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이다!'
큰 방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고 또 봤다. 삐뚤빼뚤하게 동그라미 쳐둔 날짜가 애가 타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도대체 언제 소풍날이 다가오는 거야. 애꿎은 달력을 노려보기를 여러 번.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소풍만 되면 엄마는 큰 마트에 가서 김밥을 준비했다. 딸이 소풍을 가는 것을 핑계로 재료를 넉넉하게 사 최소 20줄에서 25줄은 김밥을 말았다. 다섯식구가 있어 넉넉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중간에 애매하게 끊기기 때문이었는데, 25줄을 말아도 성장기 두 딸과 김밥을 유독 좋아하는 어린 아들이 먹으면 두 끼만에 모두 해치울 따름이었다.
부모님은 마트로 가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을 샀다. 우엉, 오뎅, 계란 한 판, 김밥용 김, 맛살, 단무지까지. 특별한 메뉴가 들어가는 건 아니었지만 엄마의 김밥은 밖에서 사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고, 배가 불러도 한 줄은 더 먹을 수 있는 특별한 힘을 가진 음식이었다.
소풍 전날엔 부모님이 모두 바빠진다. 25줄이나 싸려면 아빠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아빠는 퇴근하자마자 부엌으로 가 엄마를 도왔다. 엄마가 간장에 오뎅을 볶고 있으면 아빠는 옆에서 계란 지단을 부쳤다. 집이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찼다. 어린 우리는 저녁 시간이 늦어지는 것도 모른 채 옆에서 김밥이 한 줄씩 말아지는 것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일을 도와준답시고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맛살이나 볶은 오뎅을 얻어먹곤 했다.
아빠는 요리를 잘하지만 정석으로 요리를 하는 엄마한텐 한참 못 미쳤다. 특히, 엄마가 만드는 김밥은 정갈해서 잘 터지지도 않고 모양도 예뻤다. 어린 자식들이 먹기에도 크지 않아 함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였다. 아빠가 옆에서 돕겠다며 김밥을 말았다가 잘 썰리지도 않고 옆구리가 터져버린 뒤로는 김밥을 마는 건 늘 엄마 차지가 됐다.
"엄마, 하나 먹어봐도 돼?"
옆에서 김밥을 마는 엄마 옆에 붙어 있던 둘째가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둘째의 말에 한 줄을 척척 썰어 접시에 올렸다. 김밥을 마느라 늦어지는 저녁에 굶주려 있던 삼남매는 접시에 올라가기 무섭게 김밥을 해치웠다. 방금 말아서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을 감쌌다.
"꽁다리가 제일 맛있는 거야. 이건 언니 먹어."
두 동생은 나보다 어렸기에 내용물이 다 빠져나온 큰 꽁다리는 내 몫이 됐다. 빠져나온 내용물은 주로 볶은 오뎅이나 단무지 같은 것이었지만 입안 가득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마음에 쏙 들었다. 아싸! 하고 외치며 꽁다리 김밥을 먹고 있으니 어린 두 동생이 부럽다는 듯 나를 올려다 봤다.
이윽고 김밥을 다 싸자 아빠는 부엌에서 계란국을 끓였다. 우리 집에선 아주 예전부터 김밥의 짝꿍으로 계란국을 끓였다. 계란을 듬뿍 넣어 몽글몽글하고 담백한 계란국은 우리가 모두 좋아하는 국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뜨끈한 계란국과 김밥을 먹고 있으니 술술 들어갔다. 25줄이나 쌌는데 내 도시락으로 싸고 저녁으로 먹고 보니 남은 것은 고작 8줄이었다. 엄마는 재료를 좀 더 살 걸 그랬나? 하고 고개를 갸웃했지만 김밥은 너무 많이 싸두면 금방 말라서 오래 보관할 수가 없다. 아빠는 내일까지 먹으면 딱 될 양이었다고 엄마를 달랬다.
다음 날, 소풍이 되었다. 가방 속에서 내내 덜그럭 거리던 도시락통을 꺼냈다. 엄마가 예쁘게 올려준 김밥이 무너지지 않고 고대로 모습을 드러냈다. 아빠의 센스로 깨소금도 몇 개 올라가 있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젓가락을 꺼내어 한 개씩 집어먹었다. 어젯밤보다는 약간 식어있고 약간 굳었지만 그마저도 맛있었다.
한 개씩 아껴먹다 보니 김밥이 동이 났다. 배는 불렀지만 두 어개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집에 가면 남은 김밥이 있을 테니 아쉬워 하지 않기로 했다. 소풍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엄마!"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를 불렀다. 어제와 이어지는 김밥 파티 두 번째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