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해물파전

by 이양고


경상도에 태어난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를 아버지로 두고 있었다. 말수가 없었고 무뚝뚝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도, 듣지도 않은 채로 자랐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 했던가. 나는 아빠의 많은 부분들을 닮았다. 그 중에서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빠에게 물려 받은 것 중에서도 귀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물론, 아빠를 닮지 않은 부분도 있다. 그건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부분이다.


아빠는 회사를 다니느라 평일엔 내내 바빴다. 그 회사 일은 너네 아부지가 다 하는 모양이다, 하며 푸념 섞인 엄마의 이야기를 들은 게 여러 번일 정도로 야근도 잦은 회사였다. 가끔 회사에서 터지는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이른 새벽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마저도 집에서는 샤워만 하고 다시 출근 시간에 나가야 할 정도로 회사일에 책임감을 가진 채로 회사를 다니셨다.


그런 아빠는 주말만 되면 기절하듯이 잠에 들었다. 혹여 아빠가 잠에서 깰까봐 큰 방에 있는 TV 볼륨 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보거나 그마저도 아빠가 뒤척거리면 그냥 끄고 밖으로 나와 작은 방으로 가기 일쑤였다. 주말엔 아빠가 편하게 쉬는 유일한 날이었으므로 그런 날마저 아빠를 괴롭히곤 싶지 않았다.


엄마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었다. 평일에 회사를 다니느라 집안일을 모른 척 했으니 주말이라도 신경을 써달라는 볼멘소리를 했다. 차를 끌고 시내로 나가 한바탕 장도 봐야 하고, 대문 위에 달려있는 전등도 갈아야 했다. 아빠의 손길이 닿아야만 하는 집안일들은 아빠가 한가해지기를 기다린 듯이 주말마다 새롭게 쏟아졌다. 아빠는 늦은 오후가 되도록 잠에 들고 싶은 기색을 내비쳤지만 엄마는 그 기색을 모른 척 시치미를 뗐고 결국 일어난 아빠는 주말 마다 장을 보러 가곤 했다.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요리를 좋아했다. 엄마와 아빠의 요리는 좀 달랐다. 엄마는 정석에 가까운 방법으로 요리를 했다. 대체로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었다. 아빠의 요리는 어딘가 모르게 도전적인 구석이 있었다. 핫케이크에 김치를 넣어 굽고, 잡탕찌개라며 언제부터 들어있었는지 모를 냉동실 속 생선을 잔뜩 넣어 끓여댔다. 아빠의 요리는 자극적이었고 도전적이었으며 어딘가 모르게 신기한 음식들이었다. 어쩔 땐 먹기 꺼려질 정도로 이상한 외관을 하고 있었지만 대개 맛있었고, 그건 성장기 여학생을 살 찌우는 비장무기가 되기도 했다.




아빠는 비가 오는 주말이면 해물 파전을 굽는 것을 좋아하셨다. 아빠가 만든 요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했다. 차를 끌고 시내로 나가 홍합이며 오징어 같은 해물을 구매하고, 부침가루와 밀가루, 부추와 쪽파를 사와서 다듬고, 후라이판 가득 기름을 두른 뒤 지글지글 구워서 만들었다. 아빠가 만든 파전은 엄마가 만든 파전과는 달라서 좀 더 두겁고 기름졌는데, 기름을 많이 두른 탓에 전을 굽고도 한참 동안 집에서 기름 냄새가 풍겼다. 비가 오면 밖에 나가서 할 것도 없는 시골 촌에 살았던 나는 아빠가 구워준 해물파전을 친구 삼아 먹으며 TV에서 해주는 영화를 보곤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출출해진 우리 가족은 아빠가 맛있게 구워온 해물파전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마주보고 앉아 맛있게 해물파전을 먹었다. 밖에서는 빗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집에서는 고소한 기름냄새가 풍기는 것이 퍽 정답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비오는 날이면 해물파전이 떠오른다. 독립을 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산지 10년도 더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아빠가 해준 요리를 좋아한다. 해물파전, 계란말이, 오리훈제, 김치볶음밥, 김치말이국수. 오늘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김치말이국수를 해달라고 졸라야겠다.

화요일 연재
이전 01화첫 닭발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