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행복하다고 입 밖으로 소리내 말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비빔밥을 만들어본 사람은 안다.
나물 하나하나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를.
나는 비빔밥, 김밥, 볶음밥을 좋아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진 못한다.
손이 너무 많이 가는 음식이기 때문에.
그만큼 번거로운 음식임에도
정갈하게 차려주신 손길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배부르게 잘 먹었습니다.
오늘은 고흥-여수 투어가 예정된 날.
저번 주 투표에서는 좀 더 많은 사람이 가기로 했었는데,
아픈 사람도 있고 컨디션이 안 좋은 사람도 있어
최종적으로 간 멤버는 인솔자 두 분을 포함해서 총 일곱명.
희주님은 자신이 아는 완벽한 바다를 소개해주겠다며 우리를 이끌었고,
우리는 "이런 곳에 해수욕장이 있다고?" 생각하며
길을 따라 나섰지만
초록 풀 끝에 나온 바다는 정말 아무도 없는,
파랗고 푸른 완벽한 바다 그자체였다.
야트막한 산과 푸른 하늘과
흰 구름과 바다까지.
마치 한 폭의 그림에 들어온 것 같은 완벽한 배경인데,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 더욱 매력적이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장소를 우리끼리만 공유할 수 있다는 은밀함이라니.
나랑 룸메가 바다를 가까이 보기 위해 양산을 쓰고 바닷가로 다가갔는데,
멀리서 우리를 보고 있던 멤버들.
우리는 그늘에 쪼로록 앉아있는 그들을 귀여워하고,
그들은 바닷가에 나란히 서서 구경하고 있는 우리를 귀여워했다.
꿈에서 오늘 하루를 완벽히 재현해내도 지금처럼 벅찬 감동은 들지 않으리라.
내가 행복하다고, 꿈을 꾸는 것만 같다고 하자
한달살기 멤버 중 제일 장난꾸러기인 사람이 내 팔을 찰싹 내리쳤다.
왜 때리냐고 물었더니
"아픈 걸 보니 꿈 아니지?" 란다.
어이가 없어서 뭐? 하고 물었는데
생각하고 보니 맞는 말이라 그냥 다같이 하하 웃어버리고 말았다.
내내 몸에 힘을 주고 살던 나는,
누군가 장난을 치면 어떻게든 똑같은 수준으로 받아치리라 생각하며 살던 나는
여기 와서 그저 웃으며 넘기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이건 한 달이라는 한정적 시간이 주는 힘인걸까.
아님 순천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인걸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순천에 와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많이 웃고, 많이 보며, 많이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눈이 멀 것 같이 반짝거리는 바다를
열심히 눈에 담고 있던 나를 찍어준 룸메.
남이 나를 찍어주는 사진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는데
순천에서 지내는 동안 나를 찍어준다는 이들의 호의를 점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어쩌면 그건,
그들이 나를 어여쁘게 봐주리란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완벽히 아름다웠던 바다를 뒤로 하고
끼니를 챙겨야만 하는 우리가 향한 곳은 ‘낭도 짬뽕'
짬뽕집 앞에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는 백구가 있는데,
'아고 예뻐!' 하고 이야기 하면 꼬리를 흔들며 더 예뻐해달라는 듯 웃어보인다.
어여쁜 백구를 뒤로 하고 식사를 하기 위해 들어선 짬뽕집.
사장님이 추천하는 메뉴는 '낭도왕짬뽕'이었기에
나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왕짬뽕'을 주문했다.
그리고 여긴 ‘젖샘막걸리'를 판다고 적혀 있었는데,
여기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막걸리라 하여
고민 없이 주문하여 한입씩 맛만 보았다.
[젖샘 막걸리 이름의 유래]
낭도는 장점이 많은데, 그중 제일은 물이다. ‘젖샘’이라는 샘물이 나온다. 젖샘은 바닷물과 섞이지 않아 철분이 많다는 게 이 섬 주민의 설명이다. 이 물을 마시면 젖이 잘 돌고, 그 젖을 먹으며 오랜 시간 사람이 살아왔다는 거다. 그 맛 좋다는 샘물로 막걸리를 만드는 술도가가 있다. 강창훈 사장은 낭도에서 얼굴이 가장 많이 알려진 유명인사다. 예나 지금이나, 그는 섬의 대소사를 챙긴다. 그래서 섬을 다녀간 사람치고 모르는 이가 없다.
