뻤다. 편의점에 가서도 술이나 담배를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나이. 어른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되는 나이. 미성년자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한 걸음 들어간 나이. 꽃다운 나이, 스무 살이었다.


술을 처음 먹는 것은 아니었다. 술에 관대했던 부모님께서는 첫 술만큼은 꼭 부모님이 직접 알려주시겠노라 다짐하고 있었고 그 덕분에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부모님의 술상 근처에서 맥주 한두 잔을 얻어먹곤 했다. 그 덕에 취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딸딸한 게 무엇인지, 어느 타이밍에 술을 그만 마셔야 하는 건지도 알게 되었다. 그건 어른이 되자마자 술집에서 친구들과 먹는 술자리에서 으레 겪곤 하는 진상짓을 막아주는 경험치이기도 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내 주량을 안다고 오만한 판단을 내린 나는 외숙모가 운영하는 호프집으로 부모님과 함께 술을 마시러 갔다. 부모님은 내가 어른이 되었으니 밖에서 정당하게 술을 마셔도 된다고 허락하셨고, 이미 어른이 된 기분에 취해 있던 나는 가장 어른스러운 옷을 차려입고, 화장도 열심히 하고 호프집으로 향했다.


외숙모의 호프집은 내가 곧 졸업할 고등학교 근처에 있었다. 그 말은 즉, 나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어른이라는 기분에 취해 들이닥칠 술집이라는 말과도 같았다. 평소 같으면 한두 테이블이 고작일 가게가, 어른이라는 기분에 들떠 찾아온 갓 스무 살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개중엔 나와도 안면이 있는, 사실 꽤 친한 친구들도 몇 명 보였다. 가장 안쪽 테이블에서 부모님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던 나는, 그 친구들에게로 다가가 아는 척을 했다. 친구들은 잠깐 놀라더니 우리 테이블에 앉은 부모님을 보곤 벌떡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했다. 외숙모는 내 친구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서비스로 콜라를 하나 내어주셨다.


부모님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나눈 이야기는 진부하다. 앞으로는 뭐할 것인지,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 좀 더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이야기들은 술을 마셔도, 술을 마시지 않아도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이야기들이었다. 외숙모는 손님들이 잠깐 잠잠해진 틈을 타 우리 테이블로 오셨다. 외숙모도 술을 많이 마시면 안 된다는 흔한 잔소리를 보너스처럼 덧붙이셨다. 외숙모가 우리 테이블에 합류한 틈을 타 나는 친구들이 앉은 테이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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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많이 마셨어?"

"아니. 우린 천천히 마시고 있어. 넌?"

"나도. 부모님이랑 마시는 거라 아직 반도 안 취했어."

"그럼 술 한 잔 줄까?"


친구들은 내가 자리에 앉자 반기는 내색을 숨기지 않고 술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교실에 앉아 공부를 하던 우리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술잔을 기울이고 술잔을 부딪친다는 게 어색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 기분이 퍽 나쁘지 않았다. 친구들은 빠르게 취해갔고, 술병은 더 빠르게 쌓여갔다.


"너네 술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안주도 챙겨 먹고 있는 거지?"


내가 친구들 테이블에 앉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외숙모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럼요, 아무렇지도 않은 걸요. 똑부러지게 대답하려 했는데 외숙모의 시선이 내게 콱 박혀 떠나지 않았다. 취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어른의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양고야, 너 많이 취했는데. 부모님이랑 집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취했나? 나 취한 게 맞나? 자리에서 일어나 부모님 테이블로 향했다. 부모님 테이블에도 아버지 친구로 보이는 삼촌들이 합석해 있었다. 이 동네에 호프집이 여기뿐인 것도 아닌데 여기서 온갖 합석이 이뤄지고 있다는 게 우스웠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꾸벅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친구들의 테이블로 돌아왔다. 확실히 친구들은 점점 취해가고 있는 것인지 목소리가 한층 커져 있었다.


저녁을 먹지 않고 술부터 들이켠 터라 안주는 이미 동나고 없었다. 이미 뭐라도 이야기하는지도 잘 들리지 않은 채로 친구들과 목소리를 높여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다가 메뉴판을 가리키며 물었다.


"우리 안주 더 시키자. 뭐 더 먹을래?"

"닭발 어때, 닭발?"

"좋아!"


