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두 번 다시는 마라탕 안 먹어"

by 이양고

"누나 믿고 마라탕 먹어보자니까?"

"마라탕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진짜 맛있어?"


나는 막내 동생과 마주보고 앉아 배달 어플을 뒤져보고 있었다. 요즘 부쩍 마라탕 먹방이 알고리즘을 장악한 듯, 휴대폰에 계속 뜨고 있었다. 워낙 한식을 좋아하는 나는 중국 음식인 마라탕을 내 손으로 사 먹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처럼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 대학교를 다닐 때 동기들이 본인을 믿고 딱 한 번만 먹어보라며 설득해 먹어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막내 동생은 탐탁지 않은 듯했지만 누나를 믿어보겠다는 뜻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답을 했고 나는 집 근처 마라탕집 중에 후기가 가장 좋은 곳으로 주문했다. 동생이나 나나 매운 건 나름 잘 먹으니까 매운 단계는 2단계 정도로 선택했고, 땅콩 소스는 안 어울릴 것 같아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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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이게 뭐야. 혀가 얼얼한데? 누나 이거 맞아?"

"이상하다? 몇 년 전에 먹었던 건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나 두 번 다시는 마라탕 안 먹을래."


얼마 지나지 않아 집으로 도착한 따뜻한 마라탕은 생각보다 더 기름기가 많아 느끼했고, 고기를 건져 먹어도, 팽이버섯을 건져먹어도 입 안이 얼얼했다. 매운맛과는 좀 다른 결이었다. 혓바닥에 이상한 기름칠이 된 듯 번들거리면서도 혀가 얼얼한 기분. 한국식 매운맛과는 확실히 달랐다.


열심히 먹어보았으나 마라탕 입문자인 동생은 금방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고기만 먹으라는 간절한 외침에 고기만 겨우 건져먹고 는 식탁에서 자리를 떴다. 나는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 더 먹어보겠다고 젓가락질을 해봤으나 입 안에 쌓이는 데미지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없어 결국 젓가락질을 내려놓았다. 두 번째 마라탕의 기억이었고, 내가 처음 주문해 장렬히 실패한 기억이었다.


"양고님, 마라탕 먹으러 가실래요?"

"저 마라탕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진짜요? 그럼 저희랑 같이 가요. 회사 근처에 진짜 맛있는 곳 있어요."


그로부터 또 몇 년이 지났다. 집에서 시켜먹은, 그것도 맛있다는 후기가 줄을 이루는 마라탕을 시켜 먹고 된통 당한 나는 그 이후로 마라탕의 '마'자도 믿지 않았다. 마라탕만 떠올리면 혀를 괴롭히던 감각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마라탕을 먹어본 기억이 있지만 반 이상이나 남겼으니 먹어 본 적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마라탕 러버 후배는 근처 맛집을 안다며 나를 이끌었다. 마라탕 집으로 향한 인원은 총 네 명. 한 명은 마라탕 러버였고, 또 한 명은 마라탕 러버로 인해 마라탕에 빠지게 되었으며 또 한 명은 중국에서 몇 년 동안 살아 중국 음식에 거리낌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마라탕 입문자는 나뿐이었다는 소리다.


"몇 년 전에 먹어본 기억이 있는데 입이 너무 얼얼하더라구요. 그 이후로 못 먹었어요."


내 말에 후배들은 자기네들끼리 문제와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판단을 하더니 마라탕 집에 도착해서는 결론을 내렸다. 얼얼함을 빼거나 제일 약하게 하고, 그마저도 너무 얼얼하면 땅콩 소스를 받아 섞으라는 조언이었다. 떠올려 보니 몇 년 전 집에서 시켜먹었던 마라탕엔 내 선택으로 땅콩 소스를 뺐던 게 떠올랐다.


처음 방문한 마라탕 집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한 쪽 벽면에 마음대로 집을 수 있게끔 마라탕 재료가 손질 돼 있었다. 후배들은 이미 여러 번 방문해서 익숙하다는 듯 마라탕 재료를 하나씩 집어들었다. 나는 눈치를 보다가 그들 뒤에 서서 그들이 하는 모습을 따라했다.


마라탕에서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누가 뭐라해도 식감이 일품인 버섯 종류이다. 팽이버섯이나 목이버섯은 마라탕에서 빠지면 안 되는 재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걸, 그날 처음 알았다. 워낙 기름진 걸 소화 시키지 못하는 나는 담백한 야채 위주로 마라탕 그릇에 담았고, 담는다고 담는데도 9,000원이 고작 결제되었다. 팀원들은 저마다의 입맛을 살려 담았고, 나보다 2-3000원은 더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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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먹을만 해요?"


1단계의 마라탕은 먹을만 했다. 한국인 입맛을 저격한 마라탕집이라고 하던 설명이 과연 옳은 말인 듯 했다. 입이 얼얼하지도 않았고, 국물은 고소한 사골 국물의 베이스인 듯 거슬리지 않아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마라탕 국물을 머금은 팽이버섯과 목이버섯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입안에서 완벽한 밸런스를 선사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9,000원치의 마라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듯이 웃자 팀원들이 다행이라며 함께 웃었다.


며칠 후, 맛있게 먹은 마라탕 맛을 잊지 못해 몇 년 전 마라탕에 된통 당한 막내 동생을 데리고 회사 근처 마라탕 집을 방문했다. 이미 마라맛에 눈을 뜬 둘째 동생도 함께였다. 막내는 몇 년 전 먹은 마라탕 맛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는 듯 의심쩍은 시선을 보냈지만, 나를 믿고 먹어보라는 설득에 이것저것 재료를 담았다. 고기까지 포함하자 15,000원이나 나왔다.


"오. 맛있다!"


막내는 끝내 매운맛을 믿지 못해 백탕인 0단계를 시켰다. 마라맛이 아예 빠진 마라탕은 마라탕이라고 부를 수 없었지만 , 구수한 사골 베이스 국물이 나쁘지 않은 듯 엄지척을 내밀며 맛있게 먹었다. 매운맛 1단계인 내 마라탕을 먹어보고는, 다음에는 1단계에 도전해봐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역시 음식은 잘하는 사람을 따라가야 하나봐."


마라탕을 잔뜩 먹어 부른 배를 퉁퉁 두드리며 나오며 생각했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 맛있는 걸 못 느꼈다면 , 그 다음엔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추천하는 맛집에 방문해봐야겠다고.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