출처 :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507020600001
막걸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한때 막걸리를 무척 많이 마시던 시기가 있었다.
이야기를 하며 마시니 취하는지도 모른 채 과음으로 이어졌고,
막걸리를 마신 다음 날이면 숙취로 고생하는 바람에 막걸리를 멀리하게 됐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순천에 와 막걸리 마실 기회가 종종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술이 참 맛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멤버들이 주문한 왕짬뽕은 이름에 걸맞게 해산물이 푸짐하게 들어가있었다.
나는 늘 중국집 음식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하기에
그나마 덜 부대끼는 메뉴로 볶음밥을 골랐는데,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멤버들이 면과 해산물을 덜어 내게 나눠주었다.
접시 가득 음식을 받은 나는
어쩌면 이게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주문한 볶음밥도 무척 맛있었다.
우선 볶음밥도 고슬고슬 맛있었지만, 짜장소스와 직접 구운 듯한 후라이도 몹시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사이드 메뉴로 탕수육도 주문했는데,
옆 테이블에 '찍먹파'가 있었는데 잘못 들어 탕수육을 소스에 다 붓는 사고가 발생했다.
나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처먹파'라
찍먹이니 부먹이니 하는 논란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찍먹파의 의견을 묵살하고 소스에 담긴 탕수육을 걱정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찍먹파들은 별말 없이 탕수육을 잘 먹었다.
사실 내 기분이 행복하면 뭘 먹든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반대로, 뭘 먹어도 내 마음이 지옥이면 흙을 씹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오니 다시 한 번 백구가 반겨주었다.
백구의 눈웃음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마음 같아선 마구마구 쓰다듬어주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이미 떠날 우리에게 정을 많이 붙여봤자 좋지 않을 거란 판단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탔다.
백구야, 건강해. 늘 지금처럼 행복하려무나.
그 다음으로 이동한 건 카페 '마애'
오늘 방문한 모든 곳이 완벽하다 말해도 좋을 정도로
완벽한 경관을 볼 수 있었는데
그건 장소도 좋고, 함께한 사람들도 좋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정도로 화창했던 날씨 탓도 있는 듯하다.
사진으로 봐도 날씨의 푸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두 눈으로 볼 땐 10배는 더 완벽한 풍경이었다고
감히 장담할 수 있다.
이 풍경이 사라질 것만 같아서
눈에 힘을 주고 꼼꼼히, 섬세히 풍경들을 눈과 마음에, 휴대폰에 담았다.
다시 한 번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쪼르르 앉은 우리를 찍어주신 희주님.
우리는 우리가 찍힌 사진을 보며 귀엽다고 한참을 웃었다.
카페 마애는 애견을 동반할 수 있는 카페로,
바다를 보고 싶은 사람들도,
대형카페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도,
댕댕이와 함께 방문할 카페를 찾는 사람들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부류의 카페였다.
인테리어가 감각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모든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신경쓴 듯 감각적이고 섬세했는데, 통창으로 보이는 하늘과 바다가 어여뻐 인테리어는 뒷전이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본 적 없는 그런 종류의 인테리어였다.
우리 멤버 중 한 명은 돌의 느낌을 잘 살린 인테리어를 보고 고인돌 인테리어냐며 지나가듯 말했고, 나는 그가 적절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넓은 카페에 앉아 우리는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나눴다.
인솔자인 희주님께서 본격적으로 일을 하는 바람에
우리는 일이 끝날 때까지 개인 시간을 보냈는데,
나는 챙겨간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이나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챙겨간 시집은 어제 책방 심다 대표님을 뵈러 갔을 때 구매한 것으로,
[그냥 언제까지 기쁘자 우리] 라는 제목의 책이다.
저번에 책방 심다를 방문했을 때
잠깐 펴서 읽었던 책이었는데,
구절이 좋아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구매하게 되었다.
