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다 써먹을지 몰라도 - 상주 테마캠프 편 (3)

3.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았는지 - 셋째날

by 이양고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1).png
"어디다 써먹을진 몰라도" 시리즈는 이런 이야기들이 담깁니다
계획했던 여행, 우연히 떠난 여행
템플스테이부터 백패킹까지
때로는 실패담, 때로는 소소한 발견들
집 밖에서 마주한 일상의 조각들

특별할 것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를 기록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입니다.




1.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았는지



둘째날 저녁은 문화살롱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공연도 하고, 작가님들 인터뷰도 하고,

술도 마시고, 커피도 마시고, 간식도 먹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캠프를 하는 동안

가장 마음에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을 잔치 같은 느낌.




다양한 칵테일과 하이볼이 준비되어 있었는데,

직접 만드셨다는 '챌린지 메뉴' 중에 참외 한 모금을 선택했다


모든 술은 공짜.

심지어 너무 맛있어서 취하는 줄도 모르고 네 잔을 연거푸 마셨다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맛있는 술과 안주가 무료라니

말 그대로 좋은 일이 있어 열린 마을 잔치 같은 기분이었다



처음엔 아주 수줍게 부탁을 드렸는데,

세잔쯤 되니 "참외로 드려요?" 하셔서 네- 하고 대답했다.



대공이네 칵테일!

칵테일 바를 운영하시는 줄 알고 위치를 여쭤봤는데

술집을 운영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운영해주시지... 이제 이렇게 맛있는 참외 한모금 어디가서 마시나요...ㅠ.ㅠ


캠프에 있는 동안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고 다양한 것을 먹을 수 있는데

늘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나의 작은 우물이 좀 더 커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안주로 곁들여 먹으라던 찐감자.

본가에 살 땐 엄마가 자주 감자를 쪄 주셨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 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런 찐감자는 진짜 오랜만에 먹는 것이라

혼자 키득거리며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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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치킨도 햄버거도 피자도 편하게 먹는다던데

그런 것들을 먹으려면 차 타고 적어도 40분 이상을 나가야 하던 우리집은

간식으로 찐감자나 고구마, 옥수수 같은 구황작물을 먹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알겠더라.


그때 먹은 그 간식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묻어 있었던 것이었는지.




대공이네 칵테일 옆에는 '어코스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다

술을 먹지 않는 분들을 위한 배려같았는데,

문화살롱이 진행되는 내내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참지 못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요청드렸다


시그니처 다크 블랜드 원두로 요청드려서 마셔보았는데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던지,

카페인을 마시면 잠을 통 못자는 성향을 잊고

한잔을 원샷할 뻔 했다가 겨우 정신줄을 붙잡았다.




뒤에서는 먹고 마시며 즐기고 있었고,

앞에서는 작가님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입과 귀와 코와 눈이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름의 가장 큰 장점은 해가 길다는 것이다

해가 늦게 지면 어쩐지 저녁을 좀 더 알차게 보내게 되는 것 같다

같은 20시라도, 겨울 20시는 이미 어두컴컴한데 여름 20시는 아직도 초저녁 같이 느껴지니까.




마지막 날 밤이라는 아쉬움을 같이 느낀 사람들끼리 모여 조촐한 2차를 했다

여기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오래도록 안고 있었던 본인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 했다


또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갈 본인의 미래를 이야기했고,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참아왔던 결단을 내리고 자유로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모습으로 걸어가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생각도 모습도 환경도 각자 다르다


그러니 저 사람도, 이 사람도, 그 사람도 보지 말고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여

그저 묵묵히 본인의 하루를 잘 보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 안녕, 안녕, 안녕.


셋째날 아침이 밝았다.


셋째날 아침은 '전복죽'이었다고 하는데,

전날 너무 늦게 잔 나머지 아침은 포기했다.


아침만큼 달디 단 늦잠을 자고 오전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 모였다.


나뭇잎과 나무를 구분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다양하고 유용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필기를 따로 하진 못해서

그저 식물을 가지고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다.


옹기종기 모여 식물 이야기를 듣는 캠프 사람들.



