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나의 기록은 무엇을 담고 있나
오늘도 조식으로 시작하는 아침!
전날 막걸리를 많이 마셔 약간의 숙취가 있었는데,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계란국이 나와서 행복하게 먹었다.
(tmi. 제일 좋아하는 국은 미역국이다)
계란 후라이까지 넣어서 야무지게 비벼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어제 내내 밖에 있어서 쓰지 못한 기록을 남기려면
오전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약간의 숙취가 있다는 것도 망각한 채로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써내려갔다.
한참을 브런치 글을 써내려가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12시.
희주님과 인터뷰 하기 전에 얼른 식사를 끝마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여
고프지도 않은 배를 채우기 위해 방을 나섰다.
그리하여 선택한 건 스테이두루 바로 옆에 있는 '김밥천국'. 김밥도 좋아하고 라면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김밥은 커다란 오이가 들어가있어서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불호일 것 같은데
난 오이를 생으로도 우적우적 씹어먹는 사람이기 때문에 만족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룸메의 부탁으로 삼다수를 사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스테이두루에 머문지도 벌써 3주차로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스테이두루는 예쁘다.
어쩜 숙소 외관이 이토록 아기자기할 수 있는지.
폭발하는 구름.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대비되어 마치 색종이를 오려 붙인 낙서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룸메가 삼다수를 부탁한 이유가 있었다.
삼다수로 차를 우렸을 때 가장 맛이 잘 우러나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기회가 되면 차를 내려주겠다고 했던 것을,
오늘 드디어 지키게 된 것.
룸메가 처음 내어준 차는 '국화차'였다. 작고 노란 국화꽃을 말려서 우린 차였는데,
한 모금 마시자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스며드는 듯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이건 마시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
룸메는 차를 마시기 위해
다양한 차도구를 챙겨왔는데
그게 어찌나 아기자기한지.
나는 커피를 무척 좋아하지만
차를 좋아하는 건 또 다른 매력을 가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희주님과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은 '다올재' 라는 공간.
다올재도 희주님이 추천해주신 공간이었는데,
'쌍화차'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음료가 맛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기대를 하고 찾아갔더랬다.
푸른 잔디와 한옥이 어우러진 공간.
희주님이 설명해주신 걸 들었을 땐 카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방문하니 카페라기 보단 좀 더 '체험'의 공간같이 느껴졌다.
오늘은 워낙 더운 탓에 바깥에 앉기가 힘들었다.
언젠가 날이 선선해지면 대청마루에 앉아 바깥을 바라보며
차를 마셔도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지만,
예정된 인터뷰 때문에 더위를 피해 차 체험이 가능한 실내로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차'와 관련이 있는 날인가보다.
뭐든 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기회가 되면 다올재에 차를 체험하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았고,
잠시 후 사장님께서 '쌍화 에이드'를 가져다주셨다.
저번 주, 희주님께 인터뷰를 요청하며
미리 질문을 리스트업해서 전달을 드렸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순천의 장소나 루틴이 있다면요?
- 앞으로 꼭 기획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 ‘기획자’라는 직업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태도 중 가장 큰 가치는 무엇인가요?
준비한 질문들을 차례대로 드리자,
다양한 일을 경험해온 대표님답게 막힘없이 본인의 생각을 술술 풀어내셨다.
그 모습이 참 프로페셔널했다.
희주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또 무엇인지를.
그런 내 모습을 본 희주님은 오히려 "인터뷰를 진행해본 적이 있냐"며,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인사이트를 쌓아가는 것처럼
다른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것 또한 유의미한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주님과 인터뷰가 끝난 이후 부랴부랴 이동한 곳은 '책방심다'
저번 주, 책방심다 사장님의 특강을 들었는데
삶의 모습이나 가치관이 발전적이라는 생각에
인터뷰를 덥썩 잡았버렸기 때문이었다.
대표님께서는 다양한 활동으로 바쁘신데 귀한 시간을 내주셨고,
나는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4년 동안 회사를 다니다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퇴사를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 앞에서 어떻게 해야 잘 하는 건지 몰라
인터뷰를 요청드리게 되었다'고 간략하게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대표님께서는
조금도 귀찮은 내색없이 내내 웃으며
내가 묻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다정하게 답변해주셨다.
- “뭘 잘하고 뭘 하고 싶은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신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 답을 찾고 계신가요?
- 내가 어떤 질문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고민하라고 하셨는데, 대표님께서 스스로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 지금처럼 다양한 활동을 시작해보고 싶은 청년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여러 질문들에 대해 답변해주셨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건그 중에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질문이었다.
대표님께서는 내 말에 "일단 하세요" 라고 답변을 하셨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선택 앞에서 망설이나.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우리의 발목을 얼마나 붙잡나.
퇴사 앞에서 내내 망설이며
어영부영 4년이라는 시간을 흘려보낸 내가 생각나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반응을 본 대표님은 말을 좀 더 덧붙이셨다.
빨리 해야 빨리 실패하고
그렇게 작은 실패들이 모이면 큰 실패를 이겨낼 힘도 생긴다고.
사실 그 실패들은 나쁜 실패가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성공이 되기도 한다고.
작가라는 길 앞에서
내가 잘 하는 게 맞나,
이게 맞나 고민하던 나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다시 한 번 용기가 났다.
어찌됐든 실패할 때까지 해본 건 아니니까.
좀 더 해볼 수 있는 거니까.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동천에 윤슬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나 좀 봐달라는 듯,
이 어여쁜 장면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듯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다.
순천에는 어렵지 않게 어여쁜 곳을 찾아볼 수 있지만
나는 아무래도 동천이 잘 보이는 이 길이 제일 좋은가보다.
이 길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서 셔터를 눌러대곤 하니까.
그리고 생각했다.
이 길을 못 잊어서 몇 번이고 더, 순천을 찾아오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옆방 '남원'친구의 생일이 어제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어제 일정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일을 모르고 지나쳤다는 사실에
한 마음 한 뜻으로 속상해했고,
멤버 중 한 명이 케이크를 사와 서프라이즈를 축하해주었다.
남원 친구는 아카이빙에 진심인 친구라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느라 밤낮으로 늘 바삐 움직이는 친구였는데
그 때문에 몸이 탈이 난 건지
며칠 동안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남원으로 가려던 준비를 하던 차에
우리가 불러 1층으로 온 것이었다.
우리는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멤버가 사온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남원 친구는 예상도 못했던 축하라며 환하게 웃으며 함께 기뻐해주었다.
누군가의 생일을 함께 축하해줄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누군가와 함께 살을 맞대고 산다는 게,
아침에 퉁퉁 부은 눈으로 함께 밥을 먹고,
자기 직전까지 얼굴을 맞대고 지낸다는 게
이토록 친밀한 일인 줄 몰랐다.
우리는 고작 3주를 함께 보내고 있는데
오래된 친구처럼 서로를 대하고 있다.
단언컨대
나는 오래도록 순천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