'낮잠이 더 길어졌다
나는 꿈에서도 당신을 잃는다
그만 나를 잃는 것이 낫다고
꿈속의 나는 생각한다'
카페에 한참 앉아 있다가
18시가 마감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부랴부랴 몸을 일으킨 우리.
19시에 예정된 일몰을 보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달렸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일몰 스팟.
넓은 파다가 펼쳐지고, 뉘엿뉘엿 지고 있는 일몰이 잘 보였다.
바다를 보는 시간 동안 어찌나 행복했는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났다.
부모님과 동생과 친구들까지.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제외하고
동생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바다를 보여주었다.
순천에 있는 동안에 매일매일 다양한 활동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가족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진 않았는데 바다를 보고 있으니 절로 가족이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멋진 광경,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겠지.
노을이 은은하게 물들이는 잔잔한 파도의 바다까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순간이었다.
잠깐 일몰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
해는 제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몸을 숨겼고,
우리는 우리의 할일을 위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여수에 왔으면 게장은 먹어줘야지!"
하는 말과 함께 도착한 '명동게장'
밥 먹고 차 타고 앉아있고...
오늘 내내 앉아 있는 활동이 많았던 탓에
음식물이 뱃속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았지만
여수에 왔는데 게장을 안 먹을 수가 있나.
우리는 게장과 갈치조림을 시켜 맛있게 먹었다.
나는 게장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발라 먹기 귀찮아 하는 편이라
게장보다는 갈치조림을 더 많이 먹었는데
"명동 게장"은 갈치조림 뿐만 아니라 젓갈, 새우장 등 반찬도 하나하나 다 맛있는 곳이었다.
우리는 오기 전에 라스트 오더 시간을 확인 후 왔는데,
라스트 오더 시간은 20시 30분이었고,
우리는 20시가 조금 넘어 도착한 덕분에 무사히 먹을 수 있었다.
게장 리필은 총 3번이 가능하고,
밥은 1,000원을 내고 추가로 주문 가능하다.
이미 유튜브나 TV에 자주 나와 유명한 맛집 같지만,
여수에 게장을 먹으러 간다면 나 또한 추천하고 싶은 맛집이었다.
게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우리가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여수 밤바다' 앞
여유롭게 대리석에 앉아 쉬고 있던 길냥이와 인사도 반갑게 나누고,
몇 년 전 왔던 여수 여행 이후로 오랜만에 보는 이순신 장군 사진도 찍고.
저 멀리 반짝이는 대교도 눈에 잔뜩 담았다.
평일 저녁이라 여수 밤바다를 보는 사람은 많이 없었는데 그 덕에 우리는 여유롭게 찬찬히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편의점이 앞에 있으니 목마른 사람은 다녀오세요!"
해서 몇 명이 편의점 쪽으로 가다가
어딘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인형뽑기로 들어섰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는 것처럼.
몇 명은 인형을 뽑았지만
나는 3천원만 날리고 인형을 뽑지 못했다.
인형뽑기 기계로 인형을 뽑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괜히 이런 곳을 오면 한번쯤 시도하게 된다.
인형 뽑기방에서 재미나게 놀고
다시 밖으로 나와 밤바다를 구경하며 수다를 떨다가
오늘 하루도 마무리.
아침부터 밤까지 12시간 넘게 열심히 돌아다닌 오늘의 투어.
순천에 와서 많은 프로그램을 하고
다양한 곳을 보았지만 오늘만큼 행복했던 적은 없었다.
그리고 이 행복했던 순간을
브런치에 남길 수 있어 기쁘다.
브런치를 하기 전엔 아무리 행복한 순간이라도
감정만 남고 기억이 휘발되기 마련이었는데,
브런치에 남기겠다고 생각하고 더 많은 사진을 찍고 더 많은 생각을 잡아두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듯 하다.
그리고 이 별 볼일 없는 기록을 읽어주시는 많은 분들께도 감사하다.
마음에 행복이 가득하니 괜히 모든 것에 다 기쁜 마음이 드나 보다.
이 글을 읽은 수 많은 사람들이 오늘의 나만큼 행복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