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는 얼마나 좁은 우물 속에서 사는지 - 첫째날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계획했던 여행, 우연히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부터 백패킹까지
때로는 실패담, 때로는 소소한 발견들
집 밖에서 마주한 일상의 조각들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4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나 -
스스로를 돌아보면 '낯섦'에 대해 새로워하고
새로운 것을 기다리며 기대하는 감정을 가장 많이 잃었다.
회사를 다닐 땐
새로운 프로젝트는 결국 내가 맡아서 성공해야 하는 일에 불과했고
그것은 곧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새로움에 대한 갈증 없이
그저 어제와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길 바라며
내일을 맞이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퇴사를 하고
낯선 사람들과 2박 3일을 보내는 캠프에 신청을 했을 땐
새로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보기로 한 결심이었다.
테마캠프를 신청 후 며칠 뒤 선정이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감사한 마음으로 참여 의사를 밝히고 전화를 끊으니
캠프 일정이 정리되어 있는 링크를 보내주어 확인했다.
(예정되어 있던 일정 중 외부 일정은 폭염주의보로 인해 변경되었다.)
대구로 이동하고,
대구에서 '점촌 터미널'로 이동.
점촌 터미널에 17시 30분에 셔틀 차량이 오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늦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서둘렀는데,
그러다 보니 1시간 넘게 터미널에서 기다리게 되었다.
낯선 터미널에서 느끼는 조용한, 혼자만의 감각.
그저 시간을 죽여나가는 게 아니라
마음과 손 끝으로 느끼는 낯선 공간이 나쁘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버스로 갈아 타는 긴 여정 속에서도
버겁지 않고 설렐 수 있었던 것은
일이 아닌 여행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떠나보면 안다.
우리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적응되면
얼마나 많은 감각들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는지를.
이번 테마캠프 참가비는 3만원이었는데,
이 3만원 안에 2박의 숙박비와 5끼의 식사,
'촌촌여전'이라는 도서 등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캠프를 처음 참가하는 나는 3만원이라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유용하게 쓰일지 가늠할 수 없었는데
묵어보니 알겠더라.
정말 알찬 구성이었다는 것을.
2인 1실이 기본이라
두 개의 이불이 나란히 깔려있었다.
모든 요소는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생활하기에 불편하지 않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에어컨, 냉장고, 세탁기를 포함해서
드라이기, 컵, 커피포트, 접시, 밥솥, 거울, 청소기, 무드등, 수건 등이
구비 되어 있기에
본인이 갈아입을 옷, 폼클렌징이나 칫솔 치약 정도만 들고 오면 된다.
짐을 풀고 나서는 프로그램 OT를 듣기 위해 '이안느루' 샘터로 이동.
간단한 설명을 듣고는 다시 잠깐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7월의 상주는
어딜 봐도 눈이 부신 초록이 가득해서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마음이
초록으로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나중에 -
한참 시간이 흘러 -
뿌리 박고 살 곳을 찾아 떠나게 된다면
상주로 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푸른 하늘과
푸르른 들판과
흰 새
어찌 한 폭의 그림 같은지.
휴식 시간 이후 저녁을 먹기 위해 모였다.
'촌'답게 반찬은 화려하지 않았다.
미역줄기볶음,
멸치볶음,
계란찜,
감자채볶음.
혼자 살면 자주 먹을 수 없는 소박한 반찬들.
이번 캠프는 '상주 서울 농장'이기도 한 곳에서 진행되었는데,
첫째날의 작은 향연과 둘째날의 문화 살롱이 이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촌에 살 땐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풍경들이
도시로 떠났다가 돌아오니 어찌나 반가운지.
나무 그늘 사이로 햇살이 비치는 것도,
푸른 들판과 작은 풀꽃도
허투루 보이지 않고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엔 '작은 향연'이라는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모였다.
카드를 주며 자기 소개 카드를 작성하라고 하셨는데,
나 스스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
모두 별칭스티커를 통해
본명이 아닌 '별칭'으로 본인을 소개하게 만들었는데,
나는 나의 별칭을 "열리기를 기다리는 문"으로 적었다.
이유는 당연히,
먼 미래의 내가 걸어갈 곳의 문이
내가 걸어오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먼 미래의 내가,
아니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의 내가
4년 다닌 회사를 그만 둔 것을 후회하지 않기를,
일상이라는 문을 닫고 작가라는 문을 연 것을 자랑스러워 하기를 바라며.
그 다음엔 본인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계속 되었다
흰 종이에 다양한 색이 물들게 마음 가는대로 붓질을 하기도 하고,
원을 그리고 서서 춤을 추기도 했다
어른이 된 이후 하얀색 종이를 아무렇게 붓질하는 것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춤을 추는 것도 다 멀어진 감각이라 낯설었는데
낯선 만큼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건 음주 시간.
가무도 하고 음주도 했으니 완벽한 음주가무였다.
천지인 포도주는 처음 먹어보는 술이었는데
포도주스 같은 달달한 맛에
술 맛이 거의 안 나서 홀짝홀짝 마시기 너무 좋았다.
어른이 된 이후 낯선 사람과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나누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게 되었다.
회사 일을 하다 보면 공통 분모가 많았고,
그 공통분모로 싫어도 좋아도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그건 좋고 싫음의 영역이 아니라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걸어가던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 2박 3일 캠프에 와보니 알겠다.
내가 얼마나 많은 감각들을 잃으며 살아왔는지를.
낯선 사람과 어디에서 왔느냐고 스스럼없게 인사를 나누는 것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에게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어제는 전혀 모르던 사람과 손을 맞대며 춤을 추는 것도,
캠프를 오지 않았더라면 전혀 알 수 없었을 감각들.
작은 우물에 불과하던 내 세상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천지인 포도주가 너무 맛있었던 통에,
남은 와인을 받아와서 방에서 룸메랑 오붓하게 마셨다.
룸메는 나와 동갑이었는데
내가 가보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분이었다.
1인 사업을 하고,
다양한 세상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멋진 친구.
그 친구에게 다양한 세상 이야기를 듣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