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무엇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하나 (셋째날)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계획했던 여행, 우연히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부터 백패킹까지
때로는 실패담, 때로는 소소한 발견들
집 밖에서 마주한 일상의 조각들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간밤에 비가 많이 온 탓에 정전이 되었어요
급하게 초를 켜고 일을 시작했는데,
처음 겪어보는 상황 속에서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묘하게 예민해지는 것 같아 보였어요.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라 당황스러울 수도, 놀라울 수도 있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차분해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했는데
나름 운치가 있어 보여 오히려 좋아~ 하면서 일했어요
해인사에서,
정전으로 인해 어두워진 공간에서,
촛불을 켜고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경험을
언제 또 해보겠어요 >.<
아침을 준비하다가 잠깐 나와보니 맑게 갠 하늘이 반겨주네요
며칠 내내 비가 와서 맑은 하늘이 무척이나 반가웠어요
이렇게 쾌청한 하늘이라니..!
아침엔 확실히 음식이 잘 안 들어가요.
음식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에 먹을 만큼만 펐더니 양이 몹시 적어보이네요
해인사에서 지내는 동안 물김치가 내내 너무 맛있었다는 사~실.
와! 맑은 하늘이다!
아침을 먹고 나서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비가 와서 내내 우산을 쓰고 다녔는데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토록 기쁠 수 있다니?
다른 분들의 포스팅에서 해인사에 사는 고양이가 있다 해서
우리집에서 간식을 좀 챙겨갔는데 내내 못 마주쳐서 아쉬웠는데
비가 그치니 몸을 말리러 나왔나봐요
헐레벌떡 방에서 트릿을 챙겨와 으깨주었습니다
어떠니..? 이것이 바로 속세의 맛이란다
(아주 맛있게 먹어주어서 기뻤습니다)
맑은 하늘이 반가워서 주변을 둘러보러 나왔어요
첫날에 해인사를 올라 올 때 봤던 카페에 가보고 싶어서 내려왔는데요.
해인사에 있는 북카페랑은 좀 다른 분위기로
자연을 즐길 수 있어 좋은 공간이었습니다.
카페 수다라에는 커피 말고도 다양한 간식을 팔고 있었지만,
아침을 먹은지 얼마 안된 터라 아메리카노만 시켜서 자리에 앉았어요.
해인사에 있으면서 다양한 걸 느낄 수 있는데,
특히 저는 날씨에 예민한 사람인 걸 알 수 있었어요.
비가 온다 해서 아무 일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비가 올 때 보단 날이 맑을 때 더 기분이 좋아요.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되고요.
비가 온 뒤에 맑게 갠 하늘이라 초록이 더 푸릇푸릇
짧고 행복했던 아침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준비하러 돌아왔습니다
날이 좋아서 점심 시간 근무가 끝나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 8시 47분...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 아닙니다.
점심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해인사 공양간에는 이런 표지판이 있고,
스님 출입문과 일반인 출입문이 따로 있어요.
아무것도 모르고 스님 출입문으로 드나들었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나니 괜히 일반인 출입문으로 들어가게 되더라는.
차관 (주전자)을 세팅할 때는
오른쪽에 휴지를 두고 주전자의 입구가 왼쪽으로 향하도록 놓아두어야 해요.
의자를 정리할 때는 왼쪽으로 붙여야 하고,
뒤로 빠져있는 의자가 있다면 쑥 밀어넣어야 합니다.
절에 가면 뭔가 각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각을 살리기 위해 많은 분들이 애쓰시는 것이었어요.
검정색 고양이 이후에 만난 노란 고양이!
검정색 고양이보다 더 몸집이 작고, 겁이 많았어요.
가방에 챙겨다닌 트릿을 꺼내주었더니 잘 먹어주었습니다.
어떠니? 속세의 맛이란다.
점심 시간이 끝나고 난 뒤엔 꼭, 맑은 날에 주변을 좀 더 돌아봐야지! 했는데
그 다음날 있을 행사가 있어서 펜스 치는 작업을 도우느라
휴식 시간이 좀 짧아졌어요.
더운 날 몸쓰는 일을 하고 방으로 돌아왔더니 잠이 몰려와서
뭘 더할 생각도 못하고 기절하듯이 잠에 들어버렸습니다.
해인사는 크고 넓어서 돌아볼 것도 많고,
특히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만큼 문화유산과 가까운 절인데
노동을 하느라 많이 돌아보지 못해서
묵는 기간 내내 짙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청년객실을 찾아오는 분들은,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서 찾아오거나,
출가 전에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서,
또는 속세에서 힘들어서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싶어서,
혹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등등
아주 다양한 이유로 찾아오는 것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노동이 필요한 시간에는 노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해인사를 돌아보거나 혼자만의 명상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노동의 강도가 생각보다 세고,
노동 시간 자체도 짧지 않아서 중간 중간 휴식 시간에는
'쉼' 그 자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서 내내 아쉬웠어요.
원주스님.. 보고 계신가요..?
노동 시간 조금만 줄여주세요....
다음에 또 가고 싶어요...
점심 이후 쉬는 시간에 기절하듯이 자다가
겨우 깨어 저녁 시간 노동을 하러 왔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노동 강도가 세고,
잠을 편히 못 자 피로도가 쌓였다고 해도
저는 자원봉사를 하러 온 사람이니
소임을 다해야 하니까요 (결연)
이건 스님들이 배식 하는 라인입니다.
스님들의 식단은 일반 식단과는 조금 달라서,
제철 과일이나 치즈, 김 등이 추가 되어 있어요.
수행을 하시는 스님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식단에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후루룩 뚝딱 저녁 노동이 끝나고 먹는 저녁.
여전히 밥은 맛있습니다. (중요)
한식러버인 저는 감자조림도, 강된장도, 배춧국도 다 맛있어요.
일할 때는 두건을 두르고 있는데,
일의 강도가 세서 두건 안에 땀이 줄줄 흐르면
이게 맞나...?
퇴사하고 이런 일을 하러 온 게 맞나...? 싶은 생각에 현타가 오다가도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일한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또 금방 마음이 달래지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가볍더라구요.
이렇게 셋째날 저녁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잠깐 해가 떠있더니 저녁 무렵에는 다시 비가 내렸어요.
다음 날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이날은 잠 드는 게 아쉬워 좀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방에서 듣던 계곡 물소리와
새소리, 빗소리의 자연 소리가 아쉬워지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