누군가 닭발을 입에 올렸고, 나는 닭발을 먹어본 적도 없으면서 친구의 의견에 적극 동의해서 외숙모에게 추가로 주문했다. 외숙모는 잠깐 기다리면 테이블로 가져다주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가셨고, 우리는 남은 술을 다시 한 번 빠르게 털어댔다. 입에서 온갖 음식냄새와 술 냄새가 잔뜩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빠르게 술이 사라지는 동안 몸은 빠르게 취해갔고, 어느샌가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만 마셔야 한다고 몸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제는 한계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마침 내 술잔이 비어 있는 걸 확인한 친구가 술병을 들어 권했다. 어지러워서 더 못 마시겠다고 거절하자, 나약하다며 비웃더니 자기네들끼리 술을 따라 건배를 했다. 취한 나머지 그들의 도발에 쉽게 넘어가버렸고, 나 역시 술잔을 들어 다시 따르라며 외쳤다. 취한 걸 망각한 자의 오만이었고, 오기였으며, 오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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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외숙모가 요리해 온 닭발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닭발을 먹어본 적도, 실제로 가까이에서 본 적도 없던 나는 생각보다 적나라한 생김새에 속이 울렁거렸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닭발을 보고 있자니 친구들이 닭발 먹어본 적 없냐며 놀려댔다. 외숙모는 카운터 쪽 테이블에 앉아 우리 테이블을 들여다보며 내가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멀거니 시선을 던졌다. 외숙모의 시선이 나에게 닿아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들고 닭발을 집어들었다. 무뼈 닭발이라 그냥 씹어 삼키면 된다는데 입안에서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꼭꼭 씹어 먹어야 안 체한다지만 입에서 낯선 식감이 싫다는 듯 거부 반응을 보였다. 몇 번 씹다가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는 닭발의 식감을 지워버리려는 듯 몇 번의 술을 연거푸 삼켰다.


처음엔 맥주로 시작한 음주는 나중에는 소주로 바뀌었다. 어느샌가 내 술잔에 투명한 액체가 따라지고 있었다. 나 맥주라니까! 하고 외쳐봐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술에 취해 있었고, 흥에 취해 있었으며,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에 취해 있었다. 달마저 취한 듯 비틀거리는 겨울 밤이었다. 액체를 연거푸 마셨더니 요의가 일었다. 잔뜩 비틀거리며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근처에 앉은 친구들이 괜찮냐는 듯 시선을 던졌다. 괜찮아! 잔뜩 꼬부라진 혀로 답을 하곤 천천히 걸어 화장실로 향했다. 좁은 통로가 나를 안을 것처럼 달려들었고, 낡은 나무 바닥이 나를 집어 삼킬 것처럼 불쑥불쑥 일어났다.


겨우 화장실에 들어간 나는 변기에 앉아 볼일을 보고 일어나려는데 다시 한 번 비틀거렸다. 이렇게 취하면 뭐가 더러운지 깨끗한지 분별할 수 없다. 그저 취해 있기에 본능과 같은 무의식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낡고 더러운 화장실 벽에 기대어 겨우 옷을 올리고는 변기 물을 내렸다. 화장실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너무 어지러워 변기 뚜껑을 내리고 거기에 앉아 벽에 기댔다. 잠깐만 쉬면 좀 낫겠지 하는 짧은 생각 때문이었다.


"양고야! 양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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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땐 누군가 화장실 문을 거칠게 두드리고 있었다. 친구의 목소리 같기도 했고, 부모님 목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알아차릴 새도 없이 문이 덜컹거리며 곧 열릴 것 같았다. 화장실을 너무 오래 썼나. 누군가 화장실에 오고 싶은 건가. 나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일으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문 앞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한 친구들과 부모님, 외숙모가 괜찮냐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술에 취해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왜 이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알고 보니 10분이 넘도록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오래된 호프집 화장실은 찬바람이 불어 오래 있다간 입이 돌아갈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친구들은 한참 동안 내가 테이블로 돌아오지 않자 걱정스러워 부모님과 외숙모에게 그 사실을 알린 것이었다.


더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외숙모의 당부와 함께 집으로 가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엔 우리 부모님과 나, 그리고 같은 방향에 사는 친구도 한 명 타있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취한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 채 택시 벽에 기대어 얼른 집에 가서 눕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덜컹거리는 택시가 울렁거리는 속을 자극했고, 금방이라도 먹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오를 것 같았다. 내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자 친구가 놀란 듯 안 돼! 하고 소리쳤고, 택시는 길가에 세워졌다.


"얼마나 마신 거야."


길가에 서서 먹은 것을 올리고 있으니 엄마가 타박하며 등을 두드렸다. 억지로 삼켰던 닭발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게워졌고, 술인지 뭔지 모를 액체들이 길가로 한바탕 쏟아졌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키자 익숙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방이었다. 함께 방을 쓰는 동생은 이미 일어난 것인지 옆자리가 비어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엉금엉금 기어 거실로 나가자 매콤한 콩나물국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얼큰한 콩나물이 간절했다.


"언니, 어젯밤 일은 기억 나?"


동생이 진저리가 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거실 구석에 앉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던 내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보자 됐다며 차라리 자리를 떴다. 그제서야 전날 밤 택시에서 한 번 더 토를 했던 것과 친구가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술이 깨고 나서야 잃어버린 수치가 돌아온 듯 한 번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택시 기사가 아빠 친구였는데, 아빠가 부끄러워 죽는 줄 알았다."


주방에서 딸의 해장을 준비하던 아빠도 밖으로 나와 딸의 수치를 한 번 더 거들었다. 입에서 어제 아무렇게나 넘겼던 소주와 맥주, 그리고 미처 씹지도 못했던 닭발의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만 말하라며 입을 막곤 화장실로 달려갔다. 미처 쏟아지지 못했던 어젯밤의 기억이 고스란히 입 밖으로 쏟아졌다. 숙취와 수치가 얽히고 설켜 보기 추한 첫 숙취의 기억이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