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부지런히 1분에 1분이 흐르고, 1초에 1초가 흐른다
"언니, 너무 멋져요. 언니가 부러워요."
20대 초반, 한 액세서리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을 벌어야만 했던 나날이었다. 휴학까지 하며 근무 시간이 긴 만큼 돈을 많이 주는 어떤 일이라도 해야만 했다. 식당 일은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렇게 그곳에서 일을 하게 됐다.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언니들은 20대 후반이었다. 누구는 여행사에 취직을 하게 되어 일을 그만둔다 하고, 또 누구는 이사를 해야 해서 그만둔다고 했다. 손에 쥔 것이라고는 그저 젊음밖에 없던 나는, 그 젊음이 얼마나 찬란히 빛나는지도 모른 채 어떤 방향으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걸어가는 그 언니들이 참으로 부러웠다.
한 달간의 인수인계 시간이 있었다. 언니들은 오래 일한 만큼 내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자 했고, 한 달 안에 모든 것을 받아야만 했던 나는 잘해보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같은 실수 앞에 기가 죽었고, 언니들은 괜찮다며 다독거렸지만 일을 배우는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언니들의 퇴사일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 날, 언니들은 맥주를 사주겠다며 나를 불렀다. 맥주 두 잔을 먹어 알딸딸해진 나는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했다. 표현에 서툴고 어리숙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이자 최고의 칭찬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언니는 깔깔 웃더니 대답했다.
"나는 네가 부러운데? 뭐든 다 할 수 있는 나이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후반도 충분히 젊고 어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였겠지만, 이제 막 새로운 사회에 발을 내민 그 언니에게 20대 초반의 나는 그야말로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였겠지. 나는 언니에게 인스타 아이디를 물었고, 언니는 종종 연락하자며 아이디를 알려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 언니를 좋아한다.
그 언니는 떠날 사람이었고, 나는 남을 사람이었다. 그게 나로서는 부담이었다. 언니는 "이건 이렇게 하면 빨리 끝나", "이건 이렇게 해야 돼" 하면서 많은 걸 알려주었지만 나는 언니만큼 일을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언니는 예쁘고 성격도 좋고 심지어 좋은 향수도 쓰고 잘 웃는데, 나는 어딘가 모르게 기가 죽어 보이고, 좋은 향수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으니까.
언니랑 좀 더 일했으면 좋겠다는 내 진심 어린 붙잡음에도 언니는 퇴사를 했고, 그 큰 매장에서 나 혼자 매니저님과 일하게 됐다. 매니저님은 친절하셨지만 언니와는 달리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고, 언니는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들을 해냈을까? 생각하며 일에 익숙해지려고 무던히 노력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 이젠 내가 떠날 차례가 됐다. 4년을 몸담은 회사를 떠나는 일. 남을 사람들에게 일을 알려주는 일. 그건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퇴사는 나의 선택이었지만, 다시 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4년이나 일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것이다. 그건 곧, 불확실성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그때의 언니보다 나이를 더 많이 먹은 지금에서야 새로운 도전 앞에서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아 보이던, 어쩔 땐 불안해 보이기도 하던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설렘과 두려움이 적절히 섞인 표정이었을 것이다.
퇴사를 앞둔 시점이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4년을 다니며 내가 이 회사에 얼마나 익숙해졌는지를 돌아보고, 같이 일해왔던 사람들이 얼마나 나를 받아들이고 이해해주었는지 새삼 떠올려봤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해내던 일들을 처음 배울 땐 얼마나 마음 졸여했었는지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워 힘들어하던 때가 있었는데, 이젠 내 아래에 7명의 후배가 있다. 한 회사에서 4년을 일했다는 건, 무작정 버텨온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떳떳하게 가르칠 수 있는 경험을 쌓아온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지금도 부지런히, 1초에 1초가 흐른다. 시간은 절대 잡아둘 수가 없어서 그렇게 부지런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 지내다 보면 누군가는 또 떠날 사람이 되고, 또 다른 누구는 남을 사람이 된다. 인간의 숙명이다.
지금 떠나는 나는 언젠가는 다시 남을 사람이 되리란 걸 안다.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떠날 사람이 되리란 것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도 안다.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 액세서리 매장에서 만났던 언니처럼, 누군가에게는 내가 부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는 그때의 언니가 여전히 그립고 부러운 존재로 남아있다.
떠나고 남는 것, 그것이 삶이라면 적어도 서로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