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덟번째 筆寫

한영옥

by 이양고


저기, 두 사람


내게 네가 없을

네게 내가 없을

박꽃처럼 창백할 세월의

깊은 우물을 미리 내려다 보며

두레박 내리고 올릴 기운

세수하고 밥은 먹어야 할 기운

조금씩 미리 마련해두자고

네게 눈짓하면서

내게 다짐하면서

남은 햇살을 서로 끼얹어주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알록 알록 늦가을 무늬 바르면서

나무들 품에 들어왔다 나왔다 하면서.



아니었지만,


특별한 이유 없이 서로에게 좋은 마음결 두고

사심 없는 눈길 나누면서 마주치던 사이였다

어느 날 차나 한잔 나누자면서 걸어가던 때

그에게 머리를 푹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외로움이 과하게 부푼 탓이었다

그러나 빠르게 허공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 순간의 절제를 오래 쓰다듬어주고 했었다

그냥 그만한 정도의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안 보아도 괜찮고 보면 많이 반갑고 그랬다

오랜 일터에서 돌아온 후 연락이 점차 끊겼는데

그가 육신을 벗고 허공에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대한 예의처럼 진한 눈물 두줄이 내렸다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아무 사이도 아니어서

맑은 눈물 두 줄이 천천히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