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적당한 몸매를 유지했다. 한번 앉으면 몇 시간씩 움직이지 않고 글을 쓰거나 보는 취미를 가진 터라 움직임이 많지 않았고, 그건 살이 딱 찌기 좋은 습관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게 간식거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삼시세끼 챙겨 먹는 것이 고작이었고, 그마저도 시골 촌구석 집에서는 돌아서면 배고픈 나물 반찬들 뿐이었다.
부쩍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된 건 고등학생 무렵이었다. 중학생 때만 해도 살을 빼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는 조금 더 인원이 많은 고등학교에 가자 나보다 훨씬 날씬한 친구들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먹었다. 그들은 날씬하고, 부지런했으며, 거기에 더 나아가 다이어트 한답시고 밥을 굶곤 했다. 그들의 모습에 충격을 먹은 나 역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돌아서면 배고픈 나이에 하는 다이어트는 독약과도 같아서, 점심을 아무리 적게 먹어도 하교 후 집에 가면 배가 고파져 두 그릇씩 먹는 일들이 늘어났다. 결과적으로 살은 조금도 빠지지 않고 외려 입맛만 돋구는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이러다간 살을 못 빼겠는데?"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결단이 필요하다고. 때마침 야근 자율 학습이 시작되었고, 시골의 학교엔 매점이 없으니 음식의 유혹이 덜했다. 저녁거리로 감자나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을 싸다니기 시작했고, 먹는 것을 조금씩 줄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살이 조금씩 빠졌다. 눈에 띄게 빠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딱 맞던 치마가 헐렁해져 좌우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앉아 있으면 유독 불편하던 교복 마이가 움직임에도 불편하지 않을 정도가 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빠의 야식 유혹이 시작된 것은.
"배 안 고프나?"
야자까지 마치고 와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작은 방의 문을 연 아빠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물었다. 잠깐 열린 방문 사이로 바깥에서 은은하게 풍기던 음식 냄새를 끌고 들어왔다. 자극적이고 매력적인 김치비빔국수였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면요리였다.
"나 다이어트 하잖아, 아빠."
아빠는 내 말에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무슨 다이어트냐며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아빠 때문에 살이 찌는 거야. 내 친구들은 다 날씬해. 중얼거리자 아빠는 못내 속상하다는 듯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닫힌 방문으로 인해 방에 들어온 음식 냄새는 빠질 생각을 않았고, 나는 동생과 마주보며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 아빠의 공격은 더 이어질 거라는 계산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다시금 방문을 두드렸다.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 방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아빠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었다. 저녁까지 먹은 아빠는 22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만 되면 라면을 끓이거나 국수를 끓여 딸들을 유혹했는데, 억울한 건 워낙 살이 안 찌는 아빠는 아무리 먹어도 날씬한데 성장기 딸들만 먹는 고대로 살이 찐다는 사실이었다.
"언니, 난 조금만 먹고 올게."
배신자. 동생이 방을 떠나 거실로 가서 아빠랑 도란도란 나눠먹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는 밤 늦은 시간에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고 일찌감치 손절하고 떠난 뒤였다. 방에 앉은 나는 고민했다. 지금 이 시간에 먹으면 100% 찔 것을 확신했으나, 방 밖에서 들리는 후루룩 거리는 소리가 미치게 거슬렸다. 재밌게 읽고 있던 책도 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귀는 국수 앞에 가서 앉아 있었고, 입맛은 그 국수를 맛있게 먹는 중이기라도 한 것처럼 침이 흘러나왔다.
"아빠, 나도 먹을래."
방문을 열고 나가자 동생과 마주앉은 아빠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내가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승리의 미소였다. 나는 동생 옆에 앉아 젓가락을 받아들곤 김치비빔국수를 먹었다. 아빠가 만든 김치비빔국수는 소면을 삶아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한 다음, 참기름으로 볶은 김치를 후라이를 얹어 비벼 먹는 스타일이었디. 그건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내게 훨씬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조금만 먹겠다고 다짐한 나는 다짐이 무색하게 3인분을 준비한 아빠와 속도를 맞추어 먹다가 그릇에 끝을 보고서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후회는 포만감을 불렀고, 포만감은 절망을 끌고 왔다.
"아빠 때문에 내가 살을 못 빼, 진짜."
"그래서, 맛 없었나?"
"너무 맛있으니까 내가 살이 찌잖아."
아빠를 밉지 않게 눈으로 흘기고는 벌떡 일어나 마당으로 나갔다. 잠들기 전까지 줄넘기라도 해서 소화를 시켜보려는 심산이었다. 동생도 너무 많이 먹었다며 올챙이처럼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와서 옆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했다. 입안에는 볶은김치의 짭쪼름함과 고소함, 매콤함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