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이 되는 일

매순간 조금씩 노력해야만 닿을 수 있는 일

by 이양고

'늙고 좋은 놈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젊었을 때만 좋았다
십일월이 그걸 알려줬다'


— 허연, '십일월' 중에서




어제 친구와 밥을 먹고 나서 집에 와서 고민했다. 내가 계산을 했는데, 나중에 밥값을 보내달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넘어가야 할까? 좋은 사람이라면 돈에 연연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돈도 소중한데 왜 내가 참아야 하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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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되는 일은 쉽지 않다. 내가 가진 세상이 작고 한정적일 때는 그나마 좋은 사람이 되기가 쉬운데, 가진 것이 많고 그것들을 지키고자 할 때는 오히려 나쁜 사람에 더 가까워지는 것 같다. 모든 어른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개 어린이보다 어른이 더 욕심이 많았고, 나이가 들수록 뻔뻔해져만 갔다. 그 뻔뻔함을 기반으로 하는 행동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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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게 호의를 보여준 몇 안 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았고, 그 방향 설정은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나에게 호의를 보여준 몇 안 되는 그 어른들만큼 나는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생각하면 글쎄,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메모장에 예쁘고 유려한 말을 채워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 함께 있었던 일을 기반으로 소중한 감정을 차곡차곡 채워 노랫가사로 만드는 일. 받은 것보다 더 많이 베푸느라 빚을 지는 일.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본인이 가진 것들을 나누며 산다는데, 나는 어제 먹은 밥값을 안 보내주는 사람에게 문자로 '밥값 보내달라'고 연락할까 말까 망설인다. 좋은 사람의 방향으로 걷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쩌면 내가 걸어가는 방향이 그저 치졸하고 쪼잔한 어른의 방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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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과는 어쩌면 거리가 멀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좋은 사람으로 사는 건 고되고 힘든 일이라 그냥 하루하루를 살아내자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선물처럼 가끔 내게 '양고님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고, 그에게 호의를 베풀고자 했던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내가 해줄 수 있는 아주 가벼운 무언가를 했을 뿐인데 거기에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부끄러워진다. '그런 뜻으로 한 거 아니에요' 하고 극구 사양해봐도 기어코 고맙다는 말을 꺼내놓는다. 좋은 사람이고 싶지 않았는데 강제로 좋은 사람이 되어버린 현상에 난감해 뒷머리를 벅벅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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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어른이라면 어떤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은 내가 그린 그림에 불과했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내게 호의를 보여주었던 그이도 매번 좋은 사람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고, 내게 못되게 굴어 베개를 적시게 만들었던 그이도 모든 순간 모든 이에게 나쁘게 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양한 인간의 군상과 다양한 삶의 태도로 빚어진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다.



결국 나는 이런 문자를 보냈다. '어제 즐거웠어요. 담에 좋은 얼굴로 또 봬요.' 밥값을 보내달라는 내용을 썼다가 다 지우고 좋은 진심만 남겨 보낸 것이었다. 좋은 어른이 되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그러자 답장이 왔다. 밥값을 늦게 보내주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힘이 되어주어 고맙다는 말이 덤으로 온다. 또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나는 아직 멀었나 보다.



하지만 이제 안다. 좋은 사람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노력 자체가 이미 충분히 좋은 사람의 모습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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