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고서는 발길이 뜸해져버린 친척집이지만, 어렸을 땐 아빠 손을 잡고 명절마다 큰아버지 댁에 다녀오곤 했다. 엄마는 멀미가 심해 함께하지 못했고, 어린 막내 동생과 집에 남았다.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동생은 내 손을 잡고 시외버스에서 내린 우리 셋은 큰아버지 댁 앞에 있는 작은 시장에 들러 선물을 샀다. 대개 병에 든 홍삼 음료나 정종 같은 술 종류였다.
큰아버지댁에 있는 건 모든 게 커다래보였다. 아마도 내가 작은 탓이었을 것이다. 소파도 컸고, TV도 컸으며, 해가 잘 들어오는 베란다도 크고 널찍했다. 베란다에는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여러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부지런한 큰어머니의 손길을 바다 반질반질거리고 어여뻤다.
큰아버지 댁에 가서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소파 한 켠에 앉아 TV를 보고 있노라면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 어른들이 들이닥쳤다. 아빠는 내게 손을 잡고 돌아다니며 어른 누구누구이자 우리와는 이런 관계다, 하고 설명을 하셨지만 너무 많아 기억하기도 어려웠다. 친가 쪽엔 이상하게 딸이 없었다. 큰아버지들은 모두 아들을 낳았다. 친가 쪽에서 결혼이 유독 늦은 막둥이인 아버지가 유일하게 딸을 낳았는데, 그게 나라서 어렸을 때부터 친척들이 나를 예뻐했다고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도 멋쩍어서 고개를 숙였다. 깨끗하게 닦인 바닥이 유독 반질반질거렸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우리는 작은 방에 하룻밤 묵고 가기로 했다. 내일은 근처에 있는 둘째 큰아버지 댁에 갈 예정이라 일찍 일어나야 했기 때문에 방에 들어가 좀 쉬고 있으라고 했다. 저녁상이 차려지면 부르겠다는 말과 함께였다. 오히려 좋았다. 거실은 너무 컸고, 이름조차 모르는 어른들이 너무 많아 겁이 났다. 말을 걸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도 감이 오질 않았다. 어떤 어른들은 엄마는 왜 안 왔냐며 물었고, 멀미가 심해서 오래 버스를 못 탄다고 대답을 하면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게 마치 나를 혼내는 말과도 같아서 더 주눅이 든 참이었다.
방에 들어온 나와 동생은 한껏 눈치보던 것에서 벗어나 각자 벽에 기대어 쉴 수 있었다. 나는 휴대폰에 웹소설을 다운 받아 온 참이었고, 동생은 가방에 챙겨온 만화책을 보고 있던 참이었다. 방은 따뜻했고, 거실에서 벗어나자 긴장이 풀린 듯 노곤노곤해졌다. 우리는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에 편하게 누웠다. 잠깐 누워있겠다던 것이 그만 까무룩 잠에 들어버렸다.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땐 큰어머니께서 저녁을 먹으라고 부르던 참이었다. 나가기 싫은데. 어른들 보기 싫은데. 쭈뼛거리며 나가자 와글와글 모여있던 어른들이 어느새 떠나고 몇 명만 남아 있는 참이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우리가 눈치 보며 바닥에 앉자 작은 상에 비빔밥과 탕국, 생선구이와 동그랑땡을 차려주셨다. 아빠는 큰아버지들이랑 이미 식탁에 앉아 술상을 벌이고 있는 참이었다. 엄마가 술 많이 먹지 말랬는데.
나는 즐거운 듯 큰아버지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아버지의 등을 보며 생각했다. 평소 같으면 당돌하게 가서 아빠 술 좀 고만 먹어, 하고 말했을 나지만 친척 어른들이 많은 낯선 이 공간에서는 도무지 당돌할 수가 없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점수를 매기는 것 같았고, 혹 무례하게 굴었다간 아빠보다 훨씬 무서워보이는 큰아버지가 경을 칠 것 같았다. 나는 잠자코 동생과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큰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은 100점 만점에 150점이었다. 나물들은 하나같이 간이 맞아 입맛을 돋구었고, 탕국엔 두부가 많이 들어가있어 부드럽고 담백했다. 생선구이는 살이 오동통해 먹을 것이 많았으며, 동그랑땡은 도톰하고 짭쪼름했다. 말그대로 완벽했다.
나처럼 눈치를 보던 동생도 밥이 맛있는지 눈치를 보던 것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밥상에 집중했다.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은 좀 더 건강하고 담백한 맛이라면, 명절에 먹는 큰어머니의 밥상은 조금 더 기름지고, 짜고, 자극적인 맛이었다. 매번 비슷한 반찬을 먹던 시골 아이들에게 도시 밥상은 신세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맛있어? 천천히 먹어라. 더 줄 테니."
밥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먹고 있자니 큰어머니께서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열심히 먹고 있었나 싶어 부끄러운 마음이 왈칵 쏟아졌다. 입안 가득 음식을 넣어 오물오물 먹고 있는 동생을 괜히 툭툭 쳤다. 천천히 먹으라는 뜻이었다. 동생은 그런 내 마음도 알지 못하는 듯이 그저 맛있게 먹으며 웃었다. 그런 동생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더는 눈치 보지 말자 싶어 입안 가득 넣고 음식을 씹었다.
"천천히 무라, 누가 보면 굶기는 줄 알겠다."
한입 가득 비빔밥을 입에 넣고 있으니 이미 거나하게 취한 아빠가 놀리듯이 말을 걸어왔다. 큰어머니는 우리의 밥그릇이 비기 무섭게 나물과 밥을 더 주셨다.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애써 챙겨주신 것을 남길 수가 없어 우리는 두번째 그릇까지 싹싹 비우고서야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밥을 먹었으면 나가서 좀 걷는 게 인지상정인데, 당시 초등학생이던 우리는 어른들 허락 없이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명절이라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위험하기도 하고, 시골 애들이 도시에서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며 거절당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부른 배를 통통 두드리며 뜨끈한 바닥에 누워 다시 뒹굴거렸다. 엄마가 봤다면 소가 된다며 혼냈을만한 일상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전날 배가 부르게 먹었던 기억이 휘발된 듯 배가 고팠다. 방 밖으로 나와 서성거리고 있으니 큰어머니가 약과를 손에 쥐어주셨다. 아빠는 아침부터 술을 먹고 있었다. 말릴 엄마가 없으니 마치 폭주기관차 같았다. 나는 그런 아빠 옆에 앉아 약과를 나눠 먹으며 시덥잖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밥에 나물을 넣고 고소한 참기름을 두른 다음, 계란 후라이까지 구워 비비고 있는 것이었다.
동생과 나는 고소한 냄새가 나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를 보았다. 군침이 삼켜졌다. 설날처럼 맛있는 걸 잔뜩 먹을 수 있는 날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