나뭇잎마다 가진 특성을 들어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로 비눗방울도 불어보고,

아주 작은 나뭇잎을 결따라 찢어 보기도 하는 시간이었다




깔끔하게 정리된 나무로 원형을 만들어

나뭇조각을 던져 넣는 게임도 하고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서 쉬어 보기도 하는 시간.

덥다는 이유로 내내 실내에 틀어박힌 채로 지내왔는데,

밖에서 나무와 나뭇잎과 나뭇가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여름을 몸으로 만끽하는 것 같아 뜻깊었다


아주 어렸을 때나 했던 소꿉놀이를 하는 기뷴,


그 다음은 바느질 클럽이라고,

조각난 천을 바느질하는 시간이었는데,

바느질을 잘 못하는 나는 아주 삐뚤빼뚤하게 바느질 했다.


바느질을 하면서도 너무 못해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바느질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께서

잘하기 위함이 아니니 신경쓰지 말고 그저 행위에 집중해보라고 하셨다.


어른이 된 이후에

늘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잘하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못하는 일은 못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급급했던 시간들.


얼마나 많은 시간 속에서

나는 나에 대해 잊은 채로 살아가고 있던 것인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는 꿀맛같은 점심을 먹었다.

표고버섯 튀김과 갓김치와 메추리알 장조림과 오이탕탕이.

어찌나 맛있었는지 두 그릇이나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는 캠프 내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던 분 옆에 앉게 되어

짧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글을 쓰고 싶어 퇴사를 하고 방황 중이라던 내 소개를 들먹이며,

어떤 작가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고

나는 소설을 쓴다고, 책도 냈지만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는

쓸모 없는 설명을 간단히 덧붙였다.


잘할 거라고, 잘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면서

아주 멀리서라도 응원하고 있을 테니 꾸준히 글을 써달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분께서 해주시는 짧은 응원의 말이

어찌나 힘이 되었는지.

왜 그게 그토록 힘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무척이나 따스해지는 경험이었다.



캠프에 있었던 2박 3일 동안 못 보다가

마지막 날에야 보게 된 제비 4형제!

야무지게 지은 집도,

고개를 빼꼼 내밀고 어미를 기다리는 것도

너무 귀여웠다


예전 본가에 살 땐 거의 매년 보던 제비들이었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새삼스럽게 반갑고,

이렇게 작았구나 싶어서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안녕, 제비야-

행복하려무나



캠프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냥 이대로 집에 가기 아쉬워 근처 카페에 들렸다.


다양한 빵을 팔고 있던 곳이었는데,

구석에서 '고양이 간식' 코너를 발견했다.


고양이 간식을 사면

해당 비용으로는 고양이 중성화를 해주고

사료 사는데 쓰인다고 해서 의아했는데,

알고 봤더니 카페 한켠에 고양이 가족이 자리잡고 있었다.



카페 문 앞에 자리 잡아 그루밍을 하기도 하고,

키가 작은 나무 사이에 들어가 편하게 자고 있기도 했다.



새끼고양이들도 있었는데,

사람 손을 이미 많이 탄 덕분인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배를 보인 채로 누워있었다



고양이를 사랑하다 보면 마음 아픈 일이 자주 생긴다

길가에 죽어 있는 고양이를 볼 때에도,

눈꼽이 잔뜩 낀 채로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를 볼 때에도,

많이 굶은 듯 마른 고양이를 볼 때에도

마음이 내내 아프다.


모든 고양이를 내가 책임질 수 없음에,

함부로 도움의 손길을 못 내밀면서도

우리 집에 고양이를 키우고 난 뒤에 길고양이에게 부채감을 갖게 됐다.

쓸데없는 오지랖이란 걸 알면서도.


하지만 반대로,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 이후

아주 사소한 순간에 기쁜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예컨대 사람의 손길을, 사랑을, 애정을 잔뜩 받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길고양이를 볼 때면 주로 그렇다.


그저 사랑 받은 채로 잘 살았으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안녕- 행복하려무나.
아주 오랜 시간 그렇게 사랑과 애정만 잔뜩 받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