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는 건

때로는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으니까

by 이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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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 안나 카레니나 중에서



"우리 가족도 스테이크를 썰어봐야지."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가장 좋았던 건 아버지 생신과 둘째 동생의 생일이 있는 6월이었다. 다섯 식구 중 2명의 생일이 모여 있는 6월은 꼭 맛있는 걸 먹으러 갔다. 어느 날에는 동네 고깃집을 갔고, 또 어느 날에는 중국집을 가기도 했으며, 또 어느 날에는 마음먹고 도시에 있는 "아웃백"을 가기도 했다.


아버지의 그 말에 스테이크를 처음 먹으러 갔을 때의 그 신선함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낯섦이었다. 시골 촌놈이라 고기는 돼지갈비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역시나 스테이크가 그다지 입에 맞지 않았다. 고기의 굽기를 선택하는 것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서버가 해주는 말을 듣고 '미디움'으로 골랐으나 서툰 칼질 끝에 흘러나온 핏물은 내 입맛을 뚝 떨어뜨렸다.


중학생이었던 나를 포함하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어린 동생들 모두 스테이크는 처음이라 핏물이 떨어지는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동생들은 빵이나 깨작거리다가 수저를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큰맘 먹고 온 레스토랑에서 계속 돈을 쓰고 싶은 듯 이것저것 주문해주셨지만 우리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이라고는 달짝지근한 파스타밖에 없었다.


엄마가 싸준 김밥과 엄마가 만들어준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가 가장 맛있었던 촌놈의 입맛에는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왜 이렇게 비싼지 이해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좋은 추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그날의 우리 가족이 몹시도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날이 특별했던 이유


서버는 친절했고, 분위기는 따스했으며, 자주 싸우는 부모님도 그날따라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게 참 행복했다. 나는 용돈을 모아 아버지의 선물을 사드렸고, 동생들도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모아 자그마한 선물을 사온 터였다. 아버지는 그런 우리를 보며 웃었고, 잘 웃지 않는 경상도 남자인 아버지가 우리를 보며 웃는 것이 그렇게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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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불행한 일은 아니지만 불편한 것은 확실하다. 오래도록 가난하게 살아온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돈이 있다면 서로가 불편해지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는 꼭 결제해야 하는 밥값 앞에서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호주머니에 넣어둔 돈이 딱 내일 끼니 값인데 오늘 누군가를 만나 내일 밥값을 끌어와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사실 인맥이니 지인이니 친구니 그런 걸 따질 새도 없이 내 허기짐부터 걱정해야 하는 단계가 된다.





숨기려 해도 드러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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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숨기려고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라, 아주 많은 순간들을 가난을 숨기기 위해 살았다. 예컨대, 내 기준에서 비싼 밥값을 낼 때 놀라지 않는 것이나 내가 처음 들어본 고급 브랜드의 제품이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비쌀 때 놀라지 않는 것, 처음 가본 뷔페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잔뜩 당황한 얼굴로 사람들을 빠르게 살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려 해도 가난이 드러나는 순간들이 있다. "경험에는 돈을 아끼지 말아야지" 하면서 해외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볼 때 마음껏 축하해주지 못하고 속으로 내심 부러워하며 시기할 때.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밥을 사기 싫어서 더치페이하자고 딱 잘라 말할 때. 사은품으로 주는 물티슈가 받고 싶어서 더운 땡볕에서 진행하는 설문조사에 참가할 때... 그리고 부모님에게 비싼 선물을 해본 적 없고, 받아본 적도 없을 때.




그래도, 남은 것들


지금도 가끔 그 6월의 아웃백을 떠올린다. 스테이크는 여전히 그렇게 맛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날 우리 가족의 얼굴만큼은 정말 맛있어 보였다는 걸 기억한다. 아버지의 어색한 웃음도, 어머니의 조심스러운 칭찬도, 동생들의 신기해하는 눈빛도.


가난은 여전히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비싼 선물 대신 정성을, 화려한 경험 대신 소소한 일상을, 많은 것 대신 진심을 나누는 법을 말이다.


어쩌면 가난하다는 건, 가진 게 없어서 더 간절하게 서로를 바라보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날의 아웃백이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날 아버지의 웃음과 가족이 함께한 시간,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만큼은 